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요양기관이 요양급여비용 청구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하는 청구명세서에 진료의사의 정보(성명, 면허종류, 면허번호)를 기재토록 하는 진료실명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허위청구, 부당청구의 방지, 의료소비자 보호 및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한 입법목적이 있다고 한다. 부동산실명제나 금융실명제가 탈세의 방지를 위하여 도입된 것이고, 진료실명제는 허위청구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실명제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의료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시각이 좋지 않게 여론몰이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계를 너무 적대시하는 방향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본다. 꼭 이런 제도를 도입해야 허위청구가 방지되는지,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데 불법을 양산하는 집단으로 몰아가면서까지 제도를 도입할 만한 사회적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겠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요양급여비용의 청구의 주체로 “요양기관”을 규정하고 있지만 누가 진료를 하였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이미 의료법 제22조에서 의료인은 의료행위에 관한 사항과 의견을 상세하게 기록 보관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제21조에서 환자가 본인의 진료기록의 열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진료에 관여된 사람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통하여 환자의 알권리도 보장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제12조 제3항에서도 최초로 청구하는 때에 요양기관의 인력에 관련된 정보를 심평원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조 제4항에서는 인력의 내용에 변경이 있는 때에는 변경한 날부터 15일 이내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요양기관이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다음에도 그에 관한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공단과 심평원은 요양기관 현지 확인 및 현지조사를 통해 행정처분, 명단공표, 형사고발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진료비 청구에 대한 사후관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현행 법제도 내에서도 진료실명제를 실시하기 위한 입법목적인 허위청구 등을 사전적으로나 사후적으로 제한할 수단이 많다. 특히 허위청구와 관련된 과징금 5배 규정과 더불어 의사면허자격정지 1년 이하 규정은 가장 강력한 제제수단으로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제도가 도입되면서 상대방이 입을 피해가 과도한 경우 위헌의 소지가 있다. 과잉금지의 원칙이 그 이유이다. 

입법목적중의 하나인 환자나 의료소비자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은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환자나 의료소비자의 알권리 충족이 아니라 심평원이나 공단의 알권리 충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겠다. 보험청구를 환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는 진료를 받으면서 현장에서 그리고 진료기록부 열람을 하면서도 충분히 알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또한 실명제 개정안은 요양급여비용을 실제로 수령하는 병원이 아닌 진료의사의 정보를 기재함으로서 의료인의 책임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청구한 병원이 아니라 진료를 한 의사에게 행정적 불이익 책임을 지우겠다는 입법도 따라와야 할 터인데 이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러한 면에서 복지부가 주장하는 입법목적이 상당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발견된다. 입법목적이 명확하지 아니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다.

의료인의 책임성 제고 및 환자의 알권리보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이로 인한 기본권 제한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현재에도 업무정지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부과요건을 강화한다든지, 업무정지 대신 납부한 과징금을 체납하거나 지연하는 경우 과징금 처분을 취소하고 업무정지로 변경 처분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현지조사 등의 조사거부기관에 대한 업무정지기간을 연장한다든지 등 여러 가지 기존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가 현재 마련되어 있고 추가적인 방안도 여러 가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의사의 개인정보를 기재하도록 하는 것은 '기본권 제한 수단을 선택할 경우 보다 덜 침해적인 수단을 선택하여야 한다'는 기본권 침해의 최소 침해성 원칙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다. 

요양기관의 입장에서도 협진이나 그룹프랙티스를 하는 경우 관여한 모든 의료진을 진료한 의사로 넣어야 할지에 대한 행정적 혼란이나 이를 위한 별도의 행정업무 과중의 문제점도 있다. 행정착오로 실제 진료의사가 아닌 의사를 신청서에 기입해 청구한 경우 허위청구를 한 것으로 오해를 받아 행정처분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될 것이 예견된다. 진료실명제에 따르면 진료의사의 진료방법이 모두 노출되어 통계화 될 수 있는 문제점도 있다. 이는 진료의사의 진료에 따른 요양급여비용 청구의 삭감률 통계화로 진행될 수 있어 진료의사 개인이 의학적 타당성에 근거한 소신 있는 진료보다는 요양급여기준에 부합하는 소극적인 진료를 하도록 사실상 간접적인 강제의 요소로 작용될 우려도 높다.

진료실명제가 도입되면, 의료계 입장에서도 공단에 요양급여비용도 실명에 따라 지급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경험에 따라 노련한 의사는 경력이 적은 의사보다 급여도 높을 것이니 노련한 의사가 진료한 경우엔 더 많은 요양급여비용을 달라고 청구할 수 있어야 서로 공평한 것이 아닌가 싶다.

김선욱은?

1994년 한양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2003년 대한의사협회 법제 상근이사 2008년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학교 시장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2009년 대한병원협회 고문변호사2011년 법무법인 세승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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