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국대의대 의료윤리학교실 정유석 교수

■ 지난달의 딜레마 사례 - 자궁암 수술하려면 낙태해야 하는 산모

결혼한지 1년만에 첫 아이를 임신한 영주씨가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산전진찰로 시행한 초음파에서 태아 옆에 자궁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어렵게 조직검사를 시행한 결과 자궁암 초기로 판명이 되었고, 즉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영주씨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이라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섬기는 교회의 장로인 최 원장은 평소 생명의 시작은 수정부터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낙태는 살인행위로 여기고 있다. 자궁암이 더 자라도록 기다릴 수도 없고, 소중한 태아의 생명을 어둠속으로 사라지게 할 수도 없고... 어쩌면 좋은가? 

■ 이렇게 생각합니다!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제 생각엔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서 산모를 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하나님 믿는 사람인지라 뱃속의 태아도 생명이라고 믿지만 산모의 생명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태아는 아직 별다른 사회적 책임이 없지만, 산모는 한 남편의 아내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아직은 앞날이 창창한 생명이기 때문에 더 귀중하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아이를 다시 낳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수술이 최선의 선택인 것 같네요...(서울 봉천동 진주 엄마)

아기가 조산하더라도 인큐베이터에서 살릴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수술을 연기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산모에게는 수술이 늦어져 위험하고 아기도 조산 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 방법만이 아기와 산모가 위험을 나누어지는 길일 것 같습니다. 낙태 천국인 우리나라에서 생명지킴이의 역할을 해야 할 종교인마저도 낙태를 쉽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생명은 모두 소중한 것이기에 수정의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한다고 믿는 저희로서는 아이의 생명이 산모의 생명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근거가 없는 것 아닐까요? 수술을 연장하면 산모의 생명도 더 위험해지겠지만 그래도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K 신학대학 대학원생)

■ 긴 고민, 간략한 조언

두 분의 견해 모두 일리가 있지요? 그렇다고 양쪽을 다 따를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고민입니다. 흔히 이러한 딜레마 앞에서는 이쪽 아니면 저쪽(여기서는 산모를 살리고 아기를 희생시키는 수술을 할 것인가 아니면, 아기를 살리기 위해 산모의 수술을 포기할 것인가의 결정)의 흑백논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다시 생각해보면 꼭 둘 중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회색지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회색도 흑에 가까운 회색이 있고, 백에 가까운 밝은 회색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들을 고려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수술을 하되 태아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최소부위만 절제하는 수술은 어떨까요?

혹은 신학대학원생이신 독자분 견해처럼 만일 임신 주수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면 단 몇 주만이라도 수술을 연기하여 아이를 조산시키면서 자궁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미숙아 진료에 대한 현대 의학의 발달은 불과 500g에 불과한 조산아도 살릴만큼의 놀라운 진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한 후에 각각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요. 과연 자궁을 부분절제하는 것이 현대 의학으로 가능한지? 현재 태아의 임신 주수가 정확히 몇 주째인지 등 기본적인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의료윤리에 있어서 최근의 경향은 환자 개인의 자율적 결정을 다른 어떤 원칙보다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 당사자인 산모의 결정도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입니다. 만일 산모가 당장 수술을 원하는 경우 의사는 개인적인 거리낌만 없다면 산모의 결정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산모의 결정이 의사 개인의 도덕, 윤리관에 어긋난다면 다른 의사를 추천해 줄 수 밖에 없겠지만요. 그런데, 정말 가톨릭이나 기독교인 의사는 이런 수술에 참여해서는 안되는 것일까요? 

중세의 유명한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원리로 ‘이중효과의 원칙’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떤 행위가 선과 악의 두 가지 효과를 일으키는 경우에 윤리적 갈등이 발생하는데, 이때 다음의 4가지 상태가 만족한다면 그 행위는 선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행위 그 자체가 도덕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선해야 한다.. 악한 효과는 선한 효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행위의 동기가 선한 효과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선한 효과는 그 중요성에 있어서 적어도 악한 효과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어야 한다.                 영주씨의 경우 수술 그 자체는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첫 번째 상태를 만족시킵니다.  만일 산모의 생명을 구하려면 태아를 죽이는 방법(수단)이 아니라 자궁의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방법에 의해야만 두 번째 상태가 만족됩니다. 수술의 동기는 태아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고 산모를 살리기 위함이므로 세 번째 상태도 만족합니다. 

마지막으로 산모의 생명이 태아의 생명보다 최소한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본다면 네 번째 조건도 만족이 됩니다. 따라서 최원장은 태아가 사망한다고 하더라도 산모을 위해 자궁을 제거할 수 있다는 윤리적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쉽지 않지요? 그래도 곰곰 생각해 보시면 어려운 사례를 다루는 의료윤리의 논리성을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이달의 딜레마 사례 -성병 검진 결과 부부간엔 비밀로?  

건강검진 결과를 보러 온 30대 초반의 아주머님 얼굴색이 흑빛으로 변했다. 검진결과 성병인 매독반응에 양성이 나왔다는 말을 전하고 나서이다. 다소 진정이 된 다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결혼 전에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남편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성적 파트너인 남편에게도 전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반드시 검사를 해 봐야 하는데, 아주머니는 제발 남편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을 하신다. 환자의 비밀을 지키는 의무는 오래된 의사들의 기본 윤리인데, 이 경우 부인의 부탁대로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것일까?

<* '딜레마 사례'에 대한 여러분의 소중한 견해를 e메일( drloved@hanmail.net )로 보내주시면, 다음 호에 간략한 해설과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정유석은?

199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3년 가정의학과 전문의2001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11년 전공의를 위한 임상의료윤리 저술2011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학교실 주임교수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