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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연구개발 단계부터 여성 차별은 시작된다젠더 관점 결여된 신약 연구개발 탓 부작용 확률 女 훨씬 높아…“보건의료 연구서 젠더 관점 결여”

[라포르시안] 지난 2010년 3월 26일자 사이언스지(Science)의 인터넷판 ‘뉴스 포커스’에는 'Of Mice and Women: The Bias in Animal Models'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이 글은 동물실험에서 관리가 쉽고 암컷에 비해 값이 싼 수컷이 주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렇게 도출된 실험결과 데이터가 성별로 분류하거나 분석하지 않은 채 신약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2009년 기준으로 생명의학 하위분야 저널에 게재된 실험동물을 다룬 논문에서 암컷과 수컷을 사용한 연구 비율을 분석한 결과,  생식생물학(Reproduction Biology)을 제외한 대부분 연구 분야에서 수컷의 비율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났다.수컷 위주의 동물실험 결과는 의약품 사용에 있어서 여성에게 차별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암컷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새로운 약물의 효과와 안전성을 적절하게 검증하지 않은 탓에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시판되다가 안전성 문제로 판매가 중단된 신약 10개 중 8개는 여성에게 훨씬 더 치명적인 부작용을 보였다. 이 중 4개 약물의 위험성은 남녀 신체의 생리적 차이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 연구에서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젠더 의학'(Gender Medicine)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의약품의 효과와 부작용 등에 있어 성별차이를 연구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 생명의과학센터 심혈관희귀질환과와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백희영 교수가 공동으로 펴낸 '보건의료연구에서의 젠더 혁신'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미국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연구에 젠더 관점의 적용이 필요함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론다 쉬빙어(Londa Schiebinger) 교수는 기초 및 응용 연구 분야에 성과 젠더를 고려한 분석 방법을 도입해 '젠더 편견'(bias, 비뚤림)을 제거함으로써 연구의 우수성과 질을 높이는 과정을 개발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난 2014년 10월부터 전임상 연구 단계에서도 성별 차이를 고려한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동물과 세포를 사용하는 모든 전임상시험의 연구 계획에서 성별 균형을 맞추도록 했다.

실험동물을 다룬 연구논문 분석 결과, 생식생물학(Reproduction Biology)을 제외한 대부분 분야에서 수컷의 비율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났다. 이미지 출처: 사이언스지 2010년 3월 26일자 온란인판 '뉴스 포커스'에 게재된 < Of Mice and Women: The Bias in Animal Models > 중에서

항암제 등 최대 10배 이상 남성보다 여성에서 부작용 발생 높아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아직까지 보건의료 관련 연구에서 이러한 젠더적 관점은 상당히 미약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여성건강은 주로 임신출산과 관련된 모성보호에만 초점을 맞춰 추진되고 있다.

국내 의약품 연구개발 과정이 주로 남성 연구자에 의해 수행됨에 따라 연구대상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여성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남녀 간 건강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의약품 부작용 발생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에 따르면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의약품이 다수 확인됐다.

특히 항암제의 경우 최대 9.6배, 백혈구 감소증 치료제의 경우 최대 12배까지 여성한테서 부작용 발생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본적 원인은 신약 개발단계에서 남녀 성별차이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자료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식약처의 2010~2014년 의약품 부작용 분석 결과에 따르면 다수의 신경계용 약물, 심혈관계용 약물, 근골격계용 약물, 소화기관 및 신진대사용 항암제 등에서 여성의 이상반응 발생률이 더 높았다.

해당 약물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사용 비율, 남녀 부작용 건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총 70개의 약물 중 남성에게서 부작용 확률이 높은 약물은 5개, 남녀 양성에서 부작용 확률이 같은 약물은 9개였다.

반면 여성에게서 부작용 확률이 높은 약물은 53개에 달했다. 나머지 3개는 어느 쪽에서 부작용 확률이 더 높은지 파악 할 수 없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항고혈압제인 니페디핀(Nifedipine) 성분 약물의 경우 여성한테서 부작용 확률이 2배 차이가 났고, 항암제로 쓰이는 독소루비신(Doxorubicin) 성분 약물의 경우 여자와 남자의 부작용 차이가 9.6배에 달했다.

백혈구 감소증의 일종인 '호중구 감소증' 치료제로 쓰이는 필그라스팀(Filgrastim) 경우 여성 환자한테서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남자보다 12배나 더 높았다.

성별로 부작용 발생률이 큰 차이가 나지만 국내 의약품 허가시 성별 차이에 따른 정보는 미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재근 의원이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보고된 의약품 부작용 건수는 총 76만5,229건으로, 연도별로 보면 2012년 9만2,375건, 2013년 18만3,260건, 2014년 18만3,554건, 2015년 19만8,037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도 작년 상반기와 비교했을 때 1만 건 이상 증가 한 것으로 집계됐다.

자료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성별로 부작용 발생 보고건수를 보면 2012년의 경우 남자 3만9,036건·여자 4만9,408건, 2013년에는 남자 7만5,634건·여자 9만6,203건, 2014년에는 남자 7만3,934건·여자 10만3,900건, 2015년에는 남자 8만1,322건·여자 10만9,493건, 그리고 2016년 상반기까지 남자 4만2,340건·여자 6만2,219건으로 전반적으로 여성에게서 부작용 발생 보고건수가 남자보다 10%가량 높았다.

더욱이 고혈압 질환의 경우 남자보다 여자 환자 수가 훨씬 더 많지만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남녀의 성비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1~2015) 고혈압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 2,777만2,423명중 여자 환자는 1,454만675명으로 남자 환자보다 130만 명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인구 10만 명당 환자수도 여자가 남자보다 평균 1,184명이 더 많았다.

반면 식약처 자료를 보면 고혈압 질환의 신약 개발을 위한 국내 임상시험에서 여성 피험자의 참여율은 남성 피험자 수의 1/3수준에 불과했다.

199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도 젠더 의학(Gender Medicine)에 대한 관심이증가하면서 의약품의 효과와 부작용 등에 있어 성별차이를 연구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여성에게 다빈도로 발생하는 질환의 경우 별도의 예방 및 치료지침을 발표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 캐나다의 경우 여성건강 관련 정부부서를 설치하고, 다양한 여성건강증진과 교육프로그램 및 정책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인재근 의원은 "여성과 남성의 신체는 단순히 겉모습에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성별 차이에 따른 인체의 생물학적, 생리학적 차이가 의약개발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여성 환자들의 건강이 위협받아왔다"며 "의약품 안전보호강화를 위해 성별 차이에 따른 남녀 차이를 약물을 개발 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 의원은 "의약개발에 남녀 성별차이를 반영하는 국제적 추세에 맞춰 우리 의약계와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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