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 김태훈 옮김(세계사 펴냄)


세계적인 MBA 와튼스쿨에서 13년을 연속해서 가장 인기가 많은 강의로 꼽힌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가 협상론에 관한 자신의 강의를 담은 책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게 되었다는 출판사의 추천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얼마 되지 않아서 [BOOK소리]에서 꼭 소개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꼭 참고를 하시면 좋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즉부터 우리사회가 협상에 미숙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특히 민주화의 봇물이 터지고 부터는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내지 못할 바엔 차라리 모두 버린다”는 'all or nothing'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건의료분야 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협상전문가가 없을 뿐 아니라 키우려는 노력조차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이해가 엇갈릴 때 일수록 강경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힘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우선하는 탓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선조 가운데 시쳇말로 협상의 달인도 계셨지 않았습니까? 고려 성종 12년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 대군의 침공을 맞아 서경이북을 내주고 전쟁을 피하자는 조정분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신 적진으로 들어가 소손녕과 담판을 지어 오히려 강동6주를 얻어내는 외교적 성과를 이루어낸 서희(徐熙), 그 분 말씀입니다. 양재동에 있는 외교안보연구원을 방문하면 서희의 흉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분의 뜻을 오늘에 살리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읽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과과정 어디에도 협상에 관하여 공부할 기회가 없는 것 같습니다.

협상에는 왕도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협상을 잘 진행하는데 필요한 요소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왔고, 그러한 요소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달라져왔습니다. 통상적으로 협상의 핵심원칙으로 협상의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의 공유, 이해관계를 충족시킬 다양한 옵션의 개발, 협상 당사자들 간에 합의에 대한 객관적 기준마련 등을 꼽고 있으며, 기술적 요인으로는 협상 당사자들 간의 의사소통, 신중한 합의의 약속, 협상당사자들 간의 관계 등이 고려된다고 합니다.

다이아몬드교수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고 합니다. 특히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며 파업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것을 강조하는 기존의 협상법은 현실에서는 효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며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리고 상황에 맞게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대처방법이야말로 진정한 협상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삶이 복잡해지면서 삶 자체가 협상에 의지하여 결정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협상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교수님 역시 그런 점을 감안하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협상이 필요한 상황을 예로 들면서 그의 방식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방법, 가격을 유리하게 흥정하거나 남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는 비법, 생활의 혜택을 얻거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심지어는 자녀들 교육에 이르기까지 협상의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틀림없이 놀랄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 소개해드렸던 <10대들의 사생활>에서 데이비드 월시교수가 피상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역시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 그의 욕구와 동조하여 공감을 느끼려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다이아몬드교수의 협상론의 핵심이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1강에서 그가 제시하는 열두가지 협상의 핵심전략은 어떻게 보면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들이지만 막상 소홀하기 쉬운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의 머릿속 그림을 그린다거나, 감정에 신경을 쓴다거나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등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가 협상을 시작할 때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담긴 4가지 협상도구에 관심이 끌렸습니다. 첫째, 형식적인 분위기를 탈피하여 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둘째, 질문을 통하여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상대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살필 수 있다는 점, 셋째, 상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상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점, 넷째, 일상적인 대화를 통하여 서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교수님의 협상법의 키워드는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란 본래 자기 말에 귀기울여주고, 가치를 인정해주고, 의견을 물어주는 사람에게 보답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게 변하지 않는 사람의 본성이에요.(41쪽)”라는 것입니다. 주로 협상 사안과 이익에 초점을 맞춘 후, 이에 맞춰 어떤 제안을 할지 궁리하는 식으로 접근했던 과거의 협상방법이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의약계의 리베이트관행과 관련하여 제약사의 영업파트에서 금전 혹은 선물을 제공하는 행위가 부도덕하다는 지탄을 받는 수준을 뛰어넘어 심지어는 이사를 도와준다거나 하는 등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제공하는 행위까지도 도덕적이지 않은 것으로 몰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대기업의 CEO가 핵심고객을 위하여 한 가장 중요한 일이 그의 장모를 토요일 밤에 공항에서 픽업하는 것이었고, 이 일은 어떤 협상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었지만 이후 모든 협상에 유리한 영향을 미쳤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언젠가 북리뷰를 통하여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만, 의료과오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가 있었다면 솔직하게 사과하는 것이 의료소송을 피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이 의료계에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보다 상세한 내용은 정재승, 김호의 <쿨하게 사과하라>를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눈길이 가는 대목이 참 많습니다만, 미국의 유력 신문이 “남미 출신들의 로비활동이 여전히 부진하다.”는 헤드라인으로 쓴 기사를 인용한 부분입니다. 이 구절은 “의사들은 로비활동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로 바꾸면 우리나라의 사정에 꼭 맞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교수는 이 문장이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남미출신들이 모두 같은 문화권으로 치부하는 것부터가 잘못인데다가 남미출신 이민자들의 출신지, 직업, 정치성향 등등 모든 면에서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미출신이라는 단일집단으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이리한 시각이 편견과 차별을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의료계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약계를 비롯한 다른 분야와 달리 의료계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전공과목부터가 다양하며, 고용상태 역시 대학교수, 봉직의사, 개업의사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을 하나로 정리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항상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한다는 관념이 고정되어 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을 대변하는 대한의사협회 역시 회원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려는 노력 자체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의견을 대표하는 분들로 구성되는 모임을 통하여 평소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라면 협상에 참여할 기회가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분명 지금까지 알고 있는 정형화된 협상의 틀과는 분명 차별되는 새로운 협상의 틀을 깨우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와튼스쿨의 스튜어드 다이아몬드교수님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무언가를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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