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역사를 만들다 /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펴냄, 2016년

[라포르시안] 루이스 세풀베다의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를 읽으면서 젊었을 때 읽었던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떠올렸습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구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갈매기의 꿈은> 자유의 참의미를 깨닫기 위한 비행하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구도(求道) 과정을 그려 쫓기듯 사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의 주인공 ‘반항아’ 달팽이 역시 오랜 관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던 갈매기 조나단처럼 “달팽이는 왜 이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거예요?”라는 관습에 의문을 가지는 특별한 달팽이입니다. 달팽이 마을을 떠난 반항아 달팽이는 빠르게 움직였더라면 놓쳤을 인연을 만나고, 덕분에 달팽이 마을에 닥칠 위기를 미리 알게 됩니다.

모두 작가적 상상력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 동물의 언어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으니 그들의 세계에 이런 독특한 존재가 정말 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이 예나 지금이나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물론 제한적으로 진화된 행동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변화가 꾸준하게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떻든 현생인류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출현한 생명체 가운데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변화를 가져오는 원동력은 사고(思考)의 능력에 있는데, 효율적 사고에 크게 기여한 것은 경험하고 생각하여 축적된 정보들이 후대에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억에 의존하여 구술로 전하다가, 그림 혹은 기호로 전하다가, 문자를 발명하면서는 정보전달은 혁신적인 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로는 인쇄술을 개발하고 이제는 전자신호로 집적하는 방법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후대에 전달되는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에서 얻은 경험 혹은 감정을 살고 있는 장소의 주변에 그림으로 혹은 기호로 표현하던 그림이나 특별한 재료를 깍아 눈으로 본 사물을 표현한 조각 등 원시인류의 행위로부터 예술이 발전해왔습니다. 따라서 예술이야말로 그 시대 사람들의 감정을 담은 것이므로 역사의 산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미래지향적인 작품들로 인하여 역사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전원경 교수의 <예술, 역사를 만들다>는 독특한 시각으로 예술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단 제목을 두고 보면 예술이 만들어낸 역사를 논하는 듯합니다. 그런가하면 ‘예술이 보여주는 역사의 위대한 순간들’이라는 부제의 의미를 새겨보면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던 시기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작품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들어가며’에 적은 이 책의 기획의도는 이렇습니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음악이나 미술 작품도 읽고, 이해하고, 감상하고, 감동하는‘ 네 단계를 거쳐 우리의 기억 속에 깊숙하게 각인된다. 이 책은 이 네 단계 중에서 첫 세 단계, 즉 읽고, 이해하고, 감상하는 과정을 설명한다.(9쪽)” 그리하여 예술과 역사 사이의 연관성을, 그리고 그 연결고리에서 탄생한 불멸의 걸작들과 천재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예술사를 다루고자 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자는 역사적 배경에 미술과 음악 때로는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버무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63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이르고 있지만. 해당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제한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예술세계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유럽예술에 영향을 미친 고대 이집트 예술부터 시작해서 그리스와 로마, 초대 기독교, 비잔틴, 중세, 르네상스, 종교개혁, 바로크, 로코코를 지나 18세기의 유럽에 이를 뿐 아니라 근대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유럽예술의 변방에 이르기까지 담았고, 이어서 양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예술까지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예술 작품에 깃든 역사성을 깨닫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작품에 담긴 역사성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10쪽)’라고 저자가 적은 것처럼 근대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현대까지도 논의의 대상으로 한 것은 저자의 욕심이 아니었을까하고 나름대로는 생각해보았습니다. 최근에 읽은 <식인양의 탄생>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얻었습니다. 근세에 발흥하여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서양 중심의 역사관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비판해보겠다는 의도로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로마를 거쳐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초심이 잘 지켜지는 듯하더니 근대를 넘어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논점이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를 쓴 전원경 교수 역시 <식인양의 탄생>의 저자 임승휘 교수처럼, 그리스 예술부터 시작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대 이집트문명은 그리스문명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지만, 종교적 영향 등으로 인하여 유럽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벌 이후에 유럽 사회에서 주목하게 되었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있으나, 고대 이집트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에 더하여 근세에 유럽미술과 음악 가운데 이집트를 주제로 한 작품까지 포함한 것은 저자의 지나친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근세의 예술작품들을 이해하는데 이집트라는 장소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잘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시대를 넘나들면서 예술작품을 인용하는 기조는 이집트예술에 이어 그리스와 로마, 초대기독교시기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술사적 접근이 아니라 예술작품에 영향을 미친 시대적 배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해지는 대목입니다.

