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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그리스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도발적인 과학사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 / 스티븐 와인버그 지음 / 이강환 옮김 / 시공사 펴냄, 2016년

[라포르시안] 많이 변하기는 했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권위에 약한 편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권위있는 분이 하시는 말씀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대놓고 문제제기를 삼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권위 있는 분이 그동안 쌓아온 앎을 바탕으로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설마 틀린 말을 하겠느냐는 일종의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우리네 옛말도 있듯이 권위 있는 분들이 모든 이치에 통달할 수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에서도 놓치고 있는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엉뚱한 이야기로 리뷰를 여는 이유는 특별한 의미의 과학의 역사서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양에서는 종교가 모든 것에 우선하던 중세를 암흑기라고 일컫는 것은 신학이 정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내놓을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로마교회의 이단심문소의 오랜 심문 끝에 자신이 입증한 지동설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가 심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했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100여년이 지난 후세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고 합니다만, 아마 그의 심정이 딱 그랬을 것 같습니다. 갈릴레이는 소신을 버리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중심으로 한 과학의 발전사를 다룬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은 과학의 연구에 투신한 젊은 학자들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기본소양, 즉 ‘이미 알려진 모든 사실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라’하는 원칙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물론 과학 이외의 학문분야, 심지어는 세상사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에건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기 때문에 누구나 읽어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자가 이 책에 적용한 원칙은 ‘현대의 역사학자들이 가장 위험하게 여기고 피하는 방법’, 즉 과거 자연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연구 방식을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1933년 뉴욕에서 태어난 스티븐 와인버그는 브롱크스 과학 고등학교를 거쳐 1954년 코넬 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1957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재규격화 이론을 이용하여 약한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강한 상호작용의 효과」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 로렌스 방사능연구소,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하버드 대학교 등을 거쳐, 1983년부터는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장(場)의 양자론에서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에 있어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왔고, 특히 자연의 근본적인 힘들 중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합하는 이론은 그의 최대의 업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로 1979년에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소립자 이론의 ‘표준 모형’이라고 할 정도로 현대 물리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To explain the world(‘세상을 설명한다’는 의미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만, 이 주제는 철학이라는 학문영역이 태동할 때부터 다룬 아주 오래된 주제이기도 합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철학(哲學, philosophy)은 존재, 지식, 가치, 이성, 인식 등의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합니다. 철학은 전통적으로 ‘세계와 인간과 사물과 현상의 가치와 궁극적인 뜻을 향한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천착’을 의미합니다. 이 책의 주제가 되고 있는 수학과 물리학은 18세기까지만 해도 자연철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과학의 뿌리는 철학에 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과학사적 배경 때문에 저자는 그리스시대 철학자들의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사유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학철학보다는 과학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라고 입장을 정리합니다.

