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6.07.06 11:15
  • 댓글 0

[라포르시안]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모든 의료기관을 시설·장비·인력·기술 등의 차이와 관계없이 요양기관으로 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요양급여비용 산정과 비급여 의료행위의 가능성 등을 통하여 의료기관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를 반영함으로써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는 평등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지난 2014년 4월 24일, 헌법재판소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2조제1항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맨 처음의 인용문은 당시 헌재 결정문 중 의료기관 개설자의 평등권 침해에 대한 판단 요지이다. 건보법의 당연지정제 조항에 대해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청구인들은 '모든 의료기관이 개설주체·시설·능력 등의 차이와 관계없이 동일하게 취급됨에 따라 평등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헌재는 요양급여비용 산정과 비급여 의료행위의 가능성 등을 통해 의료기관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를 반영함으로써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는 근거를 들어 당연지정제가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당연지정제가 모든 의료기관이 갖고 있는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동일하게 취급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은 무슨 말인가. 또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기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헌재의 판단은 무슨 의미인가.

평등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이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은 '절대적 평등'보다는 '상대적·실질적 평등'에 더 가깝다. 기회의 균등과 차별 금지, 공정한 분배를 통해 '각자에게 그의 몫을' 보장하는 것을 평등권 구현으로 본다. 합리적인 근거나 정당한 이유에 따른 차별을 인정한다. 본질적으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헌재의 판단은 여기서 비롯됐다. 

당연지정제 위헌심판 제청에서 청구인들은 모든 의료기관이 개설주체·시설·능력 등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양급여비용 등에서 동일하게 취급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급여 의료행위의 가능성, 즉 의료기관이 비급여 진료비를 제각각 산정하고 있는 상황을 근거로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함으로써 평등권이 구현된다고 판단했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병원별로 비급여 진료비 편차가 지나치게 커서 문제라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특정 비급여 의료행위를 놓고 병원 간 진료비 편차가 몇십 배에 달한다고 지적하며, 마치 비용이 높은 병원은 환자에게 폭리를 취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비급여 진료는 부르는 게 값'이란 식으로 보는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런 인식은 과연 타당한가. 비급여 진료비가 병원 간 천차만별로 가격 차이가 나는 건 문제인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급여 의료행위는 수가가 다 정해진다. 반면 비급여 의료행위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병원이 비용을 정한다. 개별 병원의 지가(地價), 시설, 장비 수준, 의료진 수준, 시술 부위, 시술 소요시간, 환자 중증도 및 사용 치료재료 종류 등을 반영해 비급여 진료비를 정한다. 각 병원의 접근성은 물론 시설과 장비, 의료진 수준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비급여 진료비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동일한 MRI 검사라도 병원에 따라 장비가 다르고, 의료진의 경력이나 수준이 다르고, 시설이 다른데 가격 차가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 간 비급여 비용 차이가 큰 문제인 것처럼 지적하고, 비급여 진료비를 통제하고 표준화 하자고 주장한다면 합리적인 지적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다른 데 같은 것으로 취급하자는 논리다. 당연지정제 위험심판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기관 개설자의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헌재의 결정과 상충한다. 

실손의료보험을 판매하는 민간보험업계에서 비급여 진료비 통제와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온다. 게다가 금융당국도 이런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은 건강보험 급여 항목의 환자 본인부담과 비급여 진료비를 보장한다. 보험업계는 실손의료보험금의 2/3 이상이 비급여 의료비로 지출되면서 손해율이 너무 높아져 실손의료보험의 안정적 경영을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건강보험 급여 영역과 동일한 수준으로 비급여 의료행위의 가격·진료량 등을 통제하고, 비급여 의료비를 표준화 해야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요구한다.

비급여 진료비가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로 풀어야지 실손의료보험 안정화를 위한 수단으로 언급할 게 절대 아니다.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급여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63% 수준에 그친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자연스럽게 풀릴 문제다. 어느 정권에서든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중요한 정책 과제로 삼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는 건 모순이다.

공보험인 건강보험과 전혀 다른 민간의료보험이 자꾸 공보험인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고 욕심을 부린다. 실손의료보험 안정화를 위해 건강보험 가입자의 진료정보를 활용하고,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실손보험료 심사를 맡기자는 주장은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 실손의료보험 손해율이 높아서 문제가 있다면 민간기업인 보험사 스스로 판단해 계속 판매할지 말지를 결정할 문제다. 오히려 실손의료보험이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안정성을 해치는 건 없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금융당국이 나서 안정화 운운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