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이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 / 미나시타 기류 지음 / 이서연 옮김 / 한빛비즈 펴냄, 2016년

[라포르시안] 요즈음에는 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가 봅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찾아 관심이 밖으로 향하던 젊을 때와는 분명 달라진 점입니다. 아직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집밖에 있지만, 저녁이나 주말에는 집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새 몸에 익은 책읽기와 글쓰기 습관도 한 몫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아내가 출타하고 제가 집을 지키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럴 때 아내는 꽤나 미안해합니다. 젊었을 적에도 아내가 저녁시간에 출타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때는 저도 밖에서 일을 보고 있어서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미안해하는 아내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은퇴를 하게 되면 이런 상황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속칭 ‘젖은 낙엽족’으로 몰릴 생각은 없는데다가 나름대로 시간을 즐길 요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 역시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면 굳이 다른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둘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만, 사회학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오늘 [북소리]에서 소개하는 미나시타 기류의 <갈 곳이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는 앞서 말씀드린 상황을 사회학의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물론 일본사회의 경우이기는 합니다만, 일본사회의 변화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볼만 합니다. 저자 미나시타 기류는 와세다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사회학자이자 시인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직장을 은퇴한 남편과 그의 아내라는 특정한 연령대의 일본인들에서 나타나는 사회현상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여성인 저자가 남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굳이 말씀드리는 것은 남편과 아내, 혹은 남성과 여성을 차별화하려다 보니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성이나 여성이나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거리는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가정을 지키는 아내를 논의 대상으로 하고, 은퇴 이후의 시점에 아내와 남편 사이에 생각의 괴리가 일어나는 원인이 ‘샐러리맨 가정에 일어나는 시공간의 뒤틀림’에 있다고 저자는 보았습니다. 시간의 뒤틀림은 남녀 간의 하루 이동거리의 차이에서, 공간의 뒤틀림은 남편은 직장을 그리고 아내는 동네를 주활동 무대로 하고 있기에 발생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갈 곳이 없는 남자’라는 제목의 1부는 남성의 상황을, ‘시간이 없는 여자’라는 제목의 2부는 여성의 상황을 설명하고 ‘남녀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라를 제목의 3부에서는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합니다. 제1장은 1부에 속해있습니다만,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한 총설에 가까운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총론으로 떼어냈더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금의 상황은 남녀의 시공간 분리가 초래한 비극이라고 저자는 정의합니다. 우리도 흔히 쓰는 ‘남편은 돈 잘 벌고 입에 안 들어올수록 좋다’라는 우스개도 일본에서 건너온 것 같습니다. 일본의 아내들은 젊어서 그런 남편을 좋아하다가 은퇴한 다음에는 ‘젖은 낙엽’이라고 부르거나 심지어는 ‘대형 쓰레기’ 혹은 ‘산업 폐기물’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 빨리 사라져주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일본사회 특유의 지나친 호들갑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신조어는 평범한 대중과 가정주부들이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회학자들이 이런 풍조에 장단을 맞추면서 사회현상으로 확산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런 부류의 여성들도 있는 반면 여전히 남편 혹은 아내가 아플 때 극진히 돌보다가 세상을 떠나면 오래지 않아 뒤따라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자들은 이와 같은 전통적인 모습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악몽을 꾸고 식은땀을 흘리는 남편에서 탈취제를 뿌리거나, 심지어는 남편을 보고 냄새가 난다고 핀잔을 주는 아내를 담은 광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광고에 대하여 비판이 제기된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여자는 요리하고 남자는 먹기만 하는 장면을 담은 광고는 여성단체의 강력한 항의로 결국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참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존중받고 싶으면 상대를 먼저 존중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일본 사회에서는 고독사가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고독사란 병사 혹은 변사의 한 종류로 사망 시 홀로 거주하고 있던 임차인이 누구에게도 간호를 받지 않고 임대주택 내에서 사망한 사고를 말하고 자살 혹은 타살을 제외한다.”라고 일본의 도시재생기구에서 정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굳이 임대주택으로 제한을 둔 점이나 자살을 제외한 것은 적절해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쿄도 23구에서 2013년에 발생한 의문사 가운데 독신가구였던 사례를 비교해보면 남녀의 비율이 2:1이 넘었고, 특히 60대 이상의 남자가 전체의 40%를 넘었다고 합니다. 이는 남성들의 사회적 고리가 약한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저자는 해석합니다. 일본 남성들은 오랫동안 직장제일주의에 지배받아왔기 때문에 일터에서 물러나면 단숨에 사회적 유대를 잃고 고립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관계의 부재는 남성을 결국 갈 곳이 없는 존재로 전락시킵니다. 