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준비금 적립비율 50% 기준 앞세워…“적립금 규모 필요 이상으로 과다” 법개정 추진

[라포르시안] 건강보험 재정은 2011년부터 5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면서 2015년 말 기준으로 누적 적립금이 16조9,800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나 의료계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적정수가 체계 확립 등에 누적적립금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반면 건보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 관련 규정상 당해연도 총지출의 50%까지 법정준비금을 적립하도록 규정돼 있다는 점을 들면서 적립금을 더 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적립금을 부동산 투자나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투자하는 대체투자를 활성화 하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재정의 법정준비금 적립비율을 과연 지금처럼 유지하는 게 옳은 것일까.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준비금)에 따르면 건강보험공단은 회계연도마다 결산상의 잉여금 중에서 그 연도의 보험급여에 든 비용의 100분의 5 이상에 상당하는 금액을 그 연도에 든 비용의 100분의 50에 이를 때까지 준비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건강보험 적립금은 2010년까지 흑자와 적자를 반복하다가 2011년 이후 당기수지 흑자가 지속되면서 2015년 말 기준으로 16조9,800억원이 적립됐다. 이는 연간 보험급여 지출 대비 35.2%에 달하는 비율이다.

현재 연간 보험급여 지출액의 50%에 이를 때까지 준립금으로 적립해야 한다는 규정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단기보험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의 특성을 고려할 때 건강보험 적립금의 적립기준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의 연간 지출규모가 50조원에 달할만큼 확대된 상황에서 지금처럼 50% 기준을 유지할 경우 적립금의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과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특히 한국의 건강보험은 질병으로 인한 소득상실을 보전해 주는 상병수당 등의 현금급여는 없고 의료서비스만을 보장하는 현물급여 중심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재정 흑자를 보장성 확대에 사용하지 않고 계속 적립하는 것은 제도운영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등의 시민사회단체는 "건강보험에서 현금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거의 없는 구조에서 보장성을 확대하지 않고 돈을 계속 적립한 이유가 국고지원 축소 시도에 있는 것"이라고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강보험 법정준비금 기준을 합리화 하는 방안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다뤄진다.

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오는 5일 열리는 건정심 전체회의에 '건강보험 준비금 기준 합리화' 안건이 상정된다. 복지부는 건보법 제38조3항에 따라 준비금의 관리 및 운영 고시를 8월 중 제정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법정준비금의 적정 규모 등을 논의하고, 준비금 관리·운용의 세부사항을 별도로 규정할 방침이다.

일본과 대만처럼 법정준비금을 총 보험급여 지출의 일정 비율이 아니라 몇 개월치의 평균 급여비를 적립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이 유력하다.

앞서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15년에 마련한 '건강보험 법정준비금 개선방안'에 따르면 대만의 경우 전민건강보험법 제67조에 보험급여비의 1~3개월분을 안전준비금으로 적립하도록 명시해 놓았다.

일본은 건강보험법 시행령에 협회관장보험(중소기업)은 1개월, 조합관장보험(대기업)은 3개월분 급여비를 준비금으로 명시했다.

이를 근거로 공단 연구원은 "보험재정의 위험요소를 고려하며 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현행 50% 적립규정을 평균급여비 2.7~3.8개월분 수준 적립으로 개정해 적정 수준의 준비금을 보유하며 불필요한 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향후 건정심에서도 이러한 방향으로 건강보험 법정준비금 개선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3월 31일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등의 시민사회단체가 건강보험 적립금을 투자운용 등에 활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규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법정준비금 비율 15%로 낮춘 건보법 개정안 국회 제출한편 건강보험 법정준비금 비율을 현행 50%에서 15%로 낮추는 건보법 개정이 국회에서 추진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혜숙 위원(더불어민주당)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3일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건보법 제38조 제1항 중 '그 연도의 보험급여에 든 비용의 100분의 5 이상에 상당하는 금액을 그 연도에 든 비용의 100분의 50에 이를 때까지' 중에서 100분의 50을 '100분의 15'로 변경했다.

전혜숙 의원은 "과거에는 의료기관의 급여비 청구에서 건강보험공단의 지급까지 약 6개월이 걸렸으나 기술 발달과 행정개선으로 지급에 걸리는 기간이 약 1.5개월로 단축됐다"며 "따라서 불필요하게 과도한 적립금을 쌓아둘 이유가 사라졌다"고 개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특히 적립금 비율을 축소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을 보장성 확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전 의원은 "건강보험재정을 보장성 강화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쌓아둔다면 단년도 회계를 원칙으로 하는 건강보험재정의 특성에 배치된다"며 "조정된 비율에 따라 적립해야 할 준비금 2015년 기준으로 약 6조9751억원(46조5,009억원 × 15%)을 초과하는 10조 48억원을 보장성 강화에 사용함으로써 건강보험료가 건강보험 서비스로 환원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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