의대생은 한해가 갈수록 ‘의사화’ 된다. 예과 때보타 본과 때, 본과 공부할 때보다 실습 돌 때, 실습 돌 때보다 국가고시 통과해서 의사 선생님으로 시다바리 할 때, 그리고 시다바리 할 때보다 전문적 과에 발을 딛고 사회의 엄연한 전문 지식층으로 둔갑할 때 의사화가 진행이 된다.

우선, ‘의사화’라는 만들어낸 말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 될 것 같다. 의사로서 갖는 자의식이 한 사람의 가치관에 꽤나 영향력을 미칠 때 의사화 된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한 예로 대통령 선거를 할 때 ‘의사들에 대한 처우가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기준이 그 후보에 대한 지지의 사유가 된다면 충분히 의사화 된 것이라고 본다.(이건 물론, 각종 이익단체들이 자신의 투표를 결정하는 사유가 충분히 되고 있다)

부연 설명을 하면, 독보적인 기술에 대해 국가로부터 라이센스를 부여받은 특권 의식, 6년 공부와 5년 이상의 고된 트레이닝에 대한 보상 심리, 그리고 애초부터 똑똑하게 태어난 유전자적 우월함에 대한 대접 받을 권리 등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그에 상응하는 물적, 인격적 대우를 당연시하고, 그에 작은 흠집이 생길 때 알레르기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을 의사화 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 이렇게 냉소적으로 써대는 필자도 충분히 의사화 되었다.

친절은 예의를 갖추는 환자들에게만 되돌아가는 것을 보니, 아는 체하는 환자 앞에서 표정이 변하고, 산업의학과 의사의 설명은 귓등으로 흘리며 다음 달에 아산병원 갈 거니까 걱정 말라는 머나먼 지방 노동자의 비아냥에 속이 뒤틀리는 것을 보니, 필자 역시 충분히 의사회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정도가 평균적인 수준에 비해서 덜 할 수는 있겠다. 다큐를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사건은 정말 존경하고(지금도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진보적인 의사로부터 완벽하게 외면을 당했을 때이다.

그 의사와 서로의 입장이 달라진 것은, 아마도 5년간의 힘겨운 임상 트레이닝을 받으며 하루 24시간 병원 생활 속에 의사들과 대화하고 커피마시고 소통하는 구조 속에서 서서히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일 수도 있겠다 싶다. 다만, 분명 비슷한 수련 과정을 겪은 아주 소수의 의사 선생님들로부터 이따금 필자의 작품이 환대받고 고맙다는 인사도 받은 것을 보니, 모두의 필연은 아닐 게다. 누가 치우쳐 있다고 평가할 수도 없겠다. 분명, 건강보험 이야기를 하면서 저수가보다 저보장성을 강조하는 필자는 확실하게 치우쳐있긴 하다.

예과생부터 굳건하게 의사화 된 사람이 있고, 정교수가 되었는데도 그 흔적이 미미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니 어찌 보면 요새 유행하는 <닥치고 정치>의 김어준 씨 말대로 그냥 태생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얼마 전에 특이하게도 레지던트 수련을 안 받고 활동가로 일을 하고 있는 의사 한 사람을 만났는데, 임상에 대한 미련이 있어 어쩌면 수련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을 하더라. 농담말로 “4년 뒤에 만나면 다른 사람 되어 있는 거 아니에요?” 하면서 둘 다 웃었다.

의사화라는 단어의 어감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 사회의 특권층이 민중의 눈높이와 민중의 의식에 멀어져서 법조인화, 정치인화, 교수화 등등 한쪽 눈을 감고 전문 계층의 자의식을 걸친 채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칼럼을 읽은 전문직이 있다면 자신은 얼마나 그렇게 전문직화되었나 한 번 반추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송윤희는? 2001년 독립영화워크숍 34기 수료2004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사2008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2009년 산업의학과 전문의2011년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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