이미지 출처: <예술, 역사를 만들다> 중에서.

기독교에 대하여 제가 잘 알지 못한 탓에 초기 기독교에 관하여 의문이 많은 편입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구약성서를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음에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저자 역시 기독교미술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성경의 내용을 ‘고난을 뚫고 온 한 민족의 영웅 이야기’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언은 유대인들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요? 기독교는 유대인의 종교에서 세계인의 종교로 환골탈태한 셈이니 말입니다.

특히 임승휘 교수는 <식인양의 탄생>에서 로마제국 시절 기독교도들이 탄압을 받았다는 주장에 의문을 표하고 있기도 합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탄압할 이유란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로마황제에 대한 숭배예식을 거부한 기독교도들의 행태가 정부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일종의 정치적 징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전원경 교수 역시 성경에 담겨진 신의 죽음과 부활, 근친 살해, 대홍 수 등의 일화들은 예수 탄생 이전에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역의 고대 설화에도 등장한 것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담긴 일화들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 것은 기독교의 교리로 정립되어 신도들에게 고정관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을 뿐 아니라 2천년 이상 수많은 예술가들이 만든 미술작품,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기독교 예술은 문자를 깨치지 못한 대중을 위한 ‘종교교육’의 수단이었을 뿐이며,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의미는 아예 없었다는 것입니다.

중세 이슬람세력의 분화과정이 모호하게 정리된 것 같습니다. 무함마드에 의하여 창시된 이슬람을 중심으로 결집된 아랍민족들은 중동지방을 통일하고 영역을 확대하였는데, 무함마드 사후에 우마이야왕조가 들어섰고, 뒤이어 압바스왕조가 이를 전복시켰습니다. 712년 이베리아반도에 자리 잡은 이슬람세력은 압바스 왕조에 무너진 우마이야왕조의 잔존세력입니다. 이들은 도읍이던 다마스커스에서 겨우 도망쳐 톨레도에 도착한 다음 후 우마이야왕조를 세웠던 것입니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가 유럽의 예술을 유럽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로부터 시작하였고, 18세기 유럽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오스만제국을 다루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베리아의 이슬람문화도 다루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그리스문화를 유럽사회에 건네주는 역할뿐 아니라 기독교문명과 접촉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건축, 예술작품 등을 남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오스만제국이 발칸반도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이 물러난 것에 대한 복수의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만, 오스만제국은 압바스왕조에서 끌어들인 튀르크족이 세운 나라로서 우마이야왕조가 씨앗을 뿌리고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이 뒤를 이은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왕국과는 별다른 연관이 없을 듯합니다.

사실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사조는 공부할 기회가 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사조가 어떤 배경에서 일어나고 스러졌는지 가늠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이 책을 통하여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예술가의 혼이 꽃을 피웠던 르네상스 예술이 힘을 잃게 된 배경에는 종교개혁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톨릭과 신교의 충돌로 신구교 간의 전쟁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등 유럽사회는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고, 가톨릭은 신도의 이탈을 막기 위하여 검열과 종교재판을 강화하였다고 합니다. 그 영향으로 등장한 사조가 마니에리스모(매너리즘) 양식입니다. 중세풍의 신비주의가 부활하여 뒤틀린 육체와 환상의 묘사가 필수요소였던 것입니다. 르네상스시대를 꽃피웠던 미켈란젤로 역시 말년 작품에서는 이런 경향을 보였고, 틴토레토, 엘 그레코 등의 작품들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교측에서는 지나친 미술장식이 교회의 타락을 가져왔다는 시각이었기 때문에 르네상스시기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미술 간의 밀월이 끝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특히 신교가 강세를 보이던 독일과 프랑드르 화가들은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등의 영역을 개척하였습니다. 당시 부상하던 신흥 상인계층들이 이런 양식의 작품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이 바로크예술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어 등장한 절대왕정의 영향으로 로코코예술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계몽주의가 확산되면서 로코코예술도 같이 발전하였고, 이어서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시민예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중문학이 활성화되고, 귀족들만의 것이었던 음악을 시민계급들이 즐기게 된 것입니다.

예술은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야 만들어 낸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저자는 생각합니다. 뛰어난 예술작품들은 예외 없이 시대의 정신과 감수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술작품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을 잘 알아야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창조한 예술이라는 설명에는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예술이 변화시킨 역사 이야기’라는 부분은 조금 모호한 점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집트미술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시기에 미술, 음악, 문학, 건축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일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터이나, 그 시대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잘 정리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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