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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가 아니라 전쟁터가 된 병원, ‘백의의 전사’ 될 수밖에 없다만성적 의료인력 부족에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환자안전 위협…‘보건의료인력특별법’ 제정돼야

[라포르시안] 더는 병원이 일터가 아니라 전쟁터나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백의의 천사'는 전쟁터와 같은 병원에서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백의의 전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의료서비스 분야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하지만 병원은 노동학대 산업과 다를 바 없다. 특히 간호사 인력난은 만성화된 상태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지친 간호사들이 병원을 그만두거나, 더 나은 환경을 갖춘 병원으로 이직하는 일은 일상다반사가 됐다. 경험이 많은 간호사 대신 신규 간호사 인력이 그 자리를 메웠다가 얼마 못 버티고 빠져나간다. 간호업무 수행의 연속성과 숙련성, 책임감은 떨어지고 의료 질의 하락을 초래한다.

부족한 인력으로 빡빡한 간호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만성화 하다 보니 간호사 직종 내부에서 태움(재가 될 때까지 태우고 괴롭힌다는 의미), 폭언, 폭행, 성추행은 물론 임신도 순번을 정해야 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근무환경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 최근 방송된 SBS 스페셜 <간호사의 고백 - 나는 어떻게 나쁜 간호사가 되었나> 중에서 간호사 태움을 촬영한 장면.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지난 3~4월 두 달간 전국 100개 병원에 근무하는 2만950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부서내 인력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82.6%에 달했다. 인력부족으로 건강이 악화됐다는 응답은 69.8%나 됐고, 사고나 질병에 노출됐다는 응답도 70.8%였다.

병원의 인력 부족은 환자 안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인력부족으로 환자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76.6%였고,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응답도 82.8%나 됐다.

응답자의 79.8%는 병원에서의 인력부족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답했고, 심지어 의료사고 발생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는 응답도 33.6%에 이르렀다.

병원의 간호인력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환자는 어떤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까. 사실 환자도 그렇지만 병원도 잘 모른다. 이때까지 적정인력을 갖추고 운영해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의료기관의 인력확보는 개별 병원의 책임이었다. 병원의 적정인력 확보는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임이도 이 때까지 국가가 거의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병상이나 환자 수당 의료인력 비율을 따져 건강보험제도 상의 수가보상 체계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병원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심지어 일부 병원은 이런 수가보상 체계를 악용해 인원 수를 속여서 신고하는 등의 편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건강보험제도 측면에서 병원들이 적정 인력을 고용하기 힘든 이유가 있다. 건강보험 의료수가가 주로 병원의 시설과 의료장비 사용에 편중돼 있다보니 의료인력을 많이 고용하더라도 의료수가 보상이 거의 없다보니 병원 입장에서 적정인력 확보에 나설 동기가 없었다.

▲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8월 4일 정의당 윤소하 의원과 함께 국회 정론관에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발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이젠 국가가 병원 적정인력 확충 책임져라!

적정인력 확충의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 병원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국가가 적정인력 확보를 책임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 19대 국회 때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이 발의된 바 있다. 특별법은 의료기관이 적정 의료인력을 고용해 유지할 수 있도록 인력기준을 수립하고 적정한 인력 배치와 고용확대를 위한 지원 등의 정책을 국가가 책임지고 추진하라는 게 핵심이다.

아쉽게도 이 특별법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다행히 20대 국회에 특별법이 다시 제출됐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전국보건의료노조와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공동으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을 발의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번에 마련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은 ▲보건의료기관과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정의를 확대 해석해 법 적용의 사각지대 해소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대한 국가적 책무 명시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보건의료인력 지원 종합계획 수립 ▲의료기관 등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실태조사 ▲근로시간 단축 지원 ▲보건의료 인력 장기재직 지원 ▲보건의료기관 취업지원 및 고용창출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에는 '국가는 보건의료기관에 대한 보건의료인력 지원을 위해 필요한 시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국가는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보건의료인력의 장기재직을 유도 지원하고, 보건의료인력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중소병원과 지역거점병원의 경우 지원을 우대하는 규정도 들어 있다.

국가가 주도해 종합적인 의료인력 정책을 수립하고, 안정적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책임을 지라는 게 특별법의 핵심이다.

윤소하 의원과 보건의료노조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사회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질병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 메르스 사태 이후 보호자없는 병원등 보건의료서비스의 확대에 대한 요구도 높다"며 "그러나 의료인력의 확충 없이는 과중한 간병비 부담을 없앨 수 있는 보호자없는 병원등 주요 사업자체가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사장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보건의료기관의 양극화와 지역별 편중으로 인해 지금도 의료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방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며 "지금도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양극화로 인해 지방의 환자들은 필요한 양질의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제는 국가가 나서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료인력의 원활한 양성과 공급, 근로환경개선 및 복지향상 등을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은 "병원은 일터가 아니라 전쟁터이며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은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백의의 전사’가 됐다"며 "열악한 근무환경,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을 하거나 입사하면서 사직을 꿈꾸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외국에서는 법적으로 환자와 간호사 인력 비율이 정해져 있으나 우리나라는 관련 법이 없을 뿐 아니라 OECD 절반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한 실정"이라며 "간호사뿐만 아니라 지하에서 옥상까지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은 환자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다. 병원인력문제는 국가가 법과 제도로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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