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분만실 갖춘 산부인과 170개 넘게 줄어…저수가·의료사고 부담·분만 기피 조장하는 정책

[라포르시안]  저출산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임신·출산을 위한 보건의료 인프라 붕괴가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분만인프라 붕괴가 저출산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두가지 요인이 맞물려 저출산 현상을 심화시킨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분만인프라 지원을 위한 수가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전국적으로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 중에서 170개가 넘는 곳이 사라졌다.

분만수가를 개선한다고 해서 쉽사리 해결될 문제는 아닌 거 같다.

2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자원분포' 통계자료에 따르면 분만실을 보유한 산부인과과 지난 2011년 929개에서 2016년 7월말 현재 753개로 176개가 줄었다. 해마다 평균 34개의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지역별로 보면 이 기간동안 서울에서는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가 185개에서 153개로 32개가 줄었고, 경기도는 193개에서 156개로 37개나 감소했다.

광주(13개), 전남(13개), 경남(11개), 강원도(11개), 인천(10개), 대전(10개) 등의 지역에서도 최근 5년간 각각 10개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5~49세 가임기 여성 인구 10만명당 분만실 보유 산부인과 수는 2011년 7.1개에서 2016년 7월 말 현재 5.8개로 감소했다.   

▲ 자료 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자원통계. 표 제작: 라포르시안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가 계속 줄면서 분만 인프라의 접근성에 있어서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와 군단위 지역간 형평성이 악화되고 있다.  <관련 기사: 30km 거리 분만병원 찾아 운전대 잡은 39세 임산부…분만인프라 붕괴의 현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의 이소영 부연구위원이 최근 <보건복지 이슈&포커스>에 게재한 '임신·출산을 위한 인프라의 분포와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보면 임신·출산을 위한 인프라의 접근성이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났다.

시·군·구 중심점을 기준으로 가장 근접한 곳의 분만 가능 인프라까지의 직선거리를 계산한 결과, 군 지역의 전국 평균 접근 거리는 24.1km로 시 지역의 4.8km보다 약 5배 더 멀었다.

서울 시내에서 분만 인프라와의 평균 접근 거리는 1.1km였고, 광역시는 3.9km였다.

분만인프라의 붕괴로 인한 접근성 하락은 최근의 고령 산모를 포함한 고위험 산모와 고위험 신생아 증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통계청의 출생 통계에 따르면 임신 37주 미만에 출생하는 조산아는 2004년 3.8%에서 2014년 6.7%로 늘었고, 출생 체중 2,500g 미만의 저체중아는 2004년 4.1%에서 2014년 5.7%로 증가했다.

특히 고령산모의 경우 임신중 고혈압성 질환, 임신성당뇨, 제왕절개 빈도, 조산빈도 등이 높은 고위험 산모이지만 이들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는 계속 줄고 있다.

분만을 접고 부인과 질환이나 피부미용, 성형 등의 비급여 진료가 많은 쪽으로 진료를 보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출산을 위한 분만인프라 뿐만 아니라 고위험 산모와 고위험 신생아 출산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분만환경을 갖춰야 하는데 지금처럼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기피하는 경향이 심화되면 그런 환경을 구축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산부인과의 분만 기피를 조장해온 정부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기피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분만 수가가 낮고, 의료사고 위험에 대한 부담도 크고, 분만실 운영에 따른 24시간 운영체제를 유지하는 데 많은 인력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분만취약지를 중심으로 분만수가를 높이고, 인력과 시설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산부인과의 분만기피를 해소하지는 못하고 있다.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의 내용이 비현실적이라 참여 병원들은 불어나는 적자로 골치를 앓고 있다.

분만실을 운영하려면 최소한 산부인과 전문의 2명과 간호사 8명을 유지해야 하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비용은 인건비로 충당하기에도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로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에 참여한 의료기관이 분만실 운영에 따른 인건비와 시설유지비 때문에 경영난을 겪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의 대상이 실제 분만이 아닌 외래진료 지원 쪽으로 많이 이뤄진다.

분만에 따른 의료사고와 법정분쟁 등의 부담도 산부인과의 분만 포기를 초래하는 주요인이다. 심지어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산부인과가 피해 보상 재원의 30%를 부담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1년 3년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도입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산과 무과실 보상)'에 따른 것이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이란 보건의료인이 의료행위 과정에서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분만에 따른 의료사고에 대해 최고 3,000만 원 범위에서 피해를 보상하는 제도.  

여기에 소요되는 보상사업의 재원은 국가(70%)와 분만 실적이 있는 보건의료기관개설자(30%)가 7대 3으로 나눠 부담하도록 규정돼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재원 분담금 부과·징수 공고'를 보면 분만실적이 있는 산부인과에서 부담해야 하는 보상재원 비용이 분만실적 한 건당 약 1161원 정도였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것은 자존심 문제다. 7대 3이 아니라 9대 1의 분담 비율도 받아들일 수 없다. 분만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과실이 없어도 배상 책임을 져야한다면 산부인과 의사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낮은 수가와 분만실 운영에 따른 경영상의 부담, 분만에 따른 법적분쟁 부담, 분만 의사들의 자존심을 해치는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산부인과의 분만 포기를 재촉하는 상황이다. <관련 기사: 분만 한건당 ‘1161원’의 자긍심 강탈당하는 산부인과 의사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가 분만취약지 인프라 확충을 위해 97개 분만취약지역에 대해서 분만 수가를 200% 가산하고, 고위험 분만(30%), 심야(22시∼06시) 분만(100%)에 대한 수가 가산을 적용해도 얼마나 효과를 볼지 미지수다.

한 산부인과의사는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병원의 의료진은 당직도 많고 업무가 과중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여기에 의료사고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에 항상 시달린다"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분만실을 유지해 왔는데 그동안 정부의 정책은 분만실 폐쇄를 조장하는 쪽으로 추진돼 왔다. 뒤늦게 분만 수가를 올린다고 분만인프라 붕괴를 멈추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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