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성형외과 전문의, 충북 백곡보건지소 근무)


<식코>는 보지 않았다. 하지만 <하얀 정글>은 이전부터 얘기를 워낙 많이 들은 데다가 내용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고 감독에 대해서도 갖가지 (좋은 얘기도 나쁜 얘기도)근거가 불분명한 소문들을 많이 들어온 처지인지라, 제한적이나마 극장개봉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래 욕하려면 최소한 직접 보고 나서 욕하는 게 맞겠지’ 라는 생각으로 예매해 주말 저녁에 혼자 보고 왔다.

감상에 앞서 다른 건 둘째치고 언론에서 떠들던 것과는 달리 일단 극장에서의 성적은(단순히 돈 벌려고 만든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사람이 많이 봐야 만든 의미가 있겠지) 별로일 것 같았다. 굳이 좋은 자리에 앉겠다고 따로 예매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일요일 저녁의 느긋한 시간이었는데 함께 본 사람이 약 10명쯤 되었던 듯했다.아무튼 영화를 직접 감상한 뒤 느끼고 생각했던 대략적인 내용은 영화 본 날 트위터에서 바로 떠들었었지만, 거기에 살을 좀 붙여서 정리해보았다.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해두지만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려고는 하면서도 의사라는 스스로의 입장을 인식하면서 영화를 봤고 감상평을 작성하였다

다양한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는 송 감독의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적어도 '모든 건 의사 탓'이라는 일방적인 결론에 매이지 않은) 시선과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인터뷰가 결국 기자의 입맛과 논지 방향에 맞춰 변형되고 심지어는 왜곡되기 마련인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러기에 무척 좋은 내용의 인터뷰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실제로 의사들만 나쁜 놈들로 몰아가는 식으로 편집된 인터뷰 기사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뭐 덕분에 의사집단 안에서 욕도 많이 먹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욕먹는 이유에는 감독이 전공한 과가 산업의학과로 흔히 생각하는 ‘임상’ 및 ‘진료’와는 거리가 좀 있는(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임상을 볼 수도 있지만 트레이닝 과정과 내용 및 트레이닝 후 대개의 진로가 다른 임상과들 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의미) 과이고,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지 지금 시점에서 3년차밖에 되지 않았다는(영화 제작 시점에선 2년차였을 듯?) 점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욕 할 땐 욕하더라도 일단 영화를 보고 나서 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 중 하나가 송 감독의 의대 졸업 연도가 나와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형병원 및 개원가의 표면상 및 물밑에서 실제 어떤 이유로 어떤 진료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얼마나 잘 알기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당연히 적어도 보드를 딴 지 10년 가까이는 된 사람이 직접 산전수전 겪으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하얀 정글'을 바라보는 의사들의 불편한 시선(라포르시안 인터뷰)위 기사에서 송 감독은 “언론이 최종적인 감독의 메시지보다, 파편적인 에피소드들과 병원 고발에 치중한다. 그것이 더 대중들에게 솔깃하기 때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더 나은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만들어가는 데 발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중적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 나니 송 감독 자신이 최종적 메시지보다는 자극적이고 파편적인 에피소드와 병원 및 의사 고발에 휩쓸리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당장 홍보 문구(사실 송 감독 본인이 지정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겠지만)인 '현직 의사가 밝히는'이라는 말부터가 그렇다. 뭐, 엄밀히 말해 의사 면허증을 지니고 있고 의사로서 현직을 수행하고 있으니 틀린 것은 아니지만, 흔히 생각하는 의사인 일반적인 <임상의>가 아니기에(민간 보건관리 대행업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분명 보건관리도 임상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진료'와는 차이가 있으니 하는 소리) 임상 현장 입장에서는 외부인인 것이고, 실제로도 자신이 보고 겪은 내용이 아니라 '의사가 아닌 제 3자'로서 인터뷰하고 취재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의사의 내부 고발'이라고 보는 데 무리가 있다는 뜻인데 '현직 의사가 고발하는' 내용임을 내세우는 것은 센세이셔널리즘을 통한 홍보문구밖에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의사들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의사 개개인, 또는 의사집단 자체의 돈 욕심이나 비리 같은 것에 중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결국은 '의료산업화'라는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해 서민층은 경제적인 이유로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며, 그 시스템 속에서 많은 의사들도 자신의 뜻과는 다른 산업적 경제논리의 진료행위를 반 억지로 해야 하는 일종의 피해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물론 주안점은 그러한 의사들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이야기지만).

