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의료 필수 인프라 바이오뱅크·유전체 해독 등 미흡…성급한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

[라포르시안]  #. 지난 2013년 국내 개봉한 '엘리시움'이란 제목의 SF영화가 있다. 서기 2154년의 미래를 다룬 이 영화 속에는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거주하는 ‘우주정거장’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집집마다 기적의 만능치료기기가 있다. 이 치료기기는 신체를 스캐닝하면서 곧바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까지 가능하다. 부러진 뼈나 손상된 장기도 곧바로 재생하고, 백혈병 같은 중증질환 치료도 문제없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0일 '정밀의료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엘리시움의 만능치료기기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처럼 전망했다.

아직까지 생소한 정밀의료 기술개발은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의 한 분야로 추진된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을 선정했는데, 여기에 정밀의료가 포함됐다. 

이미지 출처: 보건복지부의 정밀의료 기술개발 관련 보도자료 중에서.

박근혜 정부 들어서 비슷한 내용의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전략이 해마다 발표되고 있다. 

앞서 2014년 6월에는 스마트 자동차와 맞춤형 웰니스케어 등을 포함한 '13대 미래성장동력' 육성 전략을, 2015년 3월에는 지능형 로봇과 맞품형 웰니스케어, 빅데이터 등을 포함한 '19대 미래성장동력' 육성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기존에 마련한 미래 먹거리 전략이 어디까지 추진됐고,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알려진 바 없는데 또다시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수립한 것이다. 어쨌든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에 포함된 정밀의료는 인간의 유전체 정보를 비롯해 진료·임상정보, 생활습관정보 등을 통합 분석해 개별 환자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밀의료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향후 10년 내에 개별 환자별 맞춤치료와 함께 미래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예측해 이에 맞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게 된다. 당연히 건강수명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고, 폐암과 위암, 대장암 등의 장기생존율도 훨씬 더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정말로 복지부가 제시한 수준의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가 오는 2025년 정도면 실현될 수 있을까.

2015년 2월 정밀의료계획(PMI, Precision Medicine Initiative)을 발표하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 이미지 출처: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정밀의료계획' 아직까지 의료계에서조차 생소한 정밀의료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지난해 2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정밀의료계획(PMI, Precision Medicine Initiative)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정밀의료계획을 위해 2016년 기준으로 2.2억 달러(약 2,600억원)를 투자해 ▲국립보건원(NIH) 주도의 정밀의료 코호트 구축 ▲국립암연구소(NCI) 주도의 암유전체 발굴 및 확대 연구 ▲식품의약국(FDA) 주도의 오픈소스 정밀의료 플랫폼 구축 ▲ 국가건강정보기술조정국(ONC) 주도의 상호운영성(Interoperability) 표준 개발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런 계획에 따라 미국은 작년 5월 NIH 주도로 정밀의료 임상연구 및 프로그램 추진방향 등을 설계하기 위한 ‘정밀의료계획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가동 중이며, 정밀의료 추진을 위해 개인정보 보호 기반의 오픈소스 플랫폼인 ‘Precision FDA’FDA 주도로 개발 중이다.

미국이 정밀의료계획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인간 게놈 해독 기술의 발전, 생의학(Biomedical) 관련 데이터 분석 기술의 발전, 대량의 데이터 사용 기술 발전 등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영국·독일·프랑스·중국·일본 등의 국가와 13년 간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를 추진, 2003년 4월 프로젝트를 완료한 바 있다. 미국은 이후 10년 넘게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상당히 발전된 수준의 유전체 분석 기술을 확보했다. 

한국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했고, 다만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동안 한미 양국이 정밀의료 기반의 맞춤의학 연구에 상호 협력키로 하면서 정밀의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사실 국내에서도 지난 2008년 시작된 '한국인체자원은행사업'(Korea Biobank Project, 이하 KBP)을 통해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과 전국 17개 대학병원 소재의 민간 바이오뱅크로 구성된 한국인체 자원은행네트워크(Korean Biobank Network, KBN)를 구축하고 한국인 50만명의 인체자원을 수집했다. 

이렇게 구축된 한국인체 자원은행네트워크를 통해 보건의료 분야 연구개발에서 성과를 냈다.

