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질병에 대한 배제와 편견 깨는 장난감

▲이미지 출처: 토이 라이크 미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toylikeme/).

[라포르시안]  #. 몇년 전 브라질 상파울로에 위치한 한 암센터에서 슈퍼맨과 베트맨 등의 히어로 캐릭터가 그려진 항암정맥주사 링거케이스를 입원병동에 도입해 화제가 됐다. 암센터에서 히아로 캐릭터가 그려진 링거케이스를 도입한 건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소아암 환아들을 위해서였다. 슈퍼히어로 캐릭터가 그려진 링거케이스를 통해 항암제를 투여받은 어린이 암환자들의 투병 의지는 분명 높아졌을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청각장애를 앓는 아들이 착용하는 보청기를 '슈퍼히어로'로 꾸며 준 엄마의 사연도 화제가 됐다. 청각장애로 인공와우(人工蝸牛·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받은 아이가 청력보조기를 끼면서 놀림을 받을까 걱정된 영국의 한 엄마가 슈퍼히어로 캐릭터로 보청기를 꾸민 것이다. 슈퍼히어로 캐릭터로 꾸며진 보청기는 오히려 다른 아이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의료기기에 어떤 디자인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사용 편의성과 투병 의지를 높이는 것은 물론 환자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배타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에 신체적 장애와 질병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디자인과 캐릭터 제품을 선보이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눈길을 끈다.

레고에서 얼마 전 새로 출시한 '레고 시티' 시리즈에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 피규어<사진>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레고의 이런 변화는 영국의 장애아동 부모들이 지난해 5월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토이 라이크 미'(#toylikeme)라는 캠페인을 통해 다양한 신체의 모습을 담은 장난감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나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캠페인은 장애나 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그들과 똑같은 모습은 인형이나 장난감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아이들이 이런 장난감을 통해 장애인이나 선천성 질환을 가진 환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놀이를 통해 이들과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토이 라이크 미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동참해 보청기를 한 인형, 호흡 튜브를 착용한 인형, 걸음보조기를 한 인형, 한쪽 팔이 없는 아이 인형, 시각장애인 안내견 인형, 인슐린펌프를 착용한 바비인형, 의족과 의수를 한 인형 등을 제작한 영상과 사진을 공유했다.

이러한 요구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곳은 영국의 장난감 회사 메이키즈(Makies)다. 이 회사는 안경을 착용하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인형, 귀에 보청기를 달고 있는 인형, 얼굴에 붉은 색의 선청선 모반이 있는 인형 등을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맞춤식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은 메이키즈의 반응에 힘입어 레고, 플레이모빌, 마텔 등 대형 완구제작 업체들을 향해 토이 라이크 미 캠페인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토이 라이크 미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toylikeme/)에는 장애나 질병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을 한 다양한 인형과 장난감 사진 및 영상이 올려졌다.

이런 노력 덕분에 레고로부터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 피규어를 만들게끔 하는 성과를 냈다.

토이 라이크 미 캠페인을 주도한 인물 중 한명인 레베카 애킨슨은 작년 12월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전 세계에 걸쳐 1억5천만 명의 장애아동이 장난감 산업 부문에서 배제되고 있다. 전 세계 장난감 산업이 29억 파운드 규모에 달하지만 어디에서도 휠체어를 탄 바비 인형을 발견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애킨슨은 "장애아동의 경우 레고 같은 장난감 브랜드에 의해 긍정적인 이미지로 투영될 수 있다. 특히 레고와 같은 장난감 브래드를 보고 비장애인 아동이 실제 생활에서 장애아동을 만났을 때 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toylikeme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 트위터에 공유한 인슐린펌프를 착용한 소아 당뇨병 환아와 바비인형의 모습.

그 이름을 불러줄 때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환자’가 되었다아이들이 신체적 장애를 가진 모습의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이를 하다보면 실제 생활에서 장애인을 만나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우리나라에서 일부 질병의 명칭을 바꾼 것도 비슷한 취지이다.,    오랜 세월 불렸던 '나병(문둥병)', '간질', '정신분열병' 등의 질환명은 이름 그 자체만으로 해당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 대해서 편견을 갖게 하고,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질병명으로 인한 낙인효과는 거칠고 억세다. 나병이나 간질, 정신분열병 환자에게 새겨진 낙인은 이들을 부정적 관점의 대상, 혹은 잠재적 폭력 및 범죄의 대상으로 왜곡시키기도 한다.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완 교수가 정신분열병을 다룬 844건의 신문기사를 분석한 결과, 부정적 관점의 기사가 67.4%(569건), 폭력 및 범죄를 다룬 기사가 32.9%(278건)에 달했다.

이런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 질병명칭 변경이 이뤄졌다. 나병은 '한센병'으로, 간질은 '뇌전증'(腦電症), 정신분열병은 '조현병'(調絃病)은 각각 개칭했다.

해당 질환의 발견자나 의학적 특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바꿔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없애려 한 것이다.

이름을 바꾼다고 당장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차별과 배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낙인효과가 사라지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은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 피규어와 보청기를 착용한 인형을 가지고 놀다보면 실제 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리란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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