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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 정수윤 옮김 / 한빛비즈 펴냄 / 2016년

 

[라포르시안] 미국 가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공감과 반대의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선정이 파격적이었음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시와 소설 등으로 국한되어 있던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마침 Book소리에서 소개하려고 읽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읽을 수 있어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 문단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독보적 위치는 아쿠타가와상이 제정된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35년부터 매년 2회 시상되는 아쿠타가와상은 문예춘추사가 그를 기념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본 최고의 문학상입니다. 그는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라쇼몽(羅生門)」에서 보는 것처럼 전설과 민담 등 옛 이야기에서 가져온 꼬투리를 바탕으로 독특한 단편들을 써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단편집 <라쇼몽(羅生門>에 실려 있는 단편 「덤불속」에서는 같은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사정에 따라 다르게 기억하는, 기억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수필 모음집입니다. 이 책에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주고받은 문예론에 대한 수필을 중심으로, 창작철학이 담긴 수필 그리고 당대의 문인들과의 인연을 소개하는 수필 등 70여 편을 담았습니다.

당시 일본 문단에 유행하고 있던 ‘내용이 먼저고 형식은 나중이다’라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 그는 ‘작품의 내용이란 필연적으로 형식과 하나가 된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눈과 마음으로 파악한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부단하게 노력했습니다. 즉, 문체의 아름다움과 정확함을 동시에 추구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문체에는 눈에 호소하는 아름다움과 귀에 호소하는 아름다움이 둘 다 존재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눈에 보일 듯한 문장’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스승인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 나오는 ‘사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커다란 말 발자국 속에 비가 가득 고여 있었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한 문장으로도 비 내리는 시골길 느낌이 잘 살아있다’라고 평했습니다. 마치 비가 내리는 시골길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듯이 묘사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글을 쓰게 된 것은 문학을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정작 자신은 친구의 부추김 덕분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토로합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쓰고 싶어서일 뿐, 원고료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듯 천하의 민초를 위해 쓰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어렸을 적부터 옛 이야기를 듣고 자랐을 뿐 아니라, 엄청난 분량의 책읽기도 한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경험에서도 보면 읽은 책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서 글쓰기가 자연스러워졌던 것 같습니다.

앞서도 내용과 형식은 모두 잡아야 할 중요한 요소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는 ‘무엇보다도 작품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21쪽)’라고 말합니다. 완벽이라는 의미는 빈틈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세분되고 발달된 여러 관념들을 완전히 실현하자’라는 것인데, 그 개념이 분명하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완벽한 작품을 쓴 대표적인 문인으로 괴테를 꼽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적은 다음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능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게으름을 피워서는 그 한계가 어디쯤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다들 괴테가 될 생각으로 정진할 필요가 있다.(22쪽)” 큰 아이가 어렸을 적에 제가 해주었던 이야기와 맥이 통하는 듯합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분명 무언가 할 역할이 맡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여 힘을 길러야 한다.”

혹시 소설쓰기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라면 그의 수필 ‘열 가지 소설 작법’을 새겨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소설가는 시인이자 역사가 내지는 전기 작가다’라는 대목을 핵심으로 보았습니다. 소설가가 그리는 내용 자체가 어떤 사회에 사는 한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설가의 사명’이라고 보았습니다. ‘문예는 문장을 빌려 표현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소설가라면 문장 수련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라는 대목은 당연한 말일 것입니다. ‘소설가가 되고자 한다면 철학적, 자연과학적, 경제가학적 사상에 반응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대목은 이해가 쉽지 않지만, 소설가는 자신이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지 남의 논증을 빌어다가 써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된 어머니의 발광으로 외삼촌의 양자로 자란 그는 복잡한 가정사정과 함께 모친의 병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듯, 35세 때 ‘그저 막연한 불안‘때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고 합니다. 창작에 관한 수필의 마지막 ‘암중 문답’은 그가 남긴 유고입니다. 자신과 또 다른 나의 목소리의 문답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는데, 죽음에 대한 생각도 담겨 있습니다. 자신이 늘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오만한 생각이 죽음을 자초할 수도 있음을 지적합니다. 한편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내비치면서 ‘함부로 자살하는 것은 사회에 지는 것’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와일드가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합니다. ‘굳세게 버텨라. 너 자신을 위해. 네 아이들을 위해. 우쭐거리지 마라. 비굴해지지도 마라. 이제 다시 시작이다(86쪽)“라고 ‘암중 문답’을 마무리하고 있어 죽음의 유혹을 떨쳐버린 것 같지만, 결국은 이겨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창작론에 이어 문예론을 다룬 수필들을 모은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은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이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이야기를 갖추고 있는데 무슨 소린가 싶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란 단순히 줄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이란 시에 가까운 소설로, 산문시보다는 소설에 가까운 형식으로 쓰인 시를 말합니다. 새로운 개념의 소설에 대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탐미주의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반대의견을 내놓으면서 논쟁이 벌어졌던 모양입니다. ‘문학에서 구조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풍부한 것이 소설’이라거나 ‘줄거리가 주는 재미를 없애는 건 소설이라는 형식이 가진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다니자키의 주장에 아쿠타가와는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다니자키가 주장하는 것들은 소설보다 오히려 희곡에 더 잘 어울리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다니자키도 시적 정신에 대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위대한 친구여,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라’라고 권합니다. 예술의 가치는 예술 그 자체에 있다는 예술지상주의자 아쿠타가와는 줄거리보다 시적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실 아쿠타가와와 다니자키는 자주 어울리는 친한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치열하게 전개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사심 없이 존쟁을 벌일 수 있는 상대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씨는 그런 흔치 않는 사람이다.(159쪽)”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인가 봅니다.

