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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물과 운하, 그리고 곤돌라…바다의 도시 이야기바다의 도시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지음 / 정도영 옮김 / 한길사 펴냄, 2002년

[라포르시안] 지난 해 다녀온 발칸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베네치아였습니다. 오래 전에 이탈리아의 스트레사에서 열린 학회에 갔을 때 베네치아가 아닌 밀라노를 선택해서 구경하면서 베네치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던 것을 채울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동안 베네치아에 대한 공부를 적지 않게 해왔던 것 같습니다. Book소리에서도 소개한, 존 러스킨의 <베네치아의 돌>도 있었고, 패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의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도 있었습니다. 건축 혹은 예술사적 시각으로 베네치아를 들여다본 책들을 읽다보니 베네치아 사회의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기에 안성맞춤한 책읽기입니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시오노 나나미가 가쿠슈인대학 철학과에 입학한 것은 ‘그리스 로마 시대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서양철학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이탈리아의 역사를 천착하기 시작해서, 1968년에는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中央公論」지에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1권씩 발표한 <로마인 이야기> 15권이 대표작입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작가인 만큼 그녀의 작품들은 교양서와 소설의 사이에 위치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또한 평가가 엇갈리는 점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사료를 취사선택하였다거나, 사료가 없는 부분은 별다른 언급 없이 창작으로 채웠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적인 면이 강조되는 역사서가 책읽는 이의 흥미를 떨어뜨려 접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하고 또 역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역사상 벌어진 일들에 대한 왜곡은 없으며, 지나치게 자세하지도 않고 생략되지도 않은 적절한 상황 묘사가 바로 그녀의 작품만이 가지는 힘이라고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대표작 <로마인 이야기>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녀가 쓴 <주홍빛 베네치아>가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도록 유혹했던 것 같습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베네치아공화국이 터를 잡을 때부터 공식적으로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요약하였습니다. 베네치아공화국은 공식적으로는 초대 국가원수(doge)를 선출한 697년부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항복한 1797년까지 무려 1100년을 이었던 최장수 국가입니다. 베네치아공화국과 견줄만한 나라로는 395년 – 1453년까지 1088년을 이은 비잔틴제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新羅)가 기원전 57년 ~ 935년까지 992년을 이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천년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역사책의 주인공은 대체적으로 왕과 주요인물을 중심으로 한 사건사고를 나열하는 경우가 많아 대체적으로 딱딱할 수밖에 없어 금세 읽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상권이 522쪽, 하권 이 579쪽으로 베네치아의 역사에 버금가는 쪽수에도 불구하고 책을 손에서 놓기가 싫을 정도로 빠져들게 만드는 무엇이 있습니다.

작가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지금의 자리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베네치아의 탄생으로부터 동방과 서유럽을 연결하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누리던 베니스의 모습 그리고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몰락해가는 베네치아의 모습과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의 침략에 굴복하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열다섯 개의 주제를 가지고 설명하였습니다.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상업, 문화예술, 여성문제 이르기까지 책읽는 이의 흥미를 끌어낼만한 것들입니다.

베네치아는 S자를 뒤집어 놓은 형태로 대운하가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약 45개 정도의 소운하가 시가지 곳곳을 미로처럼 흐른다.

