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보라매병원 신장내과 전임의)


서울시립 보라매병원 신장내과 김도형 전임의서울시립 보라매병원 신장내과 김도형 전임의. 그는 요즘 세간의 관심이 부담스럽다.

택시를 타고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 김 전임의는 침착한 응급처치로 택시기사를 구조한 일이 알려지면서 의료계 및 언론에서 주목하는 화제의 인물이 됐다.

사고가 발생한 당일, 언론은 택시기사를 구한 의사승객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고 그 의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라포르시안’은 수소문 끝에 그가 보라매병원 신장내과 김도형 전임의라는 것을 알아냈고 언론에 노출을 꺼려하던 그를 어렵게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보라매병원 측은 “김도형 전임의는 병원 홍보팀이 사실확인 전화를 했을 때도 택시기사를 구조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답변했을 정도로 주변의 관심을 받는 것을 꺼렸다”며 “의사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다”고 전했다.

다음은 김 전임의와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그날의 사건을 재정리한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기대하며 그날(12월 21일)도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다. 어젯밤 눈이 내려서 그런지 도로가 상당히 미끄러웠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보라매병원 가주세요”라고 말한 후 휴대폰을 꺼내 메일을 확인했다.

어디쯤 왔나 확인하려고 앞창을 보니 저만치 서강대교가 보였다.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했다. 7시가 거의 다 돼가고 있었다. 그 순간 차체가 미끄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끽~~ 빙판길에서 급제동한 택시는 조향능력을 상실해 빙판길 위를 돌기 시작했다. 몇 바퀴를 돌던 택시는 중앙분리대에 한차례 충돌하고 멈췄다.

택시의 급제동으로 인해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가슴과 정강이를 보조석 의자에 부딪쳤다. '사고가 났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차가 미끄러지면서 길 위를 돌기 시작했다. 정신이 없어 몇 바퀴를 돌았는지 기억이 없다. 그저 관성을 이겨내려 보조석과 손잡이를 꽉 움켜잡는 것이 최선이었다. 쾅~ 한차례의 충격이 왔다. 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앞을 보니 택시의 본네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택시기사의 상태가 걱정됐다. "기사님 괜찮으세요?"라고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희미하게 의식은 갖고 있으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일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서강대교인데 교통사고가 났다. 부상자가 있으니 구급차가 필요하다. 서둘러 와달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처음 당한 교통사고라 당황스러웠지만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다. 환자의 상태를 먼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택시로 다가갔다. 본네트에서 나오던 연기는 더욱 짙어졌으며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택시에서 기사를 끌어내려야 했다. 하지만 몸을 가눌 수 없는 사람을 차에서 꺼내는 일이 힘에 부쳤다.

일단은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차를 세우지 않았다.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불길은 더 세지고 있었다.

택시기사에게 다시 돌아갔다. 온힘을 다해 택시기사를 끌어내고 택시근처 차도에 눕혔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의 처리절차인 'ABC rule'(A=기도확보, B=호흡, C=혈액순환, D: 진단)에 따라 응급처치(CPR)를 시작했다. 우선 택시기사의 기도확보를 마치고 호흡을 확인하니 정상이었다. 혈액순환에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미루어 경추쪽 신경에 손상이 있을 것 같았다.

<마포소방서가 사고 당시 촬영한 현장화면.> 응급처치를 마치고 택시를 보니 불길이 더욱 치솟고 있었다. 택시가 폭발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택시기사를 택시에서 멀찍이 옮겼다. 멀리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응급처치를 끝내고 소방차가 도착하는 사이 전화기를 꺼내들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교통사고가 나서 지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세한 상황은 출근해서 말씀드린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마침 소방관과 경찰관이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소방관 몇 명은 택시화재를 진압하러 달려갔다. 환자의 상태를 보고 있는 나에게도 경찰과 소방관 몇 명이 다가왔다. 다가온 이들에게 사고의 경위부터 응급처치 내용까지 전달했다. 척추 및 목 부위에 손상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경찰은 차후 수사에 필요하다며 소속과 신분을 물었다. 나는 서울대학교 신장내과 전임의 김도형이고 전화번호까지 말해줬다. 단 절대 신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의사로써 당연히 해야 했을 일을 한 것 뿐인데 언론의 관심을 끌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쑥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찰과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택시기사는 후송을 위해 응급처치를 받았다. 경추 손상에 대비해 목받침(neck collar)을 대고 이송 침대에 옮겨졌다. 택시기사와 함께 엠뷸런스를 타고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됐다.

엠뷸런스를 타고 가면서 비로서 몸 상태를 확인했다. 큰 부상은 없었다. 단지 허리가 조금 뻐근하고 택시가 돌 때 부딪친 무릎과 정강이에 타박상을 입은 정도였다. 10분 정도 지나자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택시기사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증상으로 보아 경추가 손상돼 심각한 경우 사지마비까지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성심병원 의료진은 치료를 위해 서둘러 택시기사를 병원안으로 데려갔다. 나는 기본적인 체크만 받았는데 큰 이상은 없었다. 바로 택시를 타고 보라매병원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50분 이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몸 상태는 어떤가?

“허리가 조금 뻐근하고 무릎하고 정강이에 타박상을 입은 것 말고는 괜찮다. 차가 뒹굴었으면 큰 사고를 당했을 텐데 돌기만 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언론에는 순천향대병원 소속이라고 알려졌으며 응급조치 후 자리를 떠났다고 보도됐다. 부담스러워 그런 것인가?

“언론의 관심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을 사실이지만 거짓으로 알리지는 않았다. 경찰관에게 신분을 정확히 알렸다. 단 신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말했는데 그 상황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다른 학교로 알려져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자리에서 바로 떠나지 않았다. 택시기사와 함께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가벼운 건강체크 후 보라매병원으로 출근했다”

- 사고를 당한 택시기사와는 연락을 해봤나?

“성심병원에서 나온 후 연락은 해보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못해 경추 손상일 거라는 짐작은 했었다. 빨리 완쾌하길 바란다”

- 2008년 개정된 응급의료법 소위 ‘착한 사라미안법‘의 내용을 알고 있나?

“자세한 조항은 모른다.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한 의사의 책임이 경감되는 법이라고 한 응급의학과 지인에게 들은게 전부다. 아마 대부분의 의사들도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를 것이라 생각되며, 아예 모르는 의사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응급의료법 제5조 제2항에 따르면 환자가 잘못됐을 시 환자의 가족들로부터 소송이 들어올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알고 있는 의학 지식을 이용해 응급처치를 했기에 문제의 소지는 없을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응급처치를 할 경우 의사는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처치한다. 그러나 자신의 의학적 지식에 반해 응급처치를 했다면 처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처벌이 따를 때는 환자의 사망 등에 대한 중대한 과실이 있을 때일 것이다. 선의로 행한 응급처치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어떤 의사가 응급처치를 할 것인가 궁금하다. 그럼에도 소송이 걸린다면 응할 수밖에 없다. 응급의료법에 의사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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