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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국정과제라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어디로 실종됐나노숙자가 사장님보다 더 많은 보험료 내고, 입양아에 친부모 체납보험료 독촉…“문제 너무 심각해 손 못대는 것”

[라포르시안] #. 충주에서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조모씨(61). 조씨는 서울에 9층짜리 빌딩(과표 53억)과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에서 빌당은 자녀에게 증여했다. 조씨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월보수 10만원을 신고해 보험료 8,380원만 납부하고 있다. 또한 자녀에게 증여한 빌딩의 근로자로 취업한 것으로 신고(보수월액 110만원)해 매월 3만2,940원을 보험료로 납부했다.

#. 충주에 거주하는 최모씨는 84세로 자녀가 없어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다. 그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폐허가 된 상가건물, 부모 산소가 있는 토지 및 생활수준점수 등을 기준으로 월 3만6,150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상가와 토지 때문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소득도 전혀 없고 거주할 집조차 없어 노숙자로 지내면서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 매월 3만6,150원씩 부과되는 건강보험료는 큰 부담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지난 2014년 발간한 '건강보험료 부과 관련 전국지사 유형별 민원 표본사례 모음집'에 실제로 수록돼 있는 내용이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건강보험료 부과기준 때문에 이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현행 보험료 부과체계는 크게 4원화 되어 있고, 자격에 따라 8가지 그룹으로 구분된다. 크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피부양자, 그리고 임의계속가입자 등으로 구분된다. 여기에 직장에서 받는 보수 기준이나 종합과세소득, 연금소득 수준에 따라서 다시 8개 그룹으로 나뉜다. 

보험자는 하나인데 보험료 부과기준은 다원화돼 있고, 건강보험 급여기준은 또 동일하게 적용받는다. 불합리한 부과기준 탓에 직장에서 퇴직한 이후 소득이 줄지만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재산과 자동차 소유 여부를 기준으로 보험료가 오르는 일이 숱하다. 반면 충분한 소득과 재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올라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례도 많다.

직장에 다니는 부모 밑에 태어난 아이는 보험료 부과대상이 아니지만 실직으로 직장이 없는 부모 밑에 태어난 아이는 지역가입자로 보험료를 부담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돌도 지나지 않은 입양아에게 친부모의 밀린 건강보험료를 내라고 독촉장이 발송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을 국정과제로 제시했지만…정부도 건강보험 부과체계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2013년 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을 출범하고 소득중심의 단일 부과체계를 골자로 한 개편안 마련을 추진했다.

개선기획단에서 1년 6개월 넘게 논의한 끝에 마련한 부과체계 개편안을 마련했지만 어쩐 일인지 정부는 발표를 여러 차례 연기했다. 개편안은 당초 2014년 9월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12월로 연기됐고, 다시 2015년 1월 중순경으로 미뤘다. 그리고 다시 1월 말로 연기했다가 부과체계 개편안 발표를 하루 앞두고 느닷없이 이를 취소했다. 당시 문형표 복지부장관은 부과체계 개편 중단을 발표하면서 "지역가입자의 건보료가 줄어드는 것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추가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의 부담이 늘어나면 불만이 있을 것"이라며 "연기를 하고 신중하게 검토키로 고심 끝에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마련한 부과체계 개편안은 부과기준을 소득 중심으로 개편해 월급 외에 이자, 연금소득 등에도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새 개편안이 적용되면 소수의 고소득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에 따른 불만이 크게 불거질 것을 의식해 발표를 중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과체계 개편 중단에 따른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새누리당과 복지부는 작년 2월 말부터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을 위한 당정협의회를 수차례 열고 논의를 이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부과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강보험공단에는 해마다 수천만 건의 건강보험 자격, 부과, 징수 등 보험료 관련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공단의 인력 중에서 상당수가 민원처리 업무에 투입되면서 보험자의 고유업무 추진에 차질을 빚을 정도다.

건보공단 노조는 "건강보험 부과체계는 누더기 그 자체가 되어 직원들도 난수표 같은 표를 보고도 항의하는 민원인에게 설명이 어려울 정도"라며 "우리나라의 현행 부과방식은 가장 후진적이고 원시적일 뿐만 아니라, 서민에게 가장 혹독한 구조"라고 지적하며 부과체계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소득중심 단일 부과체계로 개편하면 가입자 90% 이상 보험료 부담 낮아져 지난 4.13 총선에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을 공약으로 제시한 더불어민주당이 ‘소득중심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을 마련했다.