연대기에 의하면 베네치아 사람들이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의 침략을 피해서 지금의 장소보다 육지에 가까운 소택지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서기 452년입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쯤 뒤에 롬바르드족이 침입하여 파도바로부터 이스트라반도에 이르는 아드리아해 연안을 파괴하자 이들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지금의 장소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개펄 위에 나무를 박아 넣어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습니다. 요즘 간척사업을 하듯이 개펄을 모두 메운 것이 아니라 도시의 방어를 위하여 개펄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살렸으니 그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해야 했을 것입니다. 다음 단계로 운하 위에 다리를 만들어 도시를 효율적으로 오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50개가 넘는 섬, 180개에 가까운 운하와 410개나 되는 다리로 이루어진 베네치아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3요소, 국민, 강역, 주권 가운데 두 가지, 국민과 강역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을 밖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식민지를 개척하여 영토를 넓히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이 10만 내외의 베네치아 사람들로는 얻은 식민지를 제대로 다스리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을 외부에서 조달하고, 그러한 상업활동의 근간이 되는 부를 무역을 통하여 얻었던 것입니다. 섬이라고 하기보다는 바다에 떠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베네치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바다와 친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만들고 배를 부리는 기술이 발전하게 되었고 바다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승천일에 열리는 베네치아의 축제일에 국가원수는 리도항구로 나가 준비한 금반지를 바다에 떨어뜨리면서 “너와 결혼한다. 바다여. 영원히 내 것 이어라”하고 말할 정도로 베네치아에게 바다는 절대적이었습니다.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지중해를 장악한 비잔틴제국는 동방의 페르시아와 맞서고 있었기 때문에 서쪽 바다를 대신해서 지켜줄 세력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를 비롯하여 피사, 제노바 등이 지중해를 누비는 해양국가였는데, 비잔틴제국이 선택한 것은 베네치아였습니다. 베네치아제국의 자주성은 인정하되 비잔틴제국에 속하는 것으로 하며, 제국의 영내에서 자유롭게 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로서 경쟁국가들보다 상업활동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강력한 힘을 구축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베네치아가 공화정의 정치체제를 갖추고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견제장치를 복잡하게 만든 것이 장수국가로 갈 수 있던 근원이었습니다. 국가원수와 6인의 원수보좌관, 6인 위원회, 10인 위원회, 원로원, 국회 등이 각자 맡은 일을 하게 되는데, 정치에 관한 업무는 귀족계급이 맡아하였습니다. 베네치아의 귀족들은 전문정치인이었고, 이들은 맡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수업을 철저하게 받았다고 합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나라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를 흘려가며 독립과 자유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베네치아의 장수를 담보했던 정치체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는가 하는 점은 제5장 ‘정치의 기술’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제4차 십자군전쟁에 관한 내용은 앞서 말씀드렸던 역사에 대한 작가적 해석의 차이인지 아니면 창작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난공불락이던 이스탄불(이전에 콘스탄티누폴리스이던 시절을 포함해서)은 꼭 두 차례 외부세력에 의하여 함락된 바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공격에 함락되어 라틴제국이 성립된 경우이며, 두 번째는 1453년 술탄 메메드 2세가 이끄는 오스만제국의 침공으로 비잔틴제국이 멸망한 때입니다. 지난 해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때,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누폴리스 침공을 베네치아가 주도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바다 도시 이야기>를 보면 반드시 주도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4차 십자군은 로마교황 인노켄티우스3세의 주창으로 프랑스 제후들을 중심으로 결성을 하고 육로로 가는 것은 너무 멀고 위험하기 때문에 해로를 통하여 원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도 당시 여건으로 십자군의 병력과 병참을 수송할 수 있는 나라는 베네치아가 유일했기 때문에 십자군의 지휘부는 베네치아와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4,500명의 기사와 2만 명의 보병, 4,500마리의 말과 종자 마부 등 9천명을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는 선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베네치아의 원수가 지휘하는 전투승무원 6천명이 출전하는 조건으로 8만5천 마르크를 내기로 한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계약에 따라 필요한 함선들을 새로 건조하는 등 약속한 기일에 갤리선 50척, 범선 240척, 평저선 120척 등 480척을 준비했지만, 십자군을 이끌기로 한 상파뉴백작이 사망하면서 겨우 1만 내외의 병력만이 참여하였고 약속했던 수송비용도 2만5천 마르크밖에 지불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원정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고 곤혹스러운 십자군에게 베네치아에서 수정안을 제시하였습니다. 헝가리왕국의 선동으로 베네치아에 반기를 든 자라(지금의 자다르입니다.)를 공략하는 것을 거들어준다면 계약을 즉시 이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자라공략에 성공하였을 때,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황자가 십자군을 찾아왔습니다. 십자군 원정비용과 그리스정교를 로마가톨릭교회 아래로 통합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콘스탄티누폴리스를 공격하고 황위를 찬탈한 동생을 제거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입니다. 결국 비잔틴제국의 내분이 화를 불러들인 것이지, 베네치아가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트누폴리스 침공을 주도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십자군 입장에서도 원정경비문제도 있고 해서 찬성의 뜻을 나타냈고, 베네치아의 원수 엔리코 단돌로 역시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비잔틴제국의 황제가 친베네치아 성향이면 유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십자군 측이나 베네치아,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황자, 심지어는 교황마저도 동서교회의 통합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 맞아떨어지면서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누폴리스 침공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십자군의 공격은 황제 알렉시우스 3세가 도주하면서 종결되었고, 알렉시우스황자는 황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비잔틴군과 십자군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선제의 사위가 새로 즉위한 황제를 살해하고 황제에 즉위하면서 제2차 콘스탄티누폴리스 공성전이 전개되고 함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승리한 십자군은 당시 전쟁의 관례대로 3일에 걸친 약탈을 허락했고, 비잔틴제국 대신 라틴제국이 성립되었던 것입니다. 비잔틴제국 측에서는 베네치아가 예술품들을 약탈해갔다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문화적 안목이 없던 프랑스군이나 플랑드르 군의 파괴를 면한 것도 베네치아 사람들의 예술품에 대한 안목이 한 몫을 했다고 해석합니다.

인구 10만 내외의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여왕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때로는 전쟁도 불사하였을 뿐 아니라, 같은 기독교국가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오스만제국과의 협정을 맺는 등 치밀한 외교전을 전개한 과정을 <바다 도시 이야기> 후반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만제국이나 이베리아반도를 통일하고 라틴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한 에스파냐왕국의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동방으로 가는 신항로의 역할이 확립되면서 그동안 장악해온 지중해무역이 위축되는 것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본토를 차지해서 농업의 비중을 높이고 수공업을 발전시키는 등 대안을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변화하는 내부사정은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한 대응이 과거처럼 명쾌할 수 없었던 한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천년을 넘게 지나오면서 존립의 위기를 넘겨가며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던 베네치아도 근세 유럽사회의 격랑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나폴레옹에 대한 저항을 포기함에 따라 도시가 파괴되지 않고 남아서 지금도 그 옛날의 베네치아를 볼 수 있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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