다니자키와의 쟁론에서 보는 것처럼 아쿠타가와는 비평에 대하여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 갔습니다. “비평은 문예의 한 형식이다. 우리가 남을 칭찬하거나 폄하하는 일도 결국은 자기표현이다.”라는 말은 비평이 예술을 살찌우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소설이나 희곡이 서양작품에 한참 못 미칠지도 모르며 비평 또한 분명 부족하다’라고 인식했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가였던 모리 씨가 메이지시대에 자연주의 문예가 부흥하는 발판을 만든 인물이라는 점을 짚기도 합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사회는 서구사회, 그리고 중국과 비교하여 열등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문학의 구성력이 서구나 중국보다 떨어진다고 슬퍼한 다니자키씨와 논설에 대하여 아쿠타가와는 일본의 구성력이 서구나 중국보다 떨어지지 않으며 단지 방대한 장편을 써내는 육체적 역량에서 뒤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자키씨의 문장은 스탕달보다 훌륭하다고 격려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서양인이 모방에 뛰어난 일본인을 경멸한다고 인식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서양인 역시 일본인처럼 모방에 뛰어나지 않는가 반문합니다.

3부 ‘내가 만난 사람들’에서는 아쿠타가와가 교류한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하여 적은 수필들을 모았습니다. 이 수필집의 다른 장에서도 자주 이야기된 것처럼 그가 스승으로 모신 소세키에 관한 글이 많아 보입니다. ‘선생을 떠올릴 때마다 누구 못지않게 모질고 호된 사람이었음을 새삼 느낀다(130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아쿠타가와는 소세키를 어려워했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세키를 스승으로 모셨던 것인데, 소세키가 자신을 제자로 생각했는가에는 의문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소세키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참석하여 접수까지 보았던 그였지만 소세키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인에게 절을 하면서도 ‘이것은 선생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허둥지둥 고인에게 예를 올리고 물러나면서도 실감하지 못하였다는데, 장례에 참석한 많은 문인들은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린 듯했다고 합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지만, 그 뒤로도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4년뒤 그리고 7년 뒤에 찾은 소세키 산방에서 얻은 느낌을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장례를 치른 뒤에도 아쿠타가와를 비롯한 문인들이 소세키가 거처하던 산방을 가끔 찾아 그를 기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책상 뒤에 두 장이 포개진 방석 위에는, 어딘가 사자를 떠올리게 하는 키 작은 반백의 노인이 때로는 편지를 휘갈겨 쓰며, 때로는 당나라 시집을 뒤적이며, 홀로 단정히 앉아 있었다. …… 소세키 산방의 가을밤은 이와 같이 소슬한 느낌이었다.(213쪽)” 7년 뒤 다시 찾은 산방에서는 대학에 다니던 시절 소세키 선생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회상하기도 하고, 선생과 앞날을 상담하던 순간, 선생이 작고한 뒤에 부인과 함께 선생을 회고하던 순간도 적었습니다. 겨울이면 천장과 마루에 뚫린 구멍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힘들었을 터이나, “교토 근방 풍류인들 집에 비하면 훌륭하지. 천장은 구멍이 뻥뻥 뚫렸어도 아무튼 내 서재는 웅대하니까 말이야(221쪽)”라고 당당한 모습이었다는 등...

말미에 붙인 소설가 호리 다쓰오의 해설을 통하여 아쿠타가와의 삶과 작품세계를 보다 깊숙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쿠타가와의 초기 작품들은 <금석이야기집>에서 가지고 온 옛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옛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기 보다는 이야기에 감춰진 인간들의 다양한 심리를 해부해냈을 뿐 아니라 이를 생동감이 넘치는 문체로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를 소재로 한 작품도 여럿 썼는데, 대부분은 초기 일본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대에 있었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자살을 결심한 그가 예수에 대한 사랑을 담은 단편 「서방의 사람」을 남긴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예수 안에 자신을 깊이 새겨 넣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쿠타가와는 한 송이 백합이 솔로몬의 영화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낀 예수를 사랑했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늘 주변에 있는 결혼하는 신부, 포도원, 당나귀 등을 이용하던 저널리스트 예수를 사랑했다(315쪽)”는 것인데, 그럼에도 기독교가 금하는 자살을 택한 것은 정말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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