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합리적 방안 찾겠다” 모호한 입장…의료계 “사회적 합의 후 관련법 개정해야”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사진 위>와 구 산부인과의사회<사진 아래)가 정부의 낙태수술 처벌 강화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현행 모자보건법상 허용되는 범위 밖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놓고 의료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거세다. 의료계와 정부가 이 문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했지만 입장차를 줄이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방문규 차관과 의사협회 김록권 상근부회장, 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 등은 지난 19일 오후 시내 모처에서 만나 불법 낙태수술 논란과 관련해 의견을 나누었지만 뚜렷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이날 회동에서 김동석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복지부 차관이 의료계 입장을 충분히 듣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문제와 관련해 의료현장에서 겪고 있는 고충을 전하면서 낙태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이룬 다음 관련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순서를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특히 1973년 2월에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일본의 법을 그대로 베껴서 만들었는 데 정작 일본은 사회경제적 이유를 넣는 등 합리적으로 수정했다. 합리적 수정을 거친 후 처벌을 하더라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덧붙였다.박노준 산부인과의사회장은 "낙태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처벌해서는 안된다. 비도덕적 진료행위 범주에서 제외하라는 뜻을 강력하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의협도 "비도덕적 진료행위란 말은  이상하다. 왜 도덕을 법으로 규정하느냐"며 "'비도덕적 진료행위'라는 명칭부터 바꾸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의료계의 문제 제기에 일정 부분 공감을 표시했지만 이미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수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방문규 차관은 "비도덕적 진료행위 등에 대한 전문가평가제도는 의협에 회원을 관리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겠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됐는데 이런 문제가 생겼다"며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것에 유감을 표시했다.

방 차관은 낙태수술 의사 처벌 강화와 관련해서는 "의료계뿐 아니라 여러 단체의 의견을 수렴한 다음 합리적인 방안을 정하겠다"면서 "11월 2일 입법예고가 끝난 시점에 맞춰 결론을 낼 계획이다. 불법 낙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모자보건법 등 관련법 개정은 장기적으로 검토할 사안이니 별도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뒤로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지난 10월 17일 광화문 광장에서 73개 여성·사회 단체가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gangnam10th/) 갈무리

"낙태죄 자체를 폐지해야"한편 낙태수술을 한 의사에 대해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은 사회적으로도 큰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폴란드에서 '전면적인 낙태 금지법'에 반발해 수만 명의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시위에 나선 것처럼 한국판 '검은 시위'도 열렸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는 페미니스트 그룹 ‘불꽃페미액션’ 등의 주도로 검은 옷을 입고 낙태수술을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특히 지난 17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성과재생산포럼',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등에 참여하는 70여개 여성·사회단체가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 의사를 처벌하는 관련 법안 철회와 함께 ‘낙태죄’ 폐지를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 포함시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나, 법안이 통과될 경우 시술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의사들의 태도 모두 ‘낙태죄'의 존재로 인해 발생해 온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여성들만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한다"며 "개정 입법예고안을 철회하고 형법상 낙태죄 또한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더 이상 국가의 인구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안에서 인공임신중절 사유를 허락받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머무르지 않겠다"며 "임신중절에 대한 비범죄화를 기초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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