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덕(하버드신경과의원 원장, Brainwise 대표이사)

[라포르시안] 치매의 원인질환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원인질환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인질환을 감별하기 위하여 문진, 신경학적 진찰, 혈액검사, 인지기능검사, 뇌영상검사 및 뇌파검사 등을 시행한다.

치매는 원인질환에 따라 크게 신경퇴행성 질환에 의한 치매, 혈관성 치매, 그리고 치료 가능한 치매로 분류된다.

신경퇴행성 질환에 의한 치매 중에서 가장 흔한 원인은 알츠하이머병으로 대략 70% 정도를 차지한다. 두 번째로 흔한 유형은 루이소체 치매(Dementia with Lewy Body, DLB)이며, 20% 정도를 차지한다. 그 외에 전두측두엽치매(frontotemporal dementia, FTD), 파킨슨병에 동반된 치매(Parkinson’s disease with dementia) 등이 있다.

신경퇴행성질환에 의한 치매는 뇌에 정상적으로 분포하는 특정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응집되어서 발생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바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β-amyloid protein)과 타우 단백질(tau protein)이 비정상적으로 응집되어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질환이다. 베타아밀로이드는 세포 밖에 쌓여서 노인반(senile plaque) 또는 아밀로이드반(amyloid plaque)을 형성하고, 타우단백질은 세포 내에 누적되어 신경섬유농축체(neurofibrillary tangle)를 구성한다.

침례교도(Baptist)와 도교신자(Taoist)=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제일 주목 받는 것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β-amyloid protein) 이론과 타우 단백질(tau protein) 가설이다. 이들 중 한 가지만으로는 알츠하이머병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 즉, 두 관점은 알츠하이머병의 증상과 병의 진행을 설명하는 데 상호보완적이다. 연구자들 역시 베타아밀로이드 이론을 지지하는 입장과 타우 가설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학문적 진영이 나뉜다. 두 학파는 각기 침례교도(Baptist, beta-amyloid protein-ist)와 도교신자(Taoist, tau-ist)로 비유되기도 한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2004년 이재한 감독이 제작한 영화의 제목이다. 김수진(손예진 분)은 건망증이 심하다. 어느 날 계산만 하고 콜라를 편의점에 둔 채 나온다. 그녀는 가게 안에서 최철수(정우성 분)와 부딪치고 그의 손에 들린 콜라가 자기 것을 훔친 거라고 오해한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이어져 그들은 부부가 된다.

수진의 건망증은 자꾸 심해진다. 도시락에 반찬 대신 밥만 두 통을 챙겨주고, 길을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다. 철수는 냄비를 불에 잘 태우는 수진을 위해 주방을 새로 꾸며주고, 기억용 메모지를 집안 곳곳에 붙여둔다. 수진은 증상이 심할 때면 철수를 바라보며 옛 애인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수진은 결국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수진의 기억은 점점 사라져간다. 마치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기라도 하듯이. 수진은 기억이 완전히 소멸하기 전에 남편을 사랑한다는 징표로 기록을 남긴다. 철수는 수진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모든 일을 그만 두고 함께 여행을 떠난다.

영화 ' 내 머릿 속의 지우개' 중 한 장면.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여주인공을 '수진'을 위해 집안 곳곳에 메모지가 붙어 있다.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을 지우개에 비유할 수 있겠다. 공책에 연필로 글을 쓰고 바로 지우면 말끔해진다. 하지만 오래된 글씨는 아무리 지워도 필적이 어느 정도 남는다. 리보의 법칙이 제대로 반영되었으니 영화 제목을 정말 잘 지은 셈이다.

이렇듯 알츠하이머병에서는 뇌 속 단백질 이상이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기능적인 변화를 일으켜 정신증상이 발생한다. 환자의 뇌(기저 전뇌, basal forebrain)에서는 기억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의 기능저하 현상이 흔히 포착된다.