대신 의료산업화를 추진하는 대기업들과,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세력의 욕심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종합병원 노조 파업으로 인하여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뉴스에 달린 댓글 대부분이 병원 노조 및 파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페이 닥터 신세인 의사들을 욕하듯이, 많은 사람들은 병원과 의사를 구분지어 생각하지 않으며, 의료계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은 일단 ‘닥치고 의사’를 탓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부정과 비리나 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몇 명 밝혀지면 그 이미지를 의사 집단 전체에 투영하는 성향이 있다. 게다가 송 감독 자신도 밝혔듯이 언론에서 영화 전체의 메시지보다는 자극적인 에피소드와 병원 고발에 더 집중하고 있고, 아마도 직접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 중 상당수도 특별히 이쪽에 관심을 많이 갖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극적인 에피소드 정도만이 두루뭉술하게 기억에 남을 텐데, 그 결과 결국 의사에 대한 반감이 커지지 않을까 - 라는 걱정을 의사들이 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영화가 다룬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나서서 노력했다고 할 수는 없기에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럼 다시 영화 자체의 얘기로 돌아가서, 위에서 언급했듯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자체의 메시지보다는 편파적인 에피소드와 병원 고발에 치중하고 휩쓸리게 되는 데는 송 감독 자신의 책임이 상당하다고 본다. 그러한 정서를 유발시키거나 올라타려는 노골적인 연출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일단 굉장히 거슬렸던 음향과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다 보니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음악이 깔려있지는 않았는데(적어도 뇌리에 남지는 않았다), 이따금씩 청각을 굉장히 불쾌하게 자극하는 음악이나 음향이 나올 때가 있었다.

주로 환자가 굉장히 억울하게 치료를 제대로 못 받게 되거나, 자본계층에서 의료산업화를 추진하여 수익을 추구하면서 국민(서민)의 등골을 빼먹거나, 병원이 부정과 비리의 경계선상에서 춤을 출 때 그러한 소리가 들리곤 했다. 다른 곳에서 녹음된 노래나 트랙을 배경음악으로 깔아놓되 이상할 정도로 그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음질 또한 고의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떨어지는 트랙을 사용해 불쾌감을 조성하고 있다. 야비한 무리들이 돈독이 올라서 나쁜 짓을 하고 그래서 불쌍한 국민들이 고혈을 흘리는, 안 그래도 기분 나쁜 장면에서 소리 그 자체만으로도 생리적으로 불쾌해질 정도의 저질 음원을 사용하여 더더욱 혐오감을 조성하는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예를 들자면 대형병원에서 과장단 회의 때 과별 수익(매상)을 순서대로 발표해 암암리에 수익을 더 올리도록 압력을 가한다면서 '의사 개인별 수익 순위까지 발표하지는 않았다'고 나레이션을 깔았는데, 그러면서 실제로는 발표하지도 않았다는 그 개인별 매상 순위를 ‘가상으로’ 발표하는 영상이 나온다. 1등 슈바이처 몇 천만 원, 2등 허준 몇 천만 원,  그러더니 상위권에게는 참 잘했어요 짝짝짝, 하위권에겐 푸하하하 비웃음을 날리는 음향이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하지 않았다는 일도 가상으로 보여주면서 유치할 정도의 음향을 더해 노골적인 혐오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려는 작위적인 연출이라고.

