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의사회 “강압적 조사 통해 의사를 범법자로 내몰고 중압감으로 자살까지 이르러”

[라포르시안]  지난 2012년 9월, 전남 영암군에서 의원을 운영하던 개원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족에 따르면 이 개원의는 자살하기 3개월 전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로 꾸려진 현지조사단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병원을 찾아온 현지조사단은 이 의사를 상대로 부당청구 혐의가 있다며 사흘간 조사를 벌였고, 뚜렷한 부당청구 단서를 찾지 못하자 다시 조사기간을 연장해 일주일 넘게 현지조사를 벌여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마치 범죄자 대하듯 의사를 몰아붙이며 위압적인 태도를 보였고, 해당 의사는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게 당시 유족 측의 주장이었다.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복지부와 공단, 심평원이 의료기관을 상대로 한 현지조사 과정에서 관련 규정을 어기고, 무리하게 조사료 제출을 요구하며 의사를 상대로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된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최근 안산에서 비뇨기과의원을 운영하던 개원의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여기에도 강압적 현지조사가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산시의사회는 20일자 성명서를 통해 "최근 안산시 비뇨기과 원장의 사망사건을 접하고 그 원인이 복지부의 강압적 현지조사에 기인한 것임을 알고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주장했다.

안산시의사회와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이 된 A원장은 30개월 넘게 비급여를 급여로 잘못 청구했다는 이유로 지난 5월경 복지부로부터 현지조사를 받았다.

문제는 A원장이 급여기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비급여를 급여로 30개월 넘게 잘못 청구했지만 이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청구금액이 지급됐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A원장이 비급여를 급여로 부당청구하는 행위가 30개월 이상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심평원의 심사 과정에서 초기에 삭감 등의 조치가 취해졌더라면 일찍 시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안산시의사회와 유족 측의 주장이다.

안산시의사회는 "이번 비뇨기과 원장님의 사망 사건에서 비정상적인 청구가 자주 반복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심평원이 사전에 그런 청구부분에 대해 경고 내지는 주의 환기만 했어도 지속적으로 급여기준에 안 맞는 청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으로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A원장이 강압적인 조사를 받으면서 심리적 압박감과 함께 심한 모욕감을 느꼈고, 이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렸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사회는 크게 분노하고 있다. 

안산시의사회는 "허위, 부당청구 조사 목적으로 진료한지 수년 뒤 병원으로 불시에 현지조사라는 미명 하에 강압적인 조사를 행해 의사를 범법자로 만들고 중압감으로 자살까지 이르게 한 것에 대해 복지부, 심평원, 건강보험공단 등 이 사건에 관여돼 있는 책임자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원장이 현지조사를 받고 난 이후 받은 중압감은 상당히 컸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관련 안산시의사회 변형규 기획이사는 "유족 측에게 듣기로는 A원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당일에도 상당히 불안한 상태로 출근을 했다고 한다. 현지조사를 받고 난 후 가족들에게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고 들었다"며 "특히 현지조사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조사를 받은 후 사실확인서에 서명한 것에 대해서 계속 후회를 했다고 한다. 사실확인서에 서명한 것 때문에 추가조사를 받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당히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압적인 현지조사로 인해 A원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 확인될 경우 의료계의 거센 반발을 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심평원도 단순 청구오류나 지나치게 복잡하고 자주 바뀌는 급여기준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부당청구 등을 의료기관이 자발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심사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변 이사는 "사실 나도 너무 불안하다. 급여기준을 제대로 몰라서 이런 잘못을 하거나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며 "그렇다고 심평원 측에 모호한 급여기준에 대해서 문의를 해도 대부분 '알아서 하라'는 식의 답변 밖에 들을 수 없고, 나중에 잘못될 경우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지운다"고 주장했다.

안산시의사회는 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유족 측이 도움을 요청하면 공식적으로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변 이사는 "만일 유족 측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의사회 차원에서 법적 대응 등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복지부와 심평원 등의 강압적인 현지조사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지난 2012년 당시 선진통일당 소속이었던 문정림 전 의원은 심평원 국감사에서 전남 영암의 개원의사 자살 사건을 언급하며 "경미한 행정처분이 내려질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인이 된 피조사자가 심리적 부담감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면 지나치게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는 현지조사의 문제점을 되짚어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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