아세틸콜린의 발견= 1913년 영국의 약물생리학자 헨리 데일(Sir Henry Hallett Dale, 1875~1968)은 아세틸콜린이라는 물질을 발견한다. 최초로 발견된 신경전달물질이다. 그는 신경전달물질 연구 및 발견 공로를 인정받아 1936년 독일 생리학자 오토 뢰비(Otto Loewi, 1873~1961)와 노벨 생의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아세틸콜린은 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체에 산재한 신경근육접합부나 말초교감신경에도 존재한다. 뇌에서는 주로 마이네르트 기저핵(nucleus basalis of Meynert)과 내측 중격(medial septum) 세포에 분포하며 대뇌피질과 해마로 전달된다.

루이소체 치매는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α-synuclein)이 축적되어 루이체(Lewy body)를 형성하는 것이 원인이다.

신경퇴행성 질환에 의한 치매 다음으로 흔한 원인은 혈관성 치매이다. 혈관성 치매는 뇌경색이나 뇌출혈 등의 뇌혈관 질환으로 인해 치매가 발생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치매진단에서 치료 가능한 치매를 감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원인질환을 규명해서 적시에 치료하면 치매를 호전시키거나 최소한 악화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 가능한 치매는 전체 치매의 약 10%를 차지한다. 대표적 원인질환으로는 갑상선 기능저하증,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우울증, 수두증, 외상에 의한 뇌 손상, 신경매독과 같은 감염질환, 뇌종양, 비타민 B의 결핍 등이 있다.

위험인자와 보호인자

치매의 위험인자를 파악하는 것은 질환 초기에 개입해서 치매 이행을 늦춰 삶의 질 개선은 물론 사회경제적 비용의 절감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기개입으로 치매 이행을 2년 늦추면 20년 후 치매 유병률이 30% 감소하는 효과가 있으며, 5년 늦추면 유병률이 절반까지 낮아질 수 있다.

치매의 위험인자는 조절 불가 인자와 조절 가능 인자로 대별할 수 있다.

조절 불가한 위험인자는 나이, 성별, 유전자 등이다. 알츠하이머형 치매를 포함한 대부분의 치매는 65세 이후에 발병하며, 남성보다 여성에서 발병률이 훨씬 높다. 아포지단백-E(Apolipoprotein E, APO-E)의 한 유형인 APOE- ε4는 알츠하이머병의 발생 가능성을 촉진한다.

아포지단백-E(Apolipoprotein E, APO-E)의 발견= 아포지단백-E는 65세 이후에 발생하는 노인성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유전자는 19번 염색체에 있으며, 혈중 콜레스테롤의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데, 세 가지 대립유전자(ApoE2, ApoE3, ApoE4)가 있다. 그 중 E4변형이 위험인자가 된다. 이 변형 유전자는 베타아밀로이드의 배출을 저해하여 신경세포의 손상을 초래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50%정도가 적어도 하나의 E4 대립유전자를 보유하는데, 대립유전자 하나를 보유하면 알츠하이머병 발생 위험이 3배 증가하며, 두 개를 가지고 있으면 위험이 10배 이상으로 격증한다.

드물지만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초로기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 전구단백질(amyloid precursor protein), 프리세닐린 1 (presenilin 1), 프리세닐린 2 (presenilin 2) 유전자 변이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돌연변이는 베타아밀로이드의 생성을 촉진한다.

아우구스테 데테르(Auguste Deter)의 치매 유전자(PSEN1 gene)= 최초의 알츠하이머병 환자인 아우구스테가 사망하고 1세기가 지난 뒤에 독일과 호주의 연구자들이 그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프리세닐린 유전자 돌연변이를 확인했다. 프리세닐린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베타아밀로이드의 전구체인 아밀로이드 전구단백질 분해효소인 감마-시크리타아제(γ-secretase)의 작용과정을 변형시켜 베타아밀로이드를 과다 생성한다.

조절 가능한 위험인자에는 알코올 섭취, 흡연, 비만,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두부손상, 우울증, 갑상선 기능이상, 매독 등 감염성 질환, 뇌종양, 비타민 B12와 엽산의 결핍 등이 있다. 한편, 치매의 보호인자로는 운동, 교육, 비스테로이드 소염진통제, 항산화제, 호르몬 대체요법 등이 있다.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는 대부분의 위험인자를 공유한다. 조절 가능한 위험인자를 조기에 파악하여 효과적으로 관리한다면 치매를 예방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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