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대륙, 아메리카 / 로널드 라이트 지음 / 안병국 옮김 / 이론과실천 펴냄, 2012년

[라포르시안] 어렸을 때 인디언과 미국 기병대가 싸우는 영화를 보다가 기병대가 인디언을 물리치면 박수를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저 기병대가 주인공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땅의 주인은 인디언이었던 것입니다. 아메리카대륙의 주인의 역사는 어디로 가고 이주민의 역사만 남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치 살고 있던 땅을 순순히 내준 것처럼 포장된 역사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아메리카대륙을 처음 발견한 콜럼버스가 인도로 착각한데서 나온 말이니 ‘인디언’이라는 말도 틀린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저는 ‘인디언’이란 말이 딱 질색이에요. (…) ‘인디언’은 백인들의 상상의 산물일 따름입니다.”라고 한 캐나다 오지브와족 출신 여류작가 리노아 카식-토비어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문화가 다양해서 여러 문화권을 이루고 있는데 ‘인디언’이라는 단어 하나로 싸잡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어떻게 부르던 간에 우리는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고고학자들이나 유전학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1만5천년~3만년 전에 베링해를 건너왔다고 믿고 있습니다만 원주민들은 자신의 조상은 처음부터 그곳에서 살아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문명사적으로도 이들이 태곳적부터 이곳에서 살아왔고, 자신의 언어와 문화, 문명을 꽃피웠기 때문에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아메리카인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의 아메리카문명은 그저 유럽문명의 아류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드리는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 시각에서 본 근현대사를 정리합니다. 특히 콜럼버스 이후 유럽 이주민의 침략에 맞선 아메리카 원주민이 어떻게 저항을 해왔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저항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를 쓴 로널드 라이트는 영국 태생의 역사가, 고고학자, 문명비평가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캐나다 캘거리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였고, 평생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명과 역사를 연구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재야 사학자인 셈인가요? 그는 특히 서구 문명의 한계를 성찰하여, 서구 문명 중심의 해석을 경계해왔습니다.

저자는 남북 아메리카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원주민들의 문명 가운데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목할 만한 다섯 문명을 골라, 유럽 이주민들의 침략기, 이에 대한 원주민들의 저항기,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 힘을 받고 있는 부활의 움직임을 각각 설명합니다. 그 다섯 문명으로는 메소아메리카의 아스테카와 마야, 남아메리카의 잉카,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체로키와 이로쿼이입니다. 사실 이들 이외에도 파라과이의 과라니족, 칠레의 마푸체족, 브라질의 야노마미족, 북아메리카의 나바호족과 블랙풋족, 니카라과의 미스키토족 등도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아메리카대륙에 유럽 이주민이 침략해온 시기를 다룬 ‘침략’에만 ‘발견’이라는 제목의 프롤로그가 붙어 있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의 아메리카를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보입니다. 1492년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이 된 사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본디 있던 것을 발견이라고 하는 것이 우스운 이야기라는 생각도 듭니다만-이 있기 전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북극의 툰드라 지역에서부터 중앙아메리카의 카리브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저 높은 안데스 산맥에서부터 남아메리카 남단의 케이프 혼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다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사회상을 보이고 있었는데 수렵 유목 사회도 있었고, 농경 정착 사회도 있었으며, 커다란 도시를 이룬 도시 문명사회도 있었습니다.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는 자그마치 1억 명으로 전체 세계인구의 20%를 차지할 정도였지만, 콜럼버스 출현 이후 불과 수십 년 만에 몰살을 당하다시피 했습니다. 침략자들의 학살과 탄압,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 원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홀홀단신으로 건너온 이주민 남성들이 원주민 여성들을 취하거나, 급감한 원주민을 대신할 노동력으로 끌어들인 아프리카계 사람들까지 가세하여 원주민의 혈통을 희석시킨 것도 순수 원주민의 인구를 격감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의 혈통은 끈질기게 이어져, 안데스지역에는 잉카어를 사용하는 원주민이 1,200만 명이 살고 있고, 메소아메리카에도 마야어를 사용하는 원주민이 600만 명에 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테말라 같은 경우는 마야 원주민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마야 공화국이 성립되어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또한 또 1980년 페루에서는 좌익 게릴라가 무장 투쟁을 벌인바 있으며, 1990년 캐나다에서는 모호크족이 무장봉기를 일으켜 ‘미국에도 캐나다에도 넘긴 적이 없는 우리의 주권을 내놓으라!’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진 메아리가 되고 있습니다. 무려 500년 동안 미국 정착민들은 물론 세계인들까지도 모른 척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흰 얼굴의 신(神)’이라는 개념 역시 허구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주민들의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담긴 왜곡이라는 것입니다. 유카탄 원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케찰코아틀 신화입니다. 아즈텍사람들은 풍요와 평화의 신으로 알려진 케찰코아틀신이 전쟁의 신의 음모로 쫓겨나고 말았지만 언젠가는 하얀 얼굴을 하고 돌아온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즈텍사람들은 코르테스를 처음 만났을 때, 다시 온 케찰코아틀로 착각하였기에 적극적인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래 읽은 원주민 시각에서 쓴 자료들을 읽어보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천성적으로 외부에서 온 손님에게 관대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손님이 음흉한 속셈을 감추고 있더라도 말입니다. 아즈텍과 마야에 대한 스페인의 침략과정에 관하여 원주민들이 남긴 기록들이 최근에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미겔 레온-포르티야가 쓴 <정복당한 자의 시선> 같은 번역서도 있고, 정혜주교수가 쓴 <마야원주민의 전쟁과 평화> 처럼 우리나라의 라틴아메리카 전문가가 쓴 책도 있습니다.