‘현대과학의 발견(The discovery of modern science)’이라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 물리학과 천문학에 중점을 둔 것은 과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춘 것이 천문학에 적용된 물리학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생물학 같은 분야는 많은 역사적 우연의 의존해왔기 때문에 물리학 모델로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생물학과 화학의 급속한 발전은 17세기 물리학 혁명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은 1부 그리스의 물리학, 2부 그리스의 천문학, 3부 중세시대, 4부 과학혁명으로 나누었고, 본문에 나오는 이론 가운데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 것들에 대하여 말미에 ‘전문해설’을 별도로 실었습니다. 전문해설은 수식과 그림 등을 곁들이고 있지만, 제목 그대로 전문적인 내용이라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분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 학자들이 이룩한 학문적 업적이 어떻게 중세의 암흑기를 건너 르네상스시기로 연결될 수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중동지방에서 일어난 압바스 왕국은 물론 이베리아반도에 자리 잡은 후기 우마이야왕조를 비롯한 이슬람세력들이 그리스학문의 맥을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학자들이 남기 학문적 성과들을 이슬람어로 번역하여 확산시킨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이슬람학자들의 연구업적까지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그 누구도 오늘날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방식의 추론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는 저자는 아나톨리아의 밀레투스에서 활동한 물리학자 가운데 기원전 6세기의 탈레스를 처음 인용하여 그리스 물리학을 설명합니다. 물론 탈레스가 남긴 어떠한 기록도 전하는 것이 없습니다만, 탈레스야말로 ‘모든 물질은 하나의 기본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물질의 본성이 모든 것의 유일한 원리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초기 철학자들 중에서 (…) 이 철학 학교를 세운 탈레스는 그 원리가 물이라고 말했다.(20쪽)”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탈레스에 이어 아낙시만드로스는 의문의 물질을,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크세노파네스는 흙을,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만물의 재료라고 제안했고, 그로부터 100여년 뒤에 등장한 엠페도클레스는 모든 물질이 하나가 아니라 물, 공기, 흙, 불 등 네 개의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무렵에 활동한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의 변화와 다양성은 환상일 뿐이라고 가르쳤고, 그의 제자 엘레아의 제논(스토아학파 제논과는 다른)의 경우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려 했습니다. 저자는 두 사람의 주장이 틀렸다고 잘라 말하고, 그들의 사유체계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즉 운동이 불가능하다면 왜 물체들이 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여겼는데, 이로 인하여 과학이 발전할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에 대한 철학적 개념들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랍의 철학자들에게 엄청난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베로에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철학자’라고 한다면 아베로에스는 ‘해설자’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저자 역시 검증하려는 노력은 없었지만, 평범한 관측에 근거한 것이지만 자신이 가정한 원칙에 따라 정교한 추론을 통하여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의 법칙에 대해서 틀리긴 했지만, 자연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은 자체는 상당히 중요하다.”라는 저자의 입장은 과학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현대과학의 시작, 즉 과학혁명의 시작이 코페르니쿠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 1473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코페르니쿠스는 중세 폴란드 왕국의 수도 크라쿠프에 있는 크라쿠프대학에서 천문학과정을 포함한 교육을 받고 1496년 볼로냐로 옮겨 천문관측을 시작했습니다. 1510년에는 폴란드로 돌아와 프롬보르크에 천문대를 짓고 1543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천문연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귀국 직후 그는 이전까지의 행성이론을 비판하고 자신의 새로운 행성이론을 담은 <천체의 운동과 그 배열에 관한 주해서>를 썼지만, 이 글은 그가 사망하고서 한참 뒤까지 출판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때까지의 천문학 이론의 핵심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버리고, 모든 천체들은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새롭게 정립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론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관측자료를 내세운 것은 아니었고,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에서 인용한 관측자료를 재해석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천체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구가 움직인다고 가정하였을 때, 태양, 별 그리고 다른 행성들의 여러 가지 겉보기운동이 잘 설명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은 출판되기 전부터 다수의 종교지도자들의 반발을 불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에 가톨릭교회가 심각하게 억압하기 전까지는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억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1540년에서야 출판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551년 에라스무스 라인홀트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활용하여 특정한 시간에 황도 위에서 행성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는 새로운 천문목록인 ‘프로이센 목록’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론은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천문관측을 통하여 확인되었고,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과학이론의 혁명을 불러왔다면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태양 중심의 천문학구조를 지지하는 최초의 ‘관측적인’ 증거를 제시하여 실질적인 과학의 혁명을 일깨웠다고 하겠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스파이글라스를 개량하여 스무배의 배율을 가지는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관측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천체관측을 통하여 달표면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고, 맨눈으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행성들이 달처럼 둥근 모습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네 개의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고, 금성이 달처럼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태양의 표면에서 흑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즉 새로운 기술이 순수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알려준 것입니다.

과학혁명의 절정은 뉴턴에서 맞았다고 했습니다. 뉴턴은 과거의 자연철학과 현대과학의 경계에 걸친 인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분명 현대과학이 된 모든 과학이 따르고 있는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1687년 왕립협회를 통하여 뉴턴이 출판한 <자연철학의 수학 원리; 약칭은 ‘프린키피아’입니다>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없이 물리학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책입니다. 물질의 양, 운동과 힘에 대한 정의, 법칙 및 추론을 제시하고, 이어서 1부에서는 그 결과를 차례로 유도합니다. 2부에서는 유체 속에서의 물체의 운동을 다루고, 3부에서는 천문학의 증거들을 찾습니다. 이미 측정된 것들에 대한 계산과 아직 측정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예측을 보여줍니다. 뉴턴도 알고 있었지만, 중력이 유일한 물리적 힘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이론이었습니다.

2천년이 넘는 물리학과 수학의 역사를 요약한 방대한 과학의 역사를 몇 줄의 리뷰로 요약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끝에 붙인 전문해설은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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