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 위기 상황서 불통·공감 부족으로 ‘심리적 방역’ 실패…“국민은 방역과 위기 소통 주체라는 인식전환 필요”

[라포르시안] 지난해 국내에서 유행한 메르스 바이러스는 예방과 통제를 위한 정보와 의학적 지식이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큰 신종감염병이었다. 그랬던 만큼 신속하고 신중한 방역 대응이 이뤄져야 했지만 초기 대응부터 부실 그 자체였다. 감염자 발생 정보의 불통, '2m 이내 1시간 가량 접촉'이라는 격리자 기준, 의료전달체계 부실과 과밀도가 높은 응급실, 보호자에게 맡기는 간병문화 등이 딱 맞아떨어져 메르스 사태는 엄청난 인명피해와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당시 보건당국의 대응은 여러 모로 부실하고 불완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게 바로 '위기 상황에서 의사소통'(risk communication)의 부재였다. 신종감염병 확산의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믿을 만한 방역당국은 신뢰할 만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고, 또한 있는 정보마저도 제대로 공유되지 못했다.

메르스 사태 초기 보건당국의 위험 소통 부재는 '심리적 방역'의 실패로 이어졌다. 위험 소통의 주체인 정부가 불통하면서 부정확한 정보가 퍼지고,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감염병 유행의 공포를 더욱 부추겼다. 정보의 공유와 소통의 부재는 산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치료를 받고 있는 감염자를 사망했다고 발표했다고 뒤늦게 이를 정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혼란이 가중되자 정부는 '괴담 유포' 운운하며 위험 소통의 실패를 인정하기 보다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태도마저 취했다. 방역은 오로지 정부의 책임이자 권한이고, 국민은 계도와 통제의 대상이었다. <관련 기사: 메르스 사태 때 정부 보도자로 분석했더니…“책임 회피 내용으로 가득”>

정부가 뒤늦게 제공한 정보는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방역을 위해 필요한 조치마저 외면받았다. 급기야 정체모를 신종감염병을 놓고 정부와 보건의료전문가 단체가 대립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갈등을 빚고, 그리고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괴담 유포자' 운운하며 싸웠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감염병 재난 발생시 보건당국을 중심으로 한 대국민 위기 소통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지난 30일 질병관리본부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신종 감염병 발생시 신속 대응 및 확산방지를 위한 방역 수단의 일환으로 의료기관 및 감염자 등과 관련된 정보공개 및 위기 소통 문제를 다룬 포럼이 열렸다.

‘공중보건 위기 대비 대응과 위기소통의 역할’이란 주제로 열린 포럼에는 보건당국 관계자와 보건의료 전문가를 비롯해 언론인, 의료기관 종사자 등 각계각층에서 참여해 정보 공개 및 위기 소통 방안을 제시했다. 라포르시안은 포럼 참가자들의 주요 발언을 지면을 통해 상세히 소개하고,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바람직한 정보공개와 위기 소통의 대안을 고민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박기수(질병관리본부 위기소통담당관) = 위기 소통에서 가장 기본은 제한된 시간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국민들이 최적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메르스 사태 당시 산 사람을 사망자로 발표하고, 보건복지부는 10시간 지난 뒤 실수였다고 발표를 정정했다. 또 당일 오전까지 보호자가 환자의 부인이었다고 발표했다가 몇 시간된 부인이 아닌 아들이었다고 정하기도 했다.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한 의료기관 정보도 정확한 확인 없이 발표해 병원 명칭이나 주소 오류 등으로 혼란을 부추겼다. 당시 위기상황에서 (보건당국 담당자들이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제대로 보지 않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다. 또 뒷북공개, 늦장공개라는 지적이 제기됐는데  실제로 보건당국이 그렇게 했다.(메르스 예방 수칙을 통해)'낙타와 접촉하지 말라'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국내에서는 낙타를 접촉할 일이 없는 상황이라서 이를 두고 보건당국에 대한 비난이 제기됐다. 사실 해외여행객을 위해 만든 자료였는데 이런 발표가 보건당국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도화선이 됐다.

