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필립모리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연구자 장학금 후원 제안했다가 거부 당해

[라포르시안]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내외 담배회사 3개 업체와의 담배소송이 2년 넘게 진행 중인 가운데 소송 피고에 포함된 담배회사에서 국내 한 대학 측에 흡연과 관련된 연구 후원을 제안하면서 영향력을 미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당 대학 측은 담배회사의 후원 제안을 거부했다.

이 같은 사실은 30일 오전 건보공단과 범국민흡연폐해 대책단이 ‘담배소송, 담배회사에 책임을 묻다’라는 주제로 공동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공개됐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조성일 교수(대한금연학회 회장)는 '담배소송의 승리를 위해 보건의료전문가와 NGO가 함께 나아갈 방향'이란 제목의 발표를 통해 한국필립모리스가 서울대 보건대학원 측에 우수 연구자 후원을 제안한 사실을 소개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성일 교수가 8월 30일 열린 ‘담배소송, 담배회사에 책임을 묻다’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공개한 한국필립모리스의 '우수 연구자 후원 제안' 사례.

조 교수는 이번 발표에서 담배회사가 담배라는 유행병의 매개체라는 점에 대한 학문적 근거와 함께 한국필립모리스가 최근 '우수 연구자 후원'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조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필립모리스는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연구개발 실적이 뛰어난 과학자를 발굴해 포상하고, 연구개발에 대한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우수 연구자 후원 제안서를 대학 측에 전달했다.

우수 연구자에 후원 장학금 수여시 한국필립모리스 명칭을 사용하기를 희망하고, 후원금액은 4년간 총 1억원을 시작으로 추후 논의를 통해 지속적인 장학금 후원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이 회사는 "담배의 유해성 논란은 끊이지 않는 사회적 이슈이고, 담배에는 궐련뿐만 아니라 전자담배, 파이프 담배, 엽궐련, 각련 등 다양한 담배가 존해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궐련만 유해성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여러 종류의 제품군의 담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제품에 대한 독성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흡연자의 알궐리가 침해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은 마치 흡연의 위해성 쟁점에 있어서 대응 타깃을 분산시킴으로써 논란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의도로 비춰질 수 있다.

이 회사는 특히 우수 연구자를 후원하고자 하는 배경이 흡연자들에게 '덜 해로운 담배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도 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연구를 통해 객관적인 연구데이터를 제공하고 흡연자에게 덜 해로운 담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며, 궁극적으로 금연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라며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은 흡연자가 심각한 질환에 걸릴 확률이 비흡엽자보다 훨씬 높으며, 흡연은 중독성이 있으며 끊기가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는 전 세계 주요 의학 및 과학기구들의 공통된 견해에 동의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펼쳤다.

회사는 "금연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 방법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제공돼야하며, 필립모리스는 금연에 초점을 맞춘 공중보건당국의 종합적 담배 정책에 동의한다"며 "금연을 장려하고 담배 의존성을 적절히 치료할 효율적 조치를 시행토록 권고한 담배 규제 기본협약 규정을 수행하기 위한 방안으로 장학금 후원을 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담배를 제조·판매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흡연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초래한 당사자로 지목된 담배회사가 마치 공익적 차원에서 금연을 권장하기 위한 연구를 후원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상황을 왜곡하는 주장을 펼치는 셈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한국필립모리스가 이런 내용으로 후원을 제안한 뒤 전체 교수회의에서 이 안건을 논의하고, 부적절한 제안으로 판단해 거절키로 결정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지난 2007년부터 해마다 '흡연 에티켓 아이디어 광고 공모전'을 후원하고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성일 교수는 후원과 지원금, 마케팅 호보, 로비와 정치 헌금 등을 ‘담배전염병(Tobacco epidemic)’의 매개체인 담배회사의 주요한 활동 전략이라고 지목했다.

조성일 교수는 이 같은 사례를 공개하면서 담배회사의 끈질기고 치밀한 전략에 대응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서 담배소송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지난 2015년에 출범한‘대한예방의학회․한국역학회 담배와 폐암 소송 관련 특별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을 소개하면서 담배소송의 승리를 위해 보건의료전문가 개개인과 전문가 단체가 담당해야 할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조 교수는 담배회사들이 최근 들어 잇따르는 흡연의 건강피해 소송에 대응해 ▲역학에 대한 공격 자제 ▲다요인 질병의 성격에 초점을 두고 개인적 인과성을 불충분함 주장 ▲흡연 노출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공격과 자료 요구 ▲병리학자를 증인으로 이용해 미시적이고 근시안적 프레임을 조도함으로써 임상적, 보건학적 관점에 대항하는 식으로 대응 전략을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담배소송 승리를 위해서는 보건의료 NGO가 다매의 위험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공하고, 사회적 규범과 가치, 정책을 통해 안전한 사회 만들기 환경을 조성하며 담배회사의 활동을 감시하고 공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의 담배소송이 일본 법조계·의료계 고무시켜 새로운 담배소송 준비하는 계기 제공"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서 캐나다 퀘벡 주 담배소송을 이끈 앙드레 레스페랑 변호사는‘거대 담배회사와의 대결 : 그 내부에서 바라본 시각’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2015년 6월 담배회사를 상대로 156억 달러(한화 13조8천억 원)의 배상명령이 내려진 캐나다 퀘벡 주 담배소송의 의미와 승소 요인을 발표했다.

레스페랑 변호사는 "이 사건은 흡연 피해자는 물론 사회 전체의 공공 보건에 위대한 승리를 가져다 준 역사적인 판결"이라며 "담배회사들이 대중들에게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에 대한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의적인 거짓말과 불충분한 공개 진술을 해왔고, 그러한 담배회사들의 잘못이 수십 년간 담배회사들 간 공모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담배규제협회인 금연가회의 회장 카타야마 리쓰 변호사는 ‘일본의 담배 소송-승리를 향한 길’이란 제목의 발표를 통해 현재 준비 중인 담배소송의 전망을 제시했다.

카타야마 변호사는 "일본의 경우 아직까지 흡연 피해자가 제기한 담배소송에서는 승소한 사례가 없지만, 간접흡연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간접흡연과 다양한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한 담배회사의 주장이 정직하지 않았고, 진정성이 없었다’라고 판시한 점, 2005년에 제기한 요코하마 소송에서는 흡연과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와 강력한 중독성을 인정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한국에서 건강보험 보험자인 건보공단을 중심으로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일본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소개했다.

앞서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4월 14일 KT&G, 필립모리스코리아, BAT코리아 등 국내외 담배회사 3곳을 상대로 537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537억원이란 손해배상금은 2001년부터 2010년 사이에 폐암(소세포암·편평상피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에 걸린 환자 3,484명(흡연 이력이 확인된 사례)의 진료비 중 건보공단이 의료기관에 지급한 급여비를 계산한 것이다.  

카타야마 변호사는 "한국에서 건강보험공단이 보험자의 자격으로 제기한 담배소송이 일본 법조계와 의료계를 고무시켜 일본에서도 보험자가 주체가 되는 새로운 담배소송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소송자료와 전략을 공유하는 등 향후 지속적 협력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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