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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아우슈비츠의 ‘나쁜 의사들’나쁜 의사들 / 미셀 시메스 지음 / 최고나 옮김 / 책담 펴냄, 2015년
[라포르시안] 지난주에 우여곡절 끝에 동유럽을 다녀왔습니다. 그 첫 번째 여정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오시비엥침이었습니다. 폴란드어로 오시비엥침(Oświęcim)이라고 하는 지역은 독일어로는 익숙한 아우슈비츠(Auschwitz)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강제수용소를 세워 유대인 등을 학살하고, 심지어는 인체실험을 자행한 곳입니다. 종전 무렵 소련군이 예상보다 빠르게 이 지역을 압박하자, 당황한 독일군이 허겁지겁 퇴각하는 바람에 학살현장이 고스란히 남을 수 있었습니다. 1947년 폴란드 정부는 이곳에 박물관을 설립하여 수용소 건물, 철조망, 막사, 교수대, 가스실, 소각장 등, 나치가 자행했던 집단 학살의 상황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나쁜 의사들>은 나치가 세운 수용소에 똬리를 틀고서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끔찍한 인체실험을 수행한 의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을 쓴 미셸 시메스(Michel Cymes)는 프랑스에서 라디오와 TV 진행자로 활동하는 의사입니다. 특히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할아버지를 잃은 희생자 가족이기도 합니다. 여러 번 미루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방문길에 나치의사들이 인체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을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가족이 죽음을 맞은 곳, 그것도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라 학살을 당한 곳을 방문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죽음의 현장, “수많은 인간 실험동물들이 ‘의사’라고 불리는 자들의 가혹행위를 겪은 곳”에서 저자에게 들었던 의문은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였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 직업과 연을 맺어 놓고, 어떻게 사람들을 더 이상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죽이고자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의 의사들이 이곳에서 한 짓을 증언하라는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료를 모으는 동안 ‘그들이 한 일은 나쁘지만, 그래도 의학을 발전시켰잖아’라는 알쏭달쏭한 말도 들었지만, ‘윤리를 자양분으로 삼은 의사로서의 내 작은 뇌 속에서 잔학행위는 의학의 진보로 연결되지 않는다(15쪽)’라고 다짐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실력도 형편없으면서 자기과시욕으로 똘똘 뭉친 죽음의 의사들이 만들어낸 성과 역시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예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추악한 의사들은 모두가 미친 것도 무능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성과에 대하여도 논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역사가의 시각이 아니라 그저 의사라는 전문가적인 시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글은 반인류 범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부서지기 쉬운 기념물에 조촐하게 보탠 나의 작은 돌이다(16쪽)”라고 서문을 마무리하였습니다.

1945년 11월부터 1946년 10월까지 뉘른베르크에서 진행된 전범재판이 끝난 직후 나치의 비호 아래 인체실험을 자행한 의사들에 대한 조사와 재판이 이어졌습니다. 전쟁범죄위원회 산하 전문가 위원회가 강제수용소의 나치 의사들을 조사를 맡아, 수많은 자료와 명백한 증거물, 증인들을 모았고, 그들이 수용된 사람들에게 가스실보다 혹독하고 유례없는 고통을 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다하우에서 저체온증을 연구했던 지그문트 라셔는 죽임을 당했고, 아우슈비츠에서 쌍둥이실험을 주도한 요제프 멩겔레는 남미로 도주했지만, 스무명의 의사들을 피고인석에 앉힐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전공도 각기 달랐고, 재판당시 나이도 서른다섯부터 예순둘까지 다양했습니다. 외과의사 4명(카를 브란트, 프리츠 피셔, 카를 게브하르트, 파울 로스톡), 피부과 의사 3명(쿠르트 블롬, 아돌프 포코르니, 헤르타 오버호이져), 세균학자 4명(지크프리트 한드로저, 요아힘 므루고프스키, 게르하르트 로제, 오스카 슈뢰더), 내과 전문의 1명(빌헬름 바이글뵉), 방사선과 의사 1명(아우구스트 벨츠), 일반의 2명(발데마르 호벤, 카를 겐츠켄), 유전학자 1명(헬무트 포펜딕), 연구원 4명(헤르만 베커 프레이장, 볼프강 롬베르크, 지크프리트 루프, 콘라드 셰퍼) 등입니다. 병리의사가 없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동시에 병리의사의 판독소견이 없는 실험결과사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인체실험을 했던 의사나 과학자들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통해 1947년 과학자의 연구윤리에 관한 10개항의 기준을 만든 것이 뉘른베르크 강령입니다. 뉘른베르크강령은 재판을 위하여 법률가들이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의사들 스스로 전문적인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세계의사회는 1953년부터 인체실험에 관한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1947년의 뉘른베르크 강령을 수정 보완하여 만든 규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의학 연구에 대한 윤리적 원칙’을 196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제18회 세계의사협회 총회에서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모두 열네개의 항으로 되어 있는 헬싱키선언의 핵심은 ‘피험자의 이익에 대한 고려를 과학 및 사회의 이익에 우선시해야 한다.’라고 명시하는 등 피험자의 안전과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생명의료윤리 근간 ‘뉘른베르크 강령’, 나치 전범 단죄에서 나왔다>

