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성(건강세상네트워크 전 대표)

[라포르시안] 전에 불량혈액 유통 건으로 적십자사를 상대로 싸움을 벌일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특정 분야에 대한 감시조직이 없으면 그 분야는 해당 기업과 전문가, 그리고 관료들의 살기 좋은 파라다이스가 된다. 그 분야가 전문적이면 전문적일수록 그 양상은 더욱 심하다. 게다가 매우 오랜 세월 그러했다면 그 조직의 관료주의와 업자들과의 끈끈한 유착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갑 중의 갑’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와 마인드도 거기에 맞게 자연스레 습득되어 조직 아래로 전수된다.

특정 업체를 불러서 호통을 치거나 공문을 보내서 꼼짝 못하게 옥죄는 건 흔히 보는 일이다. 특히 허가와 심사의 권한을 갖는 조직은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 의도적으로  허가를 반려하고 또 늦추기도 하고 심사에 각종 규정과 내규를 만들어서 들이대면 업체들은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업자들은 살기 위해서 스스로 ‘을 중의 을’이 되어 로비를 하고 각종 인맥을 찾아다닌다. 그러다 보면 공익은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되고 관료들과의 유착 고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업체들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면서 퇴직 후에도 해당 업체의 임원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로비는 전에 한 식구였던 업체 내의 퇴직 공무원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끈끈하게 된다. 이 작업을 잘하지 못하는 업체들은 그야말로 자력으로 일어서야 하는 데 그 어려움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이렇게 갑중의 갑으로 최적화 집단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라고 본다. 식약처는 각종 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그리고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허가의 권한을 갖고 있는 막강한 집단이고, 심평원은 의약품, 의료기기, 치료재료, 신의료기술 등을 심사하고 급여 기준을 정하며 그 가격을 정하는 일을 한다. 게다가 모든 동네의원부터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그리고 요양병원, 요양원과 조산소에 이르기까지 심사와 조사권까지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막강 조직이다.

최근 나는 심평원에서 운영하는 약제평가심의위원회(이하 약평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이 와중에 가장 크게 들었던 후회 아닌 후회가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활동하면서 왜 식약처와 심평원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칼날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약평위 건은 그냥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관련 기사: 심평원, 문제를 방치하다간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전에 적십자사와 3년을 싸우면서 결국 5명을 해임시키고, 27명이 재판에 회부되면서 혈액전문가 집단의 벽을 무너뜨린 일이 있었다. 거의 모든 혈액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어떤 형태든 적십자사와 연구용역으로 관계를 맺으며 먹고 살았고, 그 내부의 인물들과 선후배의 학연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니 나와 같은 환자 한 사람이, 또 비전문가인 일개 시민단체가 설쳐봐야 뭐 어쩌겠냐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몇 년 만에 적십자사는 그 비전문가에게 된통 된서리를 맞았다. 그래서 현재 모든 국민은 수술을 받거나 출산을 하거나 사고를 당해서 수혈을 받을 때 그 전보다 훨씬 더 안전한 혈액을 수혈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거 몰라도 된다. 원래 그렇게 되었어야 했던 것이니까. 그게 바로 사회의 원래 모습이어야 하니까 말이다.

심평원에 지난주 정식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다. 약평위의 회의자료, 회의록, 위원 명단을 달라고 요구했다. 식약처와도 같은 소송을 해서 현재 2심까지 승소한 상태이지만 이번에 심평원이 해당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다시 같은 소송을 할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도 같은 자료를 요청했다. 다시 말하지만 국회의원은 주고 나에게는 안 준다면 당연히 소송할 것이다. 이 소송은 비공개를 원칙을 삼고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에 대한 정부조직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각종 업체들의 로비를 염려해서 명단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얼마나 더 로비에 취약하며 국민을 안전하게 만들지 못하는지 알게 해야 한다.

공개가 안 되니까 관료와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국민이 모르고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오히려 공개가 더 분명히 되어서 위원회에서 누가 어떤 말을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공익에 서 있지 않거나 이상한 논리를 편다면 위원에서 퇴출시키는 게 맞다. 공개되어야만 심의가 절차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권한을 남용해서 옥죄어 못살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공개되지 않으면 국민은 알 수가 없다. 국가 보안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공개되는 것이 마땅하다.

공개되어서 발언을 소신 있게 못하겠다고 하는 위원이 있으면 아예 처음부터 못 오게 해야 한다. 어디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신과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 누가 보든 당당하고 떳떳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아예 이런 위원회에 올 생각을 않게 해야 한다. 그렇게 위원회를 운영하다가 관료와 전문가들의 합작으로 많은 국민을 죽어가게 했던 것이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아닌가. 그 가습기 살균제도 관료와 전문가들이 국민을 위한다며 비밀에 붙여 운영했던 각종 심의를 모두 통과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주성은?

1999년 만성골수성백혈병에 걸린 후 골수이식으로 새 생명을 찾았다. 2001년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약가인하투쟁을 주도했고, 한국백혈병환우회와 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를 창립해 적극적인 환자권리운동을 벌였다.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라는 책도 썼다.

[반박기고] 심평원에 대한 문제제기의 칼끝은 누구를 향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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