영화를 만든 목적이 의료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민영화의 폐단을 보여주려는 것 같기는 한데, 애당초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이런 공공의료도 영리의료도 아닌 어중간한 기형적 형태가 된 이유가 의료를 공공재 취급하면서도 육성과 공급 자체는 민간에게 맡긴 정부 정책 때문이라는 사실을 언급은 하면서도 그 원론적 문제를 고쳐야한다는 문제 제기는 너무 약하다. 대신 결론은 의료공급자 및 기업들이 돈 욕심을 버려야한다는 풍의 비현실적인 얘기만 반복될 뿐이다. 그것을 현실에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렇게 하려면 결국 투자를 하는 이상 돈벌이가 목적일 수밖에 없는 민간 대신에 공공에서 의료를 담당해야겠지. 공급은 민간이 하지만 생색만은 공공영역이 내는 현재의 시스템 말고. 하지만 현상의 기본 원인을 뜯어고치자는 말은 별로 안 나오고 표면상의 문제만 계속 지적하며 '규제가 없다' '규제가 필요하다'는 말만 몇 번이나 나오는지. 제도와 체계라는 게 규제를 끊임없이 더함으로써 과연 발전하는 것이었단 말인가?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표방하고는 있는데, 감독이 너무 대놓고 화자로서 개입하며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장면이 많아 다큐멘터리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실제 현실조차 아닌" 의사 개인별 매상 순위를 발표하며 참 잘했어요 짝짝짝 또는 비웃음의 음향을 깔아놓는 유치한 느낌의 장면도 그렇지만, 의료급여 수급자가 너무 자주 여러 번 나랏돈(사실은 국민세금과 보험금이겠지만)으로 진료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자 '당연히 나라에서 해줘야죠!' 라고 감독이 나서서 말하는 장면이나, 의료민영화 내용을 잘 모른다는 할머니에게 '그래도 일단 반대는 해야죠!'라며 선동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사례.

후자의 경우 영화 앞부분에서 인터뷰했던 여러 노인 환자들을 다시 찾아가 '의료민영화 들어보셨어요?'라고 묻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 똑같은 노인 환자들에게 '종편채널편성 들어보셨어요?' '한미 FTA 들어보셨어요?' '선관위 디도스 공격 들어보셨어요?' 라고 물어봤을 때에 긍정적인 대답을 얼마나 많이 받을 수 있었을까? 물론 개인차가 있고 ‘노인 = 뉴스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편견임에 분명하겠지만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한 계층에 노년층이기까지하면 의료민영화 뿐 아니라 그 외의 다른 시사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못 들어봤거나 내용을 모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겠는가. 의료민영화라는 중대한 사실에 대해 정작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계층이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 같았지만, 모집단 선정 자체를 편파적으로 했으니 편파적인 결과 해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문제의 할머니의 경우 의료민영화 자체를 들어보기는 했으나, 그 내용을 잘 아느냐는 질문에 '아무도 설명을 안 해줬으니 잘 모른다'는 대답을 한다. 거기에 대고 감독이 냅다 날린 말이 "그래도 일단 반대는 해야죠!"다. 이 장면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이 반대한다고 안 하겠어?'라는 할머니에게 감독은 다시 한 번 '반대가 모이면 못 해요. 저도 반대하는데' 라며 반대를 종용한다. 나도 솔직히 반대하는 입장이고, 반대하자는 것은 좋은데, 왜 뭐가 나빠서 반대하라는 것인지는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전자인 '당연히 나라에서 해줘야죠!'도 꽤나 거슬렸다. 같은 내용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표현에 따라 참 달라지게 마련인데, 무상(?)의료의 폐해를 온몸으로 맛보는(내가 있는 보건지소는 65세 이상은 무조건 무료. 게다가 의약분업 예외 원내처방 지소이기 때문에 진료비 처방료뿐 아니라 약까지 무료로 받아간다. 그러다 보니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현장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공보의로서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는 방법을 찾아줘야죠'라는 말과 '당연히 나라에서 해줘야죠!'라는 말은 분명히 그 여파가 다르다고 본다. 공무원들의 실적 과시용 탁상행정의 표상인 순회진료 나가서, 문진 상 아프고 불편한 곳이 특별히 없다는 사람에게 아무런 처방도 내지 않았더니 왜 자기 약 안 주냐고 화내고, 아픈 데가 없다면서 내가 왜 약을 주겠냐고 반문하자 그럼 파스라도 줘야하는 거 아니냐고 다시 화내는 근성도 딱 저런 생각에 기반을 둔 것이겠지. 

