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노인’에 초점 맞춰진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성별 건강상태 차이.원인에 대한 기본 정보조차 부족”

[라포르시안] 영유아와 모성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해당 연령대의 건강증진을 위한 정책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특정질환 또는 특정계층에 혜택이 집중되면서 계층간 형평성 저해와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높다.

보장성 정책이 고령층, 남성의 보장률 강화에 더 집중되고, 상대적으로 청장년층 및 여성의 보장률이 떨어지는 보장 수준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작성한 '2014~2018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 자료를 보면 2011~2013년간 신규 보장성 금액 중 43.3%가 노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항목에 집중됐다.

게다가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면서 영유아와 모성건강에 대한 관심을 높아지는 반면 ‘소녀기 건강’ 문제는 건강보험 강화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다.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75세 이상의 보장률(63.1~63.8%)이 상대적으로 가장 높고, 청장년층에 해당하는 19~44세의 보장률(48.2%)은 가장 낮았다.

▲ 출처: 보건복지부의 '2014~2018년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

연령별 건강보험 보장률은 85세 이상이 63.8%로 가장 높고, 19~44세는 48.2%로 가장 낮았다. 성별로는 여성의 보장률이 54.2%로 남성(59.5%)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특히 여성의 외래진료에서 보장률(43.7%)이 더 낮은 수준을 보였다.

여성 중에서도 6~18세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47.6%, 19~44세의 보장률은 45.2% 수준이었다. 반면 65세 이상 여성의 보장률은 60.2%, 75~84세 62.4%, 85세 이상 64.6%의 보장률을 기록했다.

성과 연령을 모두 따졌을 때 보장률이 가장 높은 집단은 65~74세 남성으로 64.7%에 달한 반면 가장 낮은 집단인 19~44세 여성은 45.2%로 그 격차가 무려 19.5%p에 달했다. 6~18세 여성의 보장률도 65~74세 남성의 보장률과 비교해 17.1%p 더 낮았다.

여성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에서는 여성건강증진 기반을 확고히 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그런 부분의 정책적 노력이 크게 미흡하다는 걸 보여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한국여성건강 현황 및 정책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보건복지부는 여성과 남성 간의 건강상태 차이 및 그 원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며 "통계를 통한 성별 건강상태 및 건강상태의 원인에 대한 정보의 부재는 성별 건강에 대한 인식의 부족을 낳고, 이는 다시금 복지부의 예산 및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고려대상에서조차 제외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건강문제를 파악하고 건강형평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여성 건강지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성 건강지표 개발에 대한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

실제로 여성에 대한 건강통계 생성이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2003년에 처음 시도됐지만 이후 여성 건강지표나 통계가 지속으로 산출되지 못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남순 연구위원은 올해 발간된 <보건복지포럼> 5월호에 기고한 '한국의 여성 건강지표: 수치로 보는 여성건강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통해 "여성의 생애주기에서 아동과 청소년의 건강문제에 대한 지표를 포함하지 못하고 있으며, 재생산과 성건강 영역에서 유배우자 여성이 아닌 다른 여성에 대한 건강지표가 부족했다"며 "또한 여성건강에 중요한 문제이지만 성형, 성폭력, 배우자 폭력과 관련된 건강문제에 대한 지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여성이 의료이용에 대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지표가 개발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성인지적 여성 건강권에 대한 인식 부족" 

게다가 보건의료 전문가들조차 여성건강증진 문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여성건강증진에 대한 낮은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지난해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의사 출신인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다태아 출산과 관련해 한 발언이다.

당시 국감에서 정진엽 장관은 "쌍둥이 임신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알고 있느냐. 왜 이런 트렌드인가"를 묻는 의원의 질의에 "아마도 한 번에 아기를 다 낳고 빨리 다시 직장으로 가기 위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싶다. 건강에는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번지수가 한 참 틀린 답변을 해 논란을 샀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다태아 출생률이 높아지고 있는 데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산모의 평균 출산연령이 높아지면서 난임으로 인한 인공수정 및 체외수정 시술이 늘었기 때문이다.

난임부부의 경우 체외수정 시술시 임신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한 번에 여러 개의 배아를 이식하는데, 이럴 경우 다태아 임신 확률이 높아진다.

산모의 출산연령이 높아지는 이유는 사회.경제적 환경과 무관치 않다. 청년 취업난과 주택난, 장시간 노동환경 등이 맞물리면서 평균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결혼 후에도 직장과 주택마련 등의 비용 문제로 출산을 미루다보니 산모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한 번에 아기를 다 낳고 빨리 다시 직장으로 가기 위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라는 복지부 장관의 답변은 이런 사회·경제적 환경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남녀의 성별차이, 혹은  젠더(Gender, 사회학적 의미의 성)적 관점을 반영한 보건의료 정책 수립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여성정책연구원은 "공중보건정책의 측면에서 여성고령인구의 증가 및 성별 건강 불평등 등을 고려하면 10대 여성건강 항목은 여성의건강 이슈로서 재인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미래의 보건인력과 현재의 보건인력에 대해 젠더와 건강, 여성건강을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보건관련 학과에 젠더와 건강, 여성건강에 대한 교육이 거의 실행되고 있지 않은 현실은 여성건강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와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젠더와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의과대학, 보건대학원, 사회과학대학에서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 등 보건인력을 대상으로 생의학적 요인과 여성의 건강과의 관계뿐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여성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이런 문제인식을 갖고 여성건강, 특히 10대 소녀기의 건강증진을 위한 정책 발굴에 나섰다.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립중앙의료원, 연세대학교가 공동 협력해 '여성건강포럼'을 구성해 여성 생애주기별 주요 건강이슈를 발굴하고 여성건강 증진을 위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지난 22일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이 주최한 제3차 여성건강포럼에서 국립중앙의료원 안명옥 원장은 '소녀 건강과 여자의 일생'이란 주제의 발표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성인지적 여성 건강권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여성 특유의 질병이나 여성 유병율이 높은 질병 및 증상에 국한해 이해되어 왔고, 남성 기준으로 여성건강 수준을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며 "여성의 신체적, 사회경제적 특성을 고려하지 못해 개인별 특성에 맞는 여성 건강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안 원장은 "여성에 특화된 질병, 임신과 출산 등 모자보건 중심적인 접근 방식의 한계로 생애주기별 여성건강 및 예방적 접근의 연구 및 체계적인 정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성인지적 관점에서 사회경제적 특성을 고려한 여성의 생애주기별 건강증진 정책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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