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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하는 게 전문가의 ‘진정성’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6.10.0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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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한 사람의 '죽음의 종류'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모두 한 장의 사망진단서에서 비롯됐다. 사망진단서의 사망원인을 기록하는 네 칸 중 공백으로 남겨진 한 칸. 여기를 비워둠으로써 무수히 많은 말들로 채워지고 있다.

고 백남기 씨는 작년 11월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쏜 고압의 물대포를 맞고 길 위에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머리 부위에 심각한 외상을 입었다. 당시 촬영된 영상에는 그가 물대포를 맞고 튕겨나가듯 떠밀리며 뒤로 넘어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미동도 없이 쓰러져 누운 젖은 종잇장 같은 그의 몸 위로 거센 물줄기가 또 얼마 동안 때리듯 쏟아졌다.그렇게 쓰러져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40분 넘게 방치됐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국내 최고로 꼽히는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실로 이송됐을 당시 그는 상당히 위중한 상태였다. 그를 처음 진찰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이미 심각한 뇌손상으로 경막하출혈과 지주막하출혈이 심한 상태였다는 점을 의무기록지에 남겼다. 환자 상태를 볼 때 수술이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신경외과 의사가 백씨의 상태를 진찰하고 응급수술을 시행하지 않으면 빠른 시간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의학적 판단 아래 응급수술을 했다.

▲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농민 백남기씨. 이미지 출처: 뉴스타파 보도 영상 갈무리

수술 결과는 좋았고, 백씨는 지난 9월 25일 숨을 거두기 전까지 300일 넘게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으며 생명을 유지했다. 백씨를 수술하고 진료를 담당했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사망하기 6일 전부터 급성신부전이 빠른 속도로 진행돼 신장기능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로 인해 고칼륨혈증이 나타났고, 결국 심장정지가 왔다. 백씨를 수술하고 진료한 담당의사는 최선의 진료를 했다. 특히 백씨의 진료기록은 고압 물대포가 인체에 얼마나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지 의학적으로 입증하는 자료이기도 한다. 지난해 영국 정부는 물대포 사용에 따른 의학적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근거로 사용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렸다. '위해성 무기의 의학적 영향 검토 과학자문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통해 인체가 물줄기에 맞아 땅이나 딱딱한 물체에 부딪쳤을 때 3차적 부상(특히 머리와 목)의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백남기 씨는 이 보고서에서 경고한 위험성이 현실화 된 안타까운 사례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지금 전개되는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다. 더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할 정도로 위중하던 백씨의 목숨을 살려내고 최선의 진료를 한 담당의사가 그의 죽음을 병사로 판단한 건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담당의사는 백씨가 혈액투석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받았더라면 생명을 더 유지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백씨의 가족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칼륨혈증에 의한 심폐정지를 막을 수 없었다고 봤고, 그런 이유로 백씨의 죽음을 병사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고 백남기 씨가 응급실에 실려온 이후부터 사망에까지 이르는 과정에 대한 담당의사의 설명은 의학적 판단에 기반하고 있다. 반면 백씨의 죽음을 종류를 '병사'로 기록한 사망진단서는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주치의 철학과 진정성'이라는 애매모호한 판단으로 얼룩졌다. 애초 그가 응급실로 실려 오게 된 원인이 되는 과정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망원인이란 사망을 유발했거나 사망에 영향을 미친 모든 질병, 병태 및 손상과 모든 이러한 손상을 일으킨 사고 또는 폭력의 상황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백남기 씨와 관련된 사고 기록이나 진료기록을 볼 때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맨처음 원인은 치명적인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손상을 초래한 '폭력적인 고압 물대포'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의사는 사망진단서에서 이 과정을 누락했다. 그러다 보니 외상성 요인으로 급성 경막하 출혈이 발생했음에도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록하는 오류를 범했다. 늦었지만 대한의사협회조차 지난 5일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진단서 등 작성·교부지침'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망진단서는 한 사람의 죽음의 과정에 대한 의학적 인과관계의 기록이고 법률적인 증명이다. 고 백남기 씨가 317일 동안 병원 침상에서 고통을 받는 동안 어느 누구도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가장 중요한 사망원인이 누락되고 오류로 얼룩진 사망진단서로 인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백씨의 사망진단서에서 공백으로 남은 사망원인을 기록하는 맨 아래 칸. 이 공백을 채우고, '병사'로 기재된 사망의 종류를 진정성이 아니라 의학적 판단과 관련 지침에 따라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전문가다운 자세이고, 전문가의 진정성이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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