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2015년 6월 11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 '메르스 사태의 경제적 효과 분석'이란 보고서를 냈다. 연구원은 메르스 유행이 8월 말까지 지속되면 사회적 손실이 2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연구원은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메르스 유행으로 인한 격리자와 감염자의 노동손실을 추계하고, 동시에 물류나 음식숙박업, 오락산업 등의 매출 감소를 더했다. 그렇게 해서 최대 20조원 규모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전경련은 한국의 대기업집단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단체이다. 그곳에서 이런 보고서를 낸 건 아마도 감염병 유행에 따른 불안심리로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경기 부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에 대한 경제계의 불안감을 표출한 것에 다름없다. '메르스 사태 장기화로 내수경기가 위축되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는 시그널을 정부를 향해 보낸 셈이다. 연구원이 보고서를 통해 "가뜩이나 어려운 수출환경과 대외신인도를 감안할 때 우리 사회의 지나친 불안감은 자칫 수출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불안감이 확산되는 상황을 경계하면서 차분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대목은 이를 짐작게 한다.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이런 반응은 익숙하다. 2009년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대유행 했을 때도 그랬다. 정부는 양돈업계와 음식점의 경제적 손실을 우려해 그 명칭을 '신종인플루엔자'로 변경했다. 심지어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돼지고기 소비가 위축되자 신종플루에 대한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겠다며 '안전한 우리돼지 시식회'를 열었다. 돼지고기 시식과 신종인플루 감염이 상관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였다. 그보다 앞서 2004년 조류독감 유행 때는 축산 농가와 유통업계를 돕겠다며 의협이 닭고기 시식회를 열었던 일도 있었다. "여러분의 주치의도 닭고기를 즐겨 먹습니다.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드십시오"라는 메시지까지 던지면서.

최근 콜레라 감염 환자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전국의 수산업계가 깊은 시름에 빠졌다고 한다. 이쯤에서 의협이 팔을 걷고 나서 '우리수산물 시식회'라도 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상황이 신종플루나 조류독감 때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아직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눈에 띄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들이 지난 5일 질병관리본부를 방문해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남 거제 지역에서 해산물을 섭취하고 콜레라에 감염된 환자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해당 지역의 해산물 소비가 크게 위축됐다고 한다. 수협이 질병관리본부를 항의방문한 건 콜레라 감염의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는데 보건당국이 마치 콜레라균에 오염된 해산물이 감염의 매개체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는 기사까지 나오는 판이니 놀랄 일은 아니다.

이거 참 난감한 일이다. 고도의 과학기술과 자본의 축적으로 완성된 문명사회에서 감염병은 여간 골치아픈 존재가 아니다. 감염병 유행은 소비 위축과 이윤 감소라는 자본주의의 취약한 고리를 찾아내 공격한다. 사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 정부가  종식 선언을 서두르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게 경제적 손실에 대한 조바심 때문이었다는 추측도 많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도 무시하며 '사실상 종식 선언'이라는 이상한 선택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수협에서 질병관리본부를 항의 방문했다는 기사가 보도되고, 추석 대목을 앞둔 시점에서 콜레라 유행 우려가 지속될 경우 수산업계가 입을 타격이 크다는 보도가 쏟아지면 정부는 또 명확한 원인 규명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콜레라 사태'를 서둘러 종식하려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애초 이 글의 제목을 4년 전 국내 발간된 책의 제목을 따와서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로 할 생각이었다.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는 콜레라와 공중위생, 백신, 항생제, DNA의 발견처럼 세상을 바꾼 의학의 혁신적인 10가지 발견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소설처럼 풀어냈다. 특히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 공중위생의 발견’ 편은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기까지 하다. 콜레라가 물이나 음식물에 들어 있는 세균에 의해 전염되는 ‘수인성전염병’이란 것과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역학조사란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19세기 영국인 의사 존 스노우와 '대영제국 노동인구의 위생 상태에 대하여'라는 보고서를 통해 근대 공중위생 역사에서 획기적인 분기점을 마련한 에드윈 채드윅이란 변호사의 활약상은 역경과 고난을 딛고 일어선 영웅담이나 다를 바 없다.

"스노우와 채드윅은 독자적으로 활동했지만 서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낡은 세계가 새로운 시대에 눈뜰 수 있도록 도왔다. 그들은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새로운 도시 문명의 시대로, 근대적 위생이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시대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 66쪽>

콜레라를 통해 수인성 감염병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공중위생의 중요성을 인식시킴으로써 인류가 새로운 문명사회로 진입할 수 있게끔 이끌었다는 의미다. 역설적으로, 그로부터 150년도 훨씬 더 지나는 세월동안 이룩한 문명사회가 잊혀졌던 감염병을 호출하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감염병 유행의 위기신호를 차단하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제논리가 메르스 같은 감염병 유행을 부추긴다는 걸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메르스 사태 당시 방역을 위한 자발적인 격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복지인프라의 부재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아파도 쉴 수 없는 노동환경, 일자리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소득상실에 대한 공포는 감염 확산의 우려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격리가 필요한 감염의심 환자를 일터로 내몰았다. 급기야 경제에 타격을 준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국가방역체계 구축 논의도 없이 종식 선언을 서둘렀다. 15년 만에 국내에서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자 또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조짐을 보인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한국에서 콜레라를 구한 건 바로 문명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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