저수가 문제에 대한 언급 거의 없어한국 의료시스템과 돈 얘기가 나오면 의사들 입장에서 항상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게 될 수밖에 없는 내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저수가 문제이다. 한미 FTA와 의료민영화 떡밥 덕분에 상당히 많이 퍼진 스크린샷 중에 미국과 인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특정 수술에 대한 의료수가를 비교해놓은 표가 있는데 대개는 '한미 FTA 체결되어 의료민영화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수술비가 이렇게 비싸진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반대로 '의료비 비싼 미국은 물론이요 우리나라보다 경제수준이 한참 떨어진다고 인식되는 인도하고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이렇게나 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표(의 일부)였다. 비보험 추가항목이니 각종 검사니 '의료'와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피부미용, 비만 등에 매달리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정상적인 보험 진료로는 수지타산은커녕 적자를 면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수가 체계 때문인데 영화 안에서 이에 대한 설명은 역시나 거의 전무하다(딱 한 번 '낮은 수가 문제도 있지만~'이라는 식으로 그야말로 한 마디 언급만 하고 지나간다).

되레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대규모 의사파업 후 수가를 4차례나 올려주었다는 언급이 나오는데(원가의 70%에서 80% 수준으로 올려줬던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보험진료의 경우 평균적으로 진료에 소요되는 비용 중 7~80%밖에 건지지 못하는 셈) 그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수가를 다시 깎았다는 사실은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만 보면 수가가 굉장히 많이 올라간 줄 알 것이고, 당연히 수가 타령하는 의사들에게 반감이 생길 것이다.  

의사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이 바로 들었을 이런 수가 관련 지적에 대해서 송 감독은 ‘라포르시안 인터뷰’(관련기사 "의사들은 나쁜데 나만 양심 선언하는 듯 비춰져 황당" )에서 '의사입장에서는 그런 점이 굉장히 크게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수가 이야기는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대중영화에서 꺼낼 수가 없었다'라고 답변했는데 정말 이제는 지겹게까지 느껴지는, ‘의사에게 일방적으로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고 불리한 점이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대중은 의사를 돈 많은 착취자, 환자는 약자의 입장에서 속고 돈을 뜯기고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로 의사가 피해를 입는 모습을 보여주면 싫어한다’는 그놈의 국민정서 타령.

뭐, 위에서 링크했던 인터뷰 기사에서도 그렇고 감독 스스로가 '대중영화'라고 공표하고 있으니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홍보하고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려는 것 자체가 잘못일 수도 있겠다. 현실과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감독의 사상과 생각만을 관객에게 종용한다는 측면에서 정말 대중영화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감독 스스로의 작품이자 영화니까 어떻게 만들고 무슨 말을 하든 자기 마음대로인 것은 맞는 말이겠지만, 홍보와 언론 덕분인지 이 영화가 그런 식의 '주관적 사상 전달 작품'이라는 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지 사뭇 걱정도 된다는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 건강보험 보장성을 다른 나라와 비교는 하면서도 평균 가구 수입의 몇 퍼센트를 건강보험료로 내는지 비교하지는 않는다. 보장성을 늘리고 복지를 늘리는 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니 실무가라면 그 재원을 어디서 확보해야할지를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아무런 생각없이 이상론 수준의 단순한 희망사항을 얘기하듯이 북유럽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복지 현황을 비교하면서 그들 국가에서 세금을 몇 퍼센트 씩 내는지를 빠뜨린다면 단순 선동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백혈병 환자의 진료비에서 본인부담금 3,400만원 중 1,990만원이 부당 청구된 금액이라고 설명하는데 단순히 '부당청구'라고만 한다면 심평원의 '부당청구'의 기준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지 직접 겪어서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문이 들게 된다. 좀 더 확실하고 정확한 내용이 나오길 기다렸으나, 역시나 나오지 않았다.

