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병실을 기꺼이 들어가고자 하는 환자는 국민 중 아주 소수일 것이다. 안락함을 위해 하루에 호텔비 일반룸에서 스위트룸 수준인  상급병실료를 낼 수 있는 이들은 분명 소수다. 우리 가족도 수많은 병치레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삼촌이 적극 후원했을 때만 1인실을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 환자들은 다인실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입원을 위해 상급병실료를 내고 있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이 상급병실료가 병원들, 특히 대형병원들을 먹여 살리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이 두 가지 항목이 병원의 원활한 흑자 경영에 필수적이라고 한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의 규칙 별표에 보면 비급여 비용으로 상급병실료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을 다음과 같이 제한하고 있다. 상급종합볍원(대학병원)의 경우에는 일반병상이 전체 입원실의 70%일 경우, 종합병원 미만의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는 50% 이상일 경우이다. 따라서 이 기준을 지키기 위해 기존의 병상 수는 유지하면서, 많은 상급종합병원들이 소위 VIP 병실 늘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2007년에는 시립보라매병원조차도 다인실 확보는커녕 돈 되는 1~2인실 증축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에 대해 노조에서 반대하자 "그랜져 타고 오는 사람과 걸어오는 사람이 같냐"고 병원 측에서 답했다고 한다.

맞다. 그랜져 소유자와 차없는 사람은 온당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 건강한 사람으로서  사회생활을 할 때도 그렇고, 운 나쁘게 환자가 되어 병원 생활을 할 때도 그러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세상의 법칙이다.

그러나(독자들은 이쯤에서 수순으로 '그러나'가 나올 것을 예상했을 테다),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의 기본 취지에서 이런 세상의 논리에 일침을 놓고자 했음은 당연하다. 무척 피상적인 주장일 뿐이지만, 아픈 것도 서러운데 병원에서까지 차별적 대우를 대놓고 당연하다고 할 것까지 있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 유명한 모병원의 VIP병실을 구경하러 들어갔다. 그 병원 출신자에 의하면 일반인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경호가 되어 있고, 방에 들어가면 벽걸이 TV가 있으며 온 바닥이 카페트로 깔려 있어 정말 호텔 뺨치는 수준이라고 했기에 삐까뻔쩍 호화찬란함에 대한 반감어린 기대를 하며 엘리베이터를 올랐다.

정말 호텔에 도착했다. 꼭대기 층이었기에 서울 도시의 풍경을 ‘위에서’ 즐길 수 있었고, 특별한 방음장치에 작은 소리조차 울림 없이 공유되었다. 역시 깨끗한 카페트가 폭신하게 걷는 걸음을 안락하게 감싸주었다. 경호원은 없었고,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었다. 용기를 내어 금지된 그 복도에 들어갔다. 여느 1급 호텔 복도에 들어선 것 같았다. 같이 간 친구와 조용히 그 복도를 걸어가며 열심히 구경을 했다. 돈이 있으면 와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경호원에게 들키고 말았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라는 말에 서둘러 나오고 말았다. 신기한 것은 우리 뒤에 중년 부부는 막지 않고, 우리 둘만 어떻게 딱 알아보고 막아냈다는 것이다. 하긴, 맨 날 촬영하느라 등산 가방에 추레한 잠바를 입은 두 청년은 이 꼭대기 층에서는 눈에 띄었을 것이다. '정장 입고 올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병실 복도에서 쫓겨나 엘리베이터 앞 최고급 소파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네, 그치?" "네""근데 너무 호화스러운 거 아냐?""아뇨. 좋기만 하네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아주 과하게 사치스러운 느낌도 아니고, 정말 아픈 환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환경인데요. 예전에 국립병원에 갔는데, 거긴 정말 아니더라고요. 우리 할머니가 거기 입원했는데, 제가 화가 다 났어요."  "음, 그렇구나.""누나 생각은 이해가 되는데, 이거 나쁘다고 하면 안 돼요. 사람들은 다 좋아하거든요. 돈이 없어서 그렇지.""그래… 그렇지."

이 VIP 병실을 증축하면서 그런 사람들의 욕망이 채워졌을 것이고, 그 사용가치가 십분 만족스럽게 활용되었을 것이다. 실은, 친구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로 느끼는 안락함에 그저 좋다는 감정을 느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안락한 사용가치가 모두와 두루두루 나누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와 비슷한 부류는 어딘가 마음이 켕겨 쉽사리 그 안락함을 납득하지 못하고 만다. 그것이 이 사회의 당연한 이치인데도 아집처럼 그 불편함을 붙잡고 머리를 굴려보고, 다큐에 담아보려고 하고, 글로 비판해보려고 한다. 이 불편함에 대한 민감성은 고소득이 될수록, 나이가 들수록, 사회의 대접을 받아볼수록 급속도로 떨어지는 듯하다. 굳이 나와 같을 필요는 없지만 혹시 민감성이 조금 회복된다면, 양극화에 대한 막연한 아쉬움을 사회에 토로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참 이라크전이 진행 중이었던 2003년 플로리다 대학에 교환의대생으로 갔을 때, 바깥세상에서 전쟁이 일어나든 석유 때문에 사람이 죽든 간에, 추울 정도로 빵빵하게 틀어 놓은 에어콘 바람에 이 불편감이 극도로 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사실은 사실이다. 하루 밤 최저 69만원인 VIP 병실료는 법정 최저 임금(시급 4,320원)을 받으며 일하는 우리 이웃의 월급과 맞먹는다는 것이다.

송윤희는?

2001년 독립영화워크숍 34기 수료2004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사2008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2009년 산업의학과 전문의2011년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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