문제는 사회에서도 갈 곳 없는 남자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저자는 일본 사회가 남성의 ‘노동’에는 적극적이면서 남성의 ‘행복’에는 소극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미 심각해진 초고령사회에서 고립된 고령자가 증가하는 것은 지역사회 전체를 불행하게 만들 위험이 크므로 적극적 대책마련이 시급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다양한 지역사회의 단체가 만들어져 은퇴 전부터 그 단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할 것이라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근래 들어 우리 사회도 일본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한국남성들은 직장 이외에도 다양한 모임문화가 발달해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겠습니다. 각급 학교의 동창모임은 물론 향우회나 직장에서의 모임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임을 만드는 전통이 꽤나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모임은 은퇴 뒤의 소일거리를 위한 자구책이 될 수 있을 것인데, 때로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남성은 갈 곳이 없다고 본 저자의 견해에는 공감을 합니다만, 여성은 시간이 없다는 견해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무엇이 있습니다. 여성인 저자의 팔이 안으로 굽는 탓인지, 아니면 남성인 저의 팔이 밖으로 굽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우선 저자는 여성, 아니 아내의 시간은 가족의 공유자산이라고 정의합니다. 반면 가사를 돕느라 쓴 남편의 시간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가족의 공유자산에서 제외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 가면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소개하는데, 저자 스스로가 내세운 전제를 흔드는 일입니다. 직장을 가지지 않은 주부로서의 아내를 직장에 묶여 있다가 은퇴 후에 풀려난 남편과 대비한다는 전제 말입니다.

육아를 포함하는 가사에 대한 아내의 부담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돈벌이를 책임지는 남편의 부담보다도 더하다고 하겠습니다. 출산을 담당할 수 없는 한계에 더하여 가족 부양의 책임을 지고 있는 남편이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정황과 맞물려 육아 역시 아내의 몫으로 길가름이 되어 왔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사회활동의 제약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감당하기가 버거워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도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이 시간이 없는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산업의 발전에 따라 남성이 해오던 역할이 상당부분 사라졌다고 보았습니다. 구두를 만들 가죽을 손질할 필요가 없어졌고, 수도가 공급되면서 물을 길어올 필요도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가사노동의 부담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기계가 옷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천을 짤 일은 없어졌지만 바느질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천을 사다가 옷을 짓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맞춤옷도 아니고 기성복이 대중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말입니다. 옛날에는 옷을 자주 빨아 입지 않았기 때문에 빨래의 양도 많지 않았지만, 면직물의 보급으로 빨랫감이 급증했다고 합니다만, 대용량으로 커가는 세탁기 이야기는 왜 쏙 빼놓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이미 조리된 것 사다가 끓이기만 하는 음식의 종류가 늘고 있는 것이나 시간이 많이 드는 장은 물론 김치까지도 사다 먹는 세상에 음식준비에 소요되는 시간 역시 많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어떻든 한가한 주부는 환상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는 남편이 저녁에 장을 봐주거나 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사 분담은 아니라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워킹맘은 너무 고되다’라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결국 “남편을 돌보고 부부 두 사람 분량의 가사를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가사시간의 총량을 단축하는 확실한 방법은 아이를 두지 않는 것(157쪽)”이라고 단정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남성과 여성의 시공간의 왜곡을 이야기할 때 내세웠던 ‘남편은 직장으로, 여성은 집에서 활동한다.’라는 전제를 접어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을 돌보는 시점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역할이 끝난 다음의 이야기이고 출산과 육아는 남편이 밖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시간과 공간의 왜곡은 저자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여자의 행복을 완벽하게 획득하기 위해서 결혼, 일, 아이의 황금 삼각형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평생을 가장 완벽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루지 못할 꿈을 뒤 쫓느라 숨차게 뛰다가 제 명을 다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없기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젊어서는 다양한 삶을 모색하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면 최선을 다하여 살아내는 삶이야말로 축복받은 삶이라 할 것입니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따고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던 여자 선배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귀국하더니 대학을 그만 두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자녀들이 필요할 때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린 결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심을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하니 이런 선배님의 결정이 잘 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어느 순간에도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회’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일을 포기할 수도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설명하려고 하는 일본 남성의 관계 빈곤과 일본 여성의 시간빈곤은 상당부분은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않는 것은 논리를 전개함에 있어 설정된 기본틀에서 일부 벗어난 점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남편과 아내,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서로의 영역을 인정할 필요가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은퇴 후의 삶을 다시 설계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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