스페인이 아메리카로 몰려간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중동지방에서 압바스왕조에 무너진 우마이야왕조의 아브드 알 라흐만이 이베리아 반도로 도망가 756년에 코르도바를 수도로 후기 우마이야왕조를 세우고 이베리아반도를 모두 차지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이베리아반도에 흩어져 있던 스페인 왕국들은 1492년 아라곤의 페르난도2세와 이사벨1세 여왕의 가톨릭연합군이 그라나다의 나스르왕국을 멸망시킬 때까지 국토회복을 위하여 매진했던 것입니다. 국토통일을 이룬 다음에는 군사들을 토사구팽을 할 수 없었으니 새로운 목표를 내놓아야 했습니다. 마침 콜럼버스가 동양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겠다고 나섰던 것이 성공을 거두었고, 전후 할 일이 없어진 병사들은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아메리카로 향했던 것입니다. 침략과정에서 다른 종교, 문화를 포용하는 능력이 없었던 스페인사람들은 아메리카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노예로 부려 부를 축적했으며, 오랜 세월 그들이 쌓아올린 문명을 말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메소아메리카의 지형적 특성으로 침략자의 손길을 피한 일부 유적들이 살아남아 지금 우리를 맞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침입해올 당시에도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된 원주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원주민들이 침략자를 궤멸시켰을 때 마침 새로운 지원군이 도착하는 등,  행운의 여신은 침략자의 편이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침략자들이 가지고 온 전염병 때문에 전력이 무너진 원주민들은 결국 무릎을 꿇어야 했던 것입니다. 일설에는 천연두 환자가 사용하던 물건을 생물학무기로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한 스페인은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주민의 숫자가 급감하자 아프리카 원주민을 끌고 와 노예로 삼았습니다. 저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기록을 두루 섭렵하여 이들의 저항을 상세하게 정리해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의 침략은 라틴아메리카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 역시 이주민들을 따듯하게 맞아 정착을 지원해주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주민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서 이주민들과 원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의 땅을 야금야금 차지하면서 원주민들을 고향에서 몰아냈던 것입니다. 원주민들 모르게 법을 만들고 이주를 강요하는가 하면 협상을 통하여 어르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막무가내로 원주민들을 척박한 땅으로 몰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새로운 부가가치가 생기면 다시 그 땅을 차지하는 수법을 썼던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주민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원주민들 집단 사이의 이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의견이 통일되지 않도록 하는 이간책이 통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식민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원주민들의 반란이 꾸준하게 이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반란은 성공하지 못하고 진압되곤 하였습니다. 19세기 라틴아메리카가 스페인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이룬 다음에는 백인 정착민의 주도로 근대국가를 수립하였지만, 원주민들의 권리는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많이 호전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멕시코에서는 원주민 출신의 베니토 파블로 후아레스 가르시아 (Benito Pablo Juárez García, 1806년 3월 21일 ~ 1872년 7월 18일)가 1857년부터 1872년까지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그는 멕시코사회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교회와 토지귀족이 독점하고 있는 독점경제를 자본주의로 대체하는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습니다. 국민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고, 가톨릭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토지개혁을 시도하다가 교회와 지주의 반발로 내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유카탄반도의 마야는 반란에 성공하여 자유국을 이루어 20세기까지 존립하였습니다. 과테말라에서도 정부군과 원주민 세력 사이에 오랜 기간 내전(1963~1996)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북아메리카의 체로키족은 일부 오클라호마로 이주하였지만, 일부는 그레이트스모키 산맥에 그대로 잔류하여 ‘동부 체로키 보호구역’을 만들어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서부 체로키족 역시 자치정부를 재건하고 대추장을 선출하였다고 합니다. 북동부에 거주하는 이로쿼이 연방의 모호크족은 1972년 전사단을 결성하고 영토를 빼앗으려는 캐나다 정부에 맞서 저항했다는 것입니다.

마야인들의 달력에 따르면 이민족의 지배는 예정된 것이었으며, 운명의 바퀴가 열세 번을 꽉 채우면 끝날 것이라고 전해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스페인이 유카탄반도를 지배한 기간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합니다. 이제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원주민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그들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리해보면 아메리카 대륙은 원주민들의 것이었으며, 지금도 그들의 권리가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서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다섯 부족들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 저항하고 부활하는 과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오히려 부족별로 침략과 저항과 부활을 이어서 설명했더라면 읽기에 조금 편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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