더민주 정책위원회(변재일 의장)는 지난 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평하고 합리적인 건강보험 부과기준,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공청회를 열고 당 차원에서 마련한 소득중심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더민주가 마련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은 현재 정책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팀장으로 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TF’에서 마련한 것이다.

더민주가 마련한 개편안은 ▲소득중심 단일 부과 ▲소득 종류별 차별적 보험료 반영률 적용 폐지▲최저보험료 등 산정특례 ▲보험료부담 가입자 대표기관 설치 ▲피부양자제도 폐지 ▲정부 국고지원 책임 이행 강제 ▲보험료 상하한선 적용 등의 11가지 원칙 아래 마련됐다.

개편안의 핵심은 모든 가입자에게 소득중심의 단일 부과기준을 적용하고, 직장가입자·지역가입자·피부양자 구분을 폐지해 '가입자'로 일원화 하는 것이다. 현재 직장가입자는 보수를 기준으로, 지역가입자는 소득·재산·자동차·생활수준 등을 기준으로 매기는 복잡한 보험료 부과기준 대신 모든 가입자에 대해서 발생한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부과된다. 더민주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TF는 2015년 결산 기준 보험재정 중립(51조6,846억원)을 유지하면서 정부가 국고지원 의무(보험료 예상 수입의 20%, 2015년 기준 7조920억원)를 이행한다는 조건 아래 새로 마련한 개편안을 적용한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 결과, 부과체계 개편안 적용시 전체 세대의 약 90~95%는 보험료가 내려가고, 약 5~10%의 세대는 보험료가 올라갈 것으로 추정됐다.   

실직자와 노인, 농어민 등으로 구성된 지역가입자는 거의 전부 보험료가 인하되고, 직장가입자 중 근로소득(보수월액)만 있는 세대도 100% 보험료 부담이 내려가는 것으로 나왔다. 

반면 그 동안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던 피부양자 중에서 소득이 있는 214만명(190만세대)과 양도, 상속, 증여소득 및 퇴직소득, 분리과세되는 금융소득(이자, 배당), 일용근로소득 보유 세대와 근로소득 이외에 다른 소득이 일정수준 이상 있는 직장가입자는 보험료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더민주는 부과체계 개편을 위해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건보법의 경우 현행 재산, 자동차 및 평가소득(성․연령 등 경제활동참가율)은 보험료 부과요소에서 제외하고,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한 부과기준을 적용해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구분된 가입자 자격을 '가입자'로 일원화 하는 쪽으로 개정한다.

또한 피부양자 제도를 폐지해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지하고, 국고지원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정산근거를 마련하고 국고지원에 대한 한시 규정도 삭제할 방침이다.

더민주는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구성원간 보험료 부담이 원천적으로 불형평하고 불공정하게 돼 있어 사회정의에 배치됨은 물론, 폭발적 민원으로 제도의 수용성이 떨어져 보편적 복지제도로서의 존립 자체가 우려된다"며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 등을 전부 수렴해 국민건   강보험법개정(안)에 추가로 반영하고 국회에 당론으로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용역은 이제 그만! 지금은 실천이 필요할 때"

관련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을 더는 미뤄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30일 더민주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김재진 선임연구위원은 "(부과체계 개편은)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손을 못대는 것"이라며 "그렇지만 이 문제를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면 안된다. 이제는 연구용역 좀 그만하고 실제로 행동을 취할 때"라고 사안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서울시립대 최병호 교수(전 한국보간사회연구원장)은 "복지부와 건보공단만 나서서 이 제도를 완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획재정부와 입법부 등에서 함께해야 가능하다"며 "국회 차원에서 밀어붙이지 않으면 복지부 힘만으로는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이)힘들다"고 말했다.

정작 당사자인 복지부는 소득파악률 문제 등을 앞세워 부과체계 개편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공청회에서 복지부 강도태 건강보험정책국장은 "지역가입자의 50%는 아직도 소득자료 자체가 없다. 소득자료가 있는 50% 역시 연소득이 500만 수준으로 나오는 이 부분이 정확히 파악되고 있는 것인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작년에 부과체계 개편 중단을 발표하면서 이유를 제시했던 보험료가 인상되는 일부 고소득 직장가입자들의 불만과 정책에 대한 저항감 문제를 다시 언급했다.

강 국장은 또 "(더민주의 부과체계 개편안에 따라)보험료가 인상되는 5~10%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봐야 한다. 과연 보험료 부담이 증가하는 것을 수용할까"라고 정책 수용성 문제를 제기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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