<나쁜 의사들>에서 다룬 죽음의 의사들과 그들의 범죄행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공군에서 복무한 지그문트 라셔는 조종사들이 고공에서 탈출하게 될 때 겪어야 하는 압력과 기온차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동물실험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실험설계 자체가 어려웠던 라셔는 힘러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사형수를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압실과 얼음을 넣은 수조를 동원하여 실험을 수행하였고, 실험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은 부검을 통하여 병변을 확인하기까지 했습니다. 라셔의 연구에 대하여 ‘추위로 인한 쇼크 상태의 치료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53쪽)’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실험했다는 변명은 적절치 않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힘러의 눈 밖에 났던 라셔는 친위대에 체포되었고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역시 공군에서 복무한 내과 전문의 빌헬름 바이글뵉은 해수음용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바다에 추락한 비행사가 갈증으로 사망하는 상황을 해결하라는 힘러의 요구에 따라 셰퍼는 필터를 이용하여 해수를 거르는 방식을 개발하였고, 베르카는 설탕과 비타민C를 혼합한 물질을 해수에 투입하여 해수의 짠맛을 없애는 방식을 개발하였습니다. 두 가지 방식을 검증하기 위하여 바이글뵉은 40명의 집시들을 네 집단으로 나누어 해수와 베르카방식을 적용한 해수, 셰퍼의 필터로 거른 해수, 그리고 식수를 각각 먹였습니다. 첫 번째 실험은 6일 동안, 두 번째 실험은 12일 동안,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해수를 마시거나 베르카의 방식을 적용한 해수를 마신 피험자들은 갈증과 고통을 호소했고, 경련과 정신착란을 일으켰지만, 그에 합당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실험자들은 장기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하여 간 천자술을 시행하였습니다. 전범재판에서 15년을 선고받은 바이글뵉은 겨우 절반의 형을 마치고 1952년 석방되어 1963년 사망할 때까지 북스테후데 병원에서 의사로 일했다는 것입니다.

아리베르트 하임은 수용소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수감자를 처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심장에 휘발유나 독을 직접 주사하거나, 마취도 하지 않고 장기를 적출하는 반인륜적 방식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토드(Tod, 독일어로 죽음, 사신을 뜻함)박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마우트하우젠의 도살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1941년 말 하임은 돌연 친위대 북부사단으로 전출되어 핀란드에 갔다가 종전과 함께 체포되었지만 이내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덴바덴에서 산부인과의사로 평화롭게 살다가 1962년 전범으로 기소되면서 도주하였는데, 카이로에 정착한 그는 이름을 바꾸고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살다가 1992년 대장암으로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아우구스트 히르트는 화학전에 대비하여 전투가스의 해독제를 찾는 인체실험을 주도했습니다. 히르트는 쥐에게 독가스성분인 이페리트를 투여하였을 때 비타민A를 준 쥐들이 오래 생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인체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피험자들의 팔에 이페리트 한 방울씩 떨어트리고는 해독 크림과 연고를 바르거나 약을 먹이고, 혹은 혈관주사를 놓고 조제한 약을 실험하는 등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여 해독조건을 찾아내려 하였습니다. 물론 대조군에게는 아무런 처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페리트를 투여 받은 환자는 대략 6시간이 지나면 욱신거리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전신으로 번지면서, 다음날에는 발열증상까지 나타났다고 합니다. 엿새째가 되어서 첫 번째 사망자가 나타났습니다. 죽은 사람을 부검해서 표본을 추출하고 남은 시신은 화장 가마에서 태웠습니다. 그는 해독제를 찾는 실험 이외에도 소위 스트라스부르 컬렉션이라고 부르는 유대인 골격과 두개골표본을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연합군이 스트라스부르에 진주했을 당시 히르트는 수용소를 탈출하여 튀빙겐에서 멀지 않은 검은 숲에 몸을 감추었다가 1945년 6월 자살로 잔악했던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죽음의 천사’로 불리던 요제프 멩겔레는 수용소에 도착하는 유대인들을 선별하여 가스실로 보내는 작업을 수행하는 한편, 유전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인간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쌍둥이 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먼지가 쌓인 선로에서 멩겔레를 처음 본 유대인들은 황폐한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등장한 기품 있는 친위대 장교가 클라크 케이블 같이 생겨 살인자로 보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멩겔레는 독일 우생학의 거장 오트마르 폰 페르슈어 박사의 조교를 지냈습니다. 따라서 ‘유전적으로 병들고 가치 없는 사람들의 재생산 제한을 목표로 한 사회적 위생실천’을 주장한 페르슈어박사의 가르침을 받은 멩겔레는 쌍둥이의 비밀을 밝혀 독일이 세계를 지배하는데 기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집시, 쌍둥이, 난쟁이 등등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림을 그려 분류했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멩겔레는 다음 단계로 대상을 해부해서 장기를 분석하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죽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부검을 통해서도 역시 찾아낸 것이 없었습니다.

1945년 러시아군이 아우슈비츠에 진입했을 때 멩겔레는 탈출에 성공하여 고향 바이에른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혼란이 가라앉고 체포될 우려가 높아지자, 그는 1949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망명합니다. 페론 정권은 대외적으로는 중립을 내세웠지만 나치의 전직 고관들과 자본을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는 헬무트 그레고르라는 이름으로 소아과 의사가 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사교계에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1956년에는 본명을 되찾아 결혼도 하고 1958년에는 제약사의 주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대학이 그의 학위를 취소하면서 합법적으로 의술을 시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이의를 제기하는 오만함을 보였지만,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야 했습니다. 알프레도 마옌이라는 이름으로 파라과이의 호에나우에 정착한 멩겔레는 1979년 브라질 베르지오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처리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페이퍼클립작전을 통하여 나치의 수많은 과학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독일의 첨단기술을 연구하게 하였는데, 이면에는 공산주의와의 맞서기 위하여 과학기술과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나치 흉악범들이 법의 심판을 피하는 혜택을 얻었다고 합니다. 미국 뿐 아니라 소비에트연방도, 영국도, 프랑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거나 저자는 나치에 협력한 의사들에 대하여 ‘의학계의 수치’라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나치의 수용소 의사들이 했던 일의 의미를 분명하게 새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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