정보공개는 크게 두가지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 방역의 관점에서 그렇다.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는 (감염병 유행의 상황에 따른 방역 대응을)보건당국이 아니라 국민이 판단하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방역 차원에서 평택성모병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그 병원을 방문했던 내원객들에게 감염 주의를 줄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보공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에 위기소통담당관을 두고 역학조사관도 확충했다. 관련법 개정을 통해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정보공개를 할 수 있게끔 규정했다. 지카바이러스 감염병 유행과 관련해 그동안 해외유입 사례가 발생했을 때 경유 병원을 다 공개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번씩 브리핑을 하고, 해당 지자체와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조동찬(SBS 의학전문기자) =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위기 소통보다 중요한 건 의학적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메르스 사태의 가장 큰 위기는 병원명 공개 여부가 아니라 '2m 이내 1시간 이상 접촉해야 감염될 수 있다'는 의학적 판단이 맞았다면 그렇게 문제가 크게 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다른 감염병에서도 그렇지만 언론사와 기자, 대한감염병학회 등의 의학적 판단이 틀린 데서 (메르스 사태가)기인했다. 전문가 집단의 의학적 판단이 (위기 소통에 있어서)가장 근본에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위기 상황 때는 좀 더 보수적으로, 폭넓게 의학적 판단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최재필(서울의료원 감염내과과장) = 아직도 병원으로 메르스 의심환자가 오고 있는데, 환자들은 자신의 자율성을 악용할 수 있는 그런 여지가 없다. 따라서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 대안적 조치의 강구, 보건학적인 조치를 취하는 게 중요한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논의가 없어서 아쉽다.

예방적 측면에 있어서 감염자의 정보를 공개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개인정보보안을 할 것인지 염두에 두고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신종 감염병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다. 예방 차원이 있고, 확인된 사실 차원의 정보가 있는데 언론의 보도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합쳐져서 존재하는 것 같다. (개인정보공개가)낙인을 위한 의도가 아니고 예방적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명시해서 보여줘야 한다. 특히 의료진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 집단의 논의를 거쳐 정보공개를 해야 한다. 그런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이재진(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개인식별정보가 보도에 의해서 공개될 때 언론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언론은 과연 얼마나 개선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법적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라고 본다.  무엇보다 언론도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 정부는 전문성의 과잉이고, 언론은 전문성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전문가들보다 앞서 예방적인 조치를 취하거나 원인을 발굴하는 보도를 하기 힘들겠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정보 부족에서 오는 간극을 누군가 메워야 하는데, 그게 바로 언론이 해야할 역할이라고 본다.

▲김동석(엔자임헬스 대표) = 정보의 공백을 메꾸지 않으면 여기서 루머가 생긴다. 방역당국이 감염병 관련 정보를 공개한다는 원칙을 세웠을 때 국민들이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정보공개가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보공개시)국민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기준을 잡고 그 기준에 따라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보건당국에서 정보를 공개했다가 여론이 나쁘면 그 기준을 변경하면서 신뢰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보공개는 증거를 기준(심리적 기준까지 포함)으로 해서 한 번 결정되면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은 방역과 위기 소통의 주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작년 메르스 사태 때 정보공개를 논의할 때 방역당국의 한 담당자가 "이제는 방역당국이 메르스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국민의 협조를 받아 메르스를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을 방역의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불특정 다수 국민이 참여해 메르스 감염 환자들이 거쳐 간 것으로 파악되는 전국 병원을 정리해 만든 '메르스맵'의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그런 부분을 고려해 국민이 방역의 '참여자'로 역할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은 계도의 대상이 아니다. 국민이 루머와 거짓 정보의 양산자가 아니라 방역의 기여자가 되고 싶도록 하는 게 위기 소통을 통해 해야할 일이다. 메르스 사태 때 방역으로 지친 의료진을 응원하는 데 있어서 국민이 크게 기여했다. 국민을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로 개입을 시켜야 국가와 한묶음이 돼 더 빨리 방역을 성공할 수 있다.

