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포소방서가 촬영한 현장 영상 캡쳐화면

지난 21일 오전 6시58분경 서울 마포구 서강대교 북단에서 남단 쪽으로 한 대의 택시가 달리고 있었다. 이날 새벽 서울지역에 내린 눈이 얼어붙으면서 노면은 상당히 미끄러운 상태였다. 아차하는 순간, 서강대교를 달리던 택시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순간적으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충돌 후 곧바로 택시 엔진부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 사고로 택시기사 김모(67) 씨는 차량 안에서 의식을 잃었다. 엔진에 불이 붙어 위급한 상황에서 의식을 잃은 택시기사를 구해낸 것은 이 차에 타고 있던 30대 중반의 남자승객 김모 씨였다. 승객 김모 씨는 의식을 잃은 택시기사를 급히 차량 밖으로 옮겼다. 그리고 침착하게 심폐소생술(CPR) 등의 응급처치를 했다. 사고소식을 접하고 현장에 출동한 마포소방서가 작성한 상황보고서에는 ‘소방대 도착 전 승객 김모 씨가 차량이 불타는 와중에 운전자를 외부로 이동 조치 후 CPR 등 응급처치 실시함. 의사인 손님의 침착한 대응이 없었다면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아찔한 사고였음’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이 사고는 실제로 지난 21일 새벽에 발생한 상황이다. 당시 마포소방서와 마포경찰서가 현장에 출동하면서 차량화재와 의식을 잃은 택시기사를 병원으로 후송하면서 사고처리가 완료됐다.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의사 승객이 택시기사를 살렸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런데 이 사고와 관련해 몇 가지 살펴봐야 할 대목이 있었다.

우선 위기상황에서 택시기사를 침착하게 구해내고 응급처치까지 한 승객의 정확한 신원이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 마포소방서 측은 이 승객이 34세의 서울 S병원 외과의사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본지가 S병원 측에 확인한 결과, 택시사고 현장에 있었던 34세의 외과의사는 찾을 수 없었다.

S병원 관계자는 "이 사고가 보도된 직후 수차례 언론매체의 문의 전화를 받고 외과계열 의료진을 대상으로 확인했지만 택시사고 현장에 있었던 의사를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마포소방서 관계자는 “우리한테는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서 현장에서 본인이 알려준 대로 기록만 했을 뿐”이라며 “의사신분인 것은 맞는데 아마 소속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병원 명칭을 다르게 말한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마포경찰서 교통조사계 측에도 확인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경찰 담당자는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승객이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지금 우리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과연 이 승객이 '젊은 외과의사'가 맞는지 불명확한 상황이다.

그 승객이 의사인지 아닌지보다 더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점이 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의사 승객'이 택시기사를 구해내고 응급처치까지 한 행위가 향후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사실 그의 행위는 바로 눈앞에 응급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응급의료종사자(만일 그가 의사가 맞다면)로서 마땅히 취해야할 자세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선한 의지를 갖고 행한 응급처지 행위로 인해 심각한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8년 5월 국회를 통과한 ‘응급의료법 개정법률안’(일명 ‘착한 사마리안법’) 제5조 제2항은 선의의 응급의료 행위에 대한 면책 규정을 담고 있다.

응급의료법 제5조 제2항에 따르면 일반인이나 응급의료종사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수행한  응급의료 행위에 대해 민사상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 책임을 면책하고, 사망에 대한 형사 책임을 감면한다.

불이 난 차안에서 택시기사를 밖으로 옮기고 응급처치를 한 '의사 승객'이 바로 이 조항의 적용을 받는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의사 승객'이 택시기사에게 한 응급처치는 응급의료종사자로서 업무수행 중이 아닐 때 수행한 응급의료 행위가 된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만일 이 택시기사의 상태가 악화되고 가족 등이 의사의 응급처치 행위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제기한다면 뜻하지 않은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응급의료법 제5조2항과 관련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힘들다”며 “만일 이와 유사해 경우에 환자 측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분쟁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운이 나쁠 경우 선의의 의도로 응급처지를 한 것이 의료분쟁으로 이어질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조항이 실효성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란 점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에 이런 법 규정조차 없을 때는 훨씬 문제가 많지 않았냐”며 “법적인 근거조항을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실효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환자가 살면 미담이 되고, 상황이 나쁘면 처벌이 따른다”는 한 의사 트위터러의 트윗이 현실을 그대로 짚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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