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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원격의료·의료한류 같은 복지부 정책에도 ‘최순실 빨간펜’ 첨삭?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6.10.2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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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황망한 일이 벌어졌다. 설마설마했는데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를 둘러싼 각종 국정 개입 의혹의 실체가 고구마 줄기 엮이듯 줄줄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썩은 내가 진동을 한다. 일개 민간인 신분의 최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에 빨간펜으로 첨삭을 하고, 그렇게 수정된 내용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국정 메시지로 둔갑해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는 건 충격 그 자체다. 법적으로 유출이 금지된 대통령기록물이나 국가 기밀사항에 해당하는 수많은 문건이 유출됐다는 의혹을 접하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박근혜 대변인, 최순실 대통령'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엄중한 사안이다. 아무런 공직도 없는 민간인 최씨가 국정을 사유화한 꼴이다. 최씨는 물론 그와 연루된 비선모임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불법적인 권력을 남용했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을 뒤에서 맘대로 조정했다는 말이다. 강남의 어느 모처에서 비선 실세들이 모여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에 손보고, 정부 요직 인사를 좌지우지 하면서 낄낄거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박근혜 정부, 아니 '빨간펜 정권'의 등장에  최소한의 기여라도 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모욕감과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지. 일반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작금의 황망한 상황을 접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모든 국정과제와 관련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서 강한 의심이 든다. 특히 창조경제니 규제 혁파니 하는 정책 방향이 모두 최씨의 빨간펜을 거쳐 나온 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지금까지 쏟아낸 '말'이  실은 최씨의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국무회의 석상에서 '규제는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라거나 '규제를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야 한다'는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당시에도 대통령의 이런 어휘 선택을 놓고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규제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 섬뜩하고 거친 용어를 사용해야 했을까 의문도 들었다.

이런 의문을 풀 열쇠가 최순실 씨의 것으로 추측되는 태블릿PC에서 나왔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씨의 PC에는 대통령 연설문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자료, 국무회의 자료, 지방자치 업무보고 자료 등이 들어 있었다. PC에 들어 있는 파일 리스트 가운데 눈에 띄는 파일명이 있었다. '130128고용복지_업무보고_참고자료'라는 파일명이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가동되던 2013년 1월 28일 고용복지분과위의 업무보고 참고자료라는 의미인 거 같다. 고용복지분과위의 업무보고에는 보건복지부가 포함돼 있다. 이 나라의 보건복지 정책에 최씨의 빨간펜이 닿았던 건 아니었나 의심이 든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보건복지부는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의료산업 육성과 이를 통한 새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 왔다. 의료산업 육성을 위해 원격의료, 의료관광, 해외의료 진출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추진했고, 이를 위한 규제 완화에 매달렸다. 오죽하면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보건의료산업부'로 불릴 정도였다. 원격의료 활성화 정책은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였다. 청와대나 복지부의 정책 추진 의지는 집착에 가까웠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발언에서 원격의료를 직접 언급했다. 

이제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곳곳에 최순실의 빨간펜이 그어졌다는 의혹과 증거가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최씨의 측근 인사들 주도로 이뤄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기부금 모금을 둘러싼 의혹을 놓고 '창조경제 게이트'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두 재단 설립을 위해 대기업들은 막대한 기부금을 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가 창조경제로 포장하고 추진해 온 의료산업 육성 정책도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미 예전부터 복지부가 추진하는 의료산업화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될 것이란 의구심이 제기됐고, '재벌 특혜' 정책이라는 비난이 제기되온 터였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 상황에서 복지부 관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우리도 몰랐다'거나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존재'라는 말로 자기 위안을 삼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상관없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비슷한 상황이니까. 다만 '혼이 비정상'인 정부 아래에서 국민에게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정책 추진에 신중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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