 

▲이순근(국민건강보험공단 정보관리실 과장) = '정부 1.0'이 단방향의 공공정보 고유라며, '정부 2.0'은 양방향, 그리고 '정부 3.0' 정책은 맞춤형 정보공유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사스 사태 때는 단방향으로 정보를 제공했고,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는 양방향으로 정보를 공유했다. 그러나 메르스 때는 정부 3.0이면서 국민 개개인에게 맞춤형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지 않았다. 메르스 관련 병원 정보를 공유했는데 의료기관에만 제공했다. 그 정보조차 맞춤형으로 병원에 제공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기존보다 개선된 방안이 없었다. (정보공유를 위한)건보공단의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지만 그것을 활용하려는 정책 결정이 없었다. 사스와 신종플루 유행 등의 (방역)정보가 소실되고 있다. 메르스 사태의 정보가 수집되고 보존돼서 필요한 방역정책을 수립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이런 논의를 통해서 그러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은숙(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메르스 사태 당시 위기 소통에 대한 학습효과도 부족했고,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시스템과 데이터는 많은데 그것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서 문제가 컸다고 생각한다. 현재 위기 대응과 위기 감지 시스템은 많지만 그것이 연계돼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 상황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싶다.

위기 소통의 행위자(Actor)가 누구인가. 정부가 전문가와 싸우다가 나중에는 (정부가)국민과 싸운다. '국민이 제시하는 정보가 괴담'이다 하면서 싸운다. 그런 모양새는 탈피해야 한다. 무엇보다 위기소통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혼란을 잠재우거나 혼란을 최소화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체화(體化)시켜야 한다. (혼란을 잠재우거나 혼란을 최소화 하는)그것은 부가적으로 얻는 것이다. 국민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것이 위기 소통의 목적이다.

정부가 늦장대응이라고 비판을 받는데 사실은 늦게 발견하는 것이다. 감시보다 증후가 있을 때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감지시스템도 분산돼 있다. 우리는 왜 국가에 중요한 전문적으로 축적돼 있는 인프라를 서로 차단해 놓고 있을까. 이러한 인프라는 반드시 공유돼야 한다.방역당국의 과장이 나와서 브리핑을 했다가 본부장이 나왔다가 장관이 나온다. 하지만 그런 것은 관료들의 생각이고, 오히려 이런 행태는 의료소비자한테 비합리적이고 잘못된 행태로 비치기 때문에 그런 걸 바꿔야 한다. 또한 공무원들은 위기 때 국민들에게 유감이고 안타깝다고 하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태도로 책임을 회피하다 보니 무능해지는 것이다. 왜 (국민과)같이 분노하거나 이 사안의 당사자라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나. 메르스 사태 당시 고위공무원들의 발표 태도는 안타깝고 유감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이는 국민과 자신들을 분리시키고 책임을 안지려는 태도로 비친다.

 

▲정제혁(질병관리본부 위기대응총괄과 사무관) = 정보공개 기준을 만들고 개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전체적인 국민의 요구를 채워줄 것인가 하는 상충적인 측면을 조정하는 것에 대한 합의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활발한 토론을 통해서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질병관리본부 내부에서조차 환자 정보를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가 협의하는 과정에 있다. 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가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가 개인 한사람 한사람을 보호하는 데도 있다. 개인의 정보보호를 위해서 더욱 노력하고 있다.

 

▲서명옥(강남구보건소장) =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 등 3종류의 감염병을 겪어보니 질병을 관리하는 것보다 질병에 대해서 불안해 하는 대중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환자가 발생했을 때 환자가 내 가족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언론이나 기자가 윤리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메르스 사태 당시 자가격리자를 취재하겠다고 모 종편의 기자가 그 격리자 집을 찾아가서 인터폰을 하루종일 눌러서 취재해 가더니 해당 방송에서 하루종일 내보내더라. 그것 때문에 지역민들은 더 불안해 하고 엄청난 민원이 제기됐다. 심지어 그 자가격리자를 끌어내라는 전화도 많이 받았다. 

메르스 사태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부적으로 소통이 안 되는 것이었다. 감염증 환자가 생기고 언론보도가 하루하루 달라지니까 지역민들로부터 민원제기는 폭주하는데 서울시와 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연락을 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감염병 재난 상황 발생시 위기 소통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재난이 많이 발생한 지역의 보건담당자와 보건당국 관계자가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으면 좋겠다. 감염병 재난이 발생했을 때 보건당국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부처의 문제이다. 그런데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이 감염이 되고 자가격리가 됐을 때 당시 인근에 있던 3개 초등학교에서 삼성서울병원 의료진과 직원 자녀들을 학교에 못 나오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교육부 장관이 방문해서 삼성서울병원 인근에는 모두 보건소 의사를 배치해 달라고 요구하는 데, 당시 보건소 의료진 모두 바쁜데 파견할 인력이 어디 있었나. 이런 상황에서는 타부처에서도 서로 소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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