지난해 국립보건연구원 유전체센터 생물자원은행과가 작성한 '한국인체자원은행사업의 보건의료연구 지원 성과'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KBN 자원을 이용한 연구과제로부터 총 426편의 논문이 생산됐다.

문제는 인체자원을 활용한 성과가 대부분 연구논문에 국한되고 산업화를 위한 특허 성과는 상당히 미비하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지금까지의 자원 활용성과는 대부분 논문에 국한되고 산업화의 근간인 특허 성과는 18개에 불과해 질적인 면을 배제하고서라도 개인맞춤형 치료, 질병 조기진단 및 예방의료 구현, 신약개발에서의 전임상 연구 임상예측력 강화와 연계된 바이오뱅크의 경제적 효과를 도출하기에는 양적인 측면에서조차 많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인체자원을 활용돼 도출된 논문의 성과 역시 당초 기대했던 개인별 맞춤형 예방.치료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은 내용이 많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도출된 논문을 'HT 표준 기술분류체계'를 근간으로 연구목적에 따라 분류했을 때 80% 이상이 '기반연구와 병인규명'에 속했고, '질병예방 및 건강증진', '진단법 개발'이 그 나머지를 차지했다. '백신 및 예방약제, 치료법 개발', '임상 모니터링 연구' 분야 성과는 전혀 없었다.

정부는 올해부터 5년 동안 추진되는 제3기 한국인체자원은행계획을 통해 '질환 중심형 바이오뱅크'를 구축하고, 인체 자원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인체자원정보관리시스템'의 기능을 개선할 예정이다.

정밀의료의 핵심 요소인 인체자원은행(바이오뱅크) 구축과 유전체 분석 연구가 미비한 상태에서 복지부는 향후 10년내 정밀의료를 위한 상용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밀의료 특별법'을 제정해 종합적인 지원체계 마련, 차세대 염기서열분석 기반의 유전자 검사법에 올 연말부터 건강보험 적용, 유전체 의학·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등 정밀의료 전문가 양성을 위한 특성화대학원 설립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2016년 3월 8일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 주재로 열린‘정밀의료 연구개발 추진위원회’의 제1차 회의 모습. 이미지 출처: 보건복지부

'우물에서 숭늉 찾기' 같은 정밀의료 기술개발 목표정밀의료 기술개발 추진의 순서가 뒤죽박죽인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정밀의료의 핵심 인프라인 인체자원은행 구축과 제도적인 지원체계 마련, 관련 전문가 양성이 먼저 이뤄진 뒤에 정밀의료 기술개발을 통한 '개인 맞춤의료 실현'이란 비전을 제시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그런데 이제 막 정밀의료를 위한 인프라 구축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10년 내 개인 맞춤의료 실현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복지부는 정밀의료 기술개발을 통해 오는 2025년 기준으로 ▲건강수명 3년 연장(73세 → 76세) 및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의료비 증가율 감소 ▲전이암(폐암, 위암, 대장암) 5년 생존율 6% 증가 ▲147조원 세계 정밀의료 시장의 7%를 점유 ▲10.3조원 부가가치 창출 및 약 12만명의 고용 유발 등의 목표를 제시했다.

반면 미국은 정밀의료계획을 통해 단기과제로 ▲개인 맞춤형 항암치료제 개발을, 장기과제로 ▲100만 명 이상의 국가 연구 코호트 구축과 정밀의료 실현 가속화를 위한 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인력 양성 등을 목표로 정했다.

미국의 정밀의료계획 목표에 비하면 한국의 정밀의료 기술개발 목표는 상당히 큰 그림이다.

게다가 정밀의료 기술개발을 주도할 컨트롤타워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 3월 복지부에서 정부, 공공기관, 민간 전문가 17명이 참여하는 ‘정밀의료 연구개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연구개발 과제선정을 시작했다. 반면 미국은 NIH를 중심으로 정밀의료계획이 말 그대로 정밀하게 추진되고 있다. 특히 NIH는 1만8,150명에 달하는 인력에 연간 예산만 32조1,070억원에 이른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밀의료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컨트롤타워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고, 그나마 국가 바이오뱅크 사업을 주도하는 국립보건연구원은 인력 549명(정규직 159명)에 연간 예산이 1,274억원에 불과한 조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밀의료를 통해 개인 맞춤의료를 실현하고, 미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복지부의 추진계획은 정밀하지 못하고 너무 엉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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