▲ '하얀 정글' 속 한 장면.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어 운영하는 일산병원도 적자라거나, 국립공공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의료급여 환자를 가장 받지 않는 병원이라는 사실은 현재의 수가 체계에서 '정해진 대로' 하면 어떻게 되는지, 무조건적인 손해와 적자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의료급여 환자를 기피하게 되는 이유는 같은 질환에 대해서도 의료보험 환자보다 수가를 덜 쳐준다는 점도 있지만 그 수가마저도 제대로 지급을 안 해주는, 어찌 보면 저소득층의 진료와 건강에 기여를 더 많이 하는 병원일수록 은행 빚지고 더 빨리 망하게 해서 사회안전망을 붕괴시키는 정부와 건보공단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화에서는 무조건 불쌍하고 돈 없는 의료급여 환자를 안 받으려 하는 (대형)병원들만 비판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본인부담금이든 건보공단에 청구해서 받는 것이든 총 수가 지급액이 중요한 것인데 그 수가를 더 싸게 잡고 그나마도 제대로 지급을 안 해주니 당연히 기피하게 되는 것인데 그게 어째서 닥치고 병원이 비난받을 일인가. 영화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라포르시안 인터뷰에서 송 감독은 '일반인들은 의사도 빚을 얻어서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라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인정하더라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더라.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안 되지. 그래도 의사인데…”라는 식의 심정적 기대랄까, 의사에 대한 어떤 로망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감독 자신도 영화를 통해 그러한 잘못된 인식을 고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고 되FP 이에 편승해 자신의 어젠다를 펼치려 했다는 점이다. 무려 '현직 의사가 밝히는' 이라고 홍보되는 영화인데 의사의 입장에서 까지는 아니어도 의사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인식을 그대로 활용해서는 안 될 것 아닌가.

영화의 메인 테마로 생각되는 의료민영화 이야기는 송 감독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결국 앞서 설명한 이유들로 인해 두루뭉술하게 '의사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지기 쉬워 보인다. 게다가 의료민영화가 대다수의 의사들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에 대해서 일체의 설명도 없어서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료민영화를 바라고 있다는 인식마저 강화시킬 것 같다.무언가를 반대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게 진정 건설적인 반대가 되려면 반대하는 그 대상이 애초에 생기게 된 원인이 뭔지도 생각해보고, 반대할 대상을 발생시키는 원인도 근절시켜보려는 생각이나 노력을 해보고, 반대하는 대상이 무효가 되었을 때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좋지 않겠나. 그러한 것들을 배제한 채, 공공의료의 부재라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얘기하지 않고 ‘돈 욕심이 문제다’라는 식으로 몇 몇 개인 또는 집단(아무리 큰 기업이라고 하더라도)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좀 심하게 말해서 착한 척하며 대중을 선동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영화 막판에 의료민영화의 문제점을 다시 비춰주고 강조하면서 영화의 메시지를 정리하여 전달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다만 앞서 누누이 얘기했듯이 뒤틀려 있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얘기는 없이 그저 ‘규제가 없다’ ‘규제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만 나온다는 한계와 더불어 대중의 심리에 따라 이러한 메시지보다는 개별적이고 자극적인 에피소드에 파묻힐 공산이 크다는 게 문제. 그래서 영화 전체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여 결론을 내자면,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감독의 생각과 그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있는 한 편의 '대중영화'였다. '다큐멘터리'라던가 '현직 의사가 밝히는' 이라는 문구는 진정성이 없는데다가 영화 자체가 선동성이 농후한 편이므로 이 두 문구는 가급적 머릿속에서 배제한 상태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의 내용과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확실하게 생각을 하면서 감상하고, 영화 관람 후에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상영관도 많지 않고 영화 표 값도 비싼 세상이니 심심풀이나 오락 영화로 보기에는 이래저래 많이 억울할 테고, 기왕 볼 것이라면 무작정 감독의 생각만 주입 받는 것이 아니라 뭔가 제대로 건지는 게 좋지 않겠나.

이 글은 블로그에 게재된 포스팅을 라포르시안의 요청에 따라 원저자가 재정리해 기고한 것입니다. 원글은 http://ayako.egloos.com/4653228 로 접속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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