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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병원은 노동집약이 아닌 ‘노동학대’ 공간으로 전락했나만성적 인력부족으로 노동자·환자안전 위협…국가가 적정인력 확보 컨트롤타워 역할해야
한 대학병원의 포괄간호병동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라포르시안]  국내 의료기관은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 상황은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한 의료인력 지표에서도 평균을 훨씬 밑도는 수준이다.

병원의 인력부족은 근무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간호사 등 의료인력의 이직을 부추기고 인력부족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의료서비스 분야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하지만 국내 병원은 '노동학대적 산업'과 다를 바 없는 환경이다. 인력 부족으로 가임기에 있는 간호사들이 순번을 정해 임신하는 '임신순번제'와 임신 중 야간근무까지 담당해야 하는 상황은 모성학대에 가깝다. 

의료인력 부족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환자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점이다. 최근 수년 간 대형병원에서 잇따라 발생한 전공의와 간호사의 투약오류로 인한 의료사고 발생 배경에도 의료인력 부족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의료인력과 환자안전의 상관관계는 이미 관련 연구를 통해서 명확하게 확인됐다.

지난 2008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간호학과 조성현·황정해·김재용 교수팀이 국내 42개 대학병원과 194개 종합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한 15세 이상 환자 2만2,372명을 대상으로 의사·간호사 인력과 사망률의 상관관계 조사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당시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학병원의 경우 중환자실에 하루 4시간 이상 상주하는 전담의사가 없는 경우 전담의사가 상주하는 병원에 비해 환자의 사망 가능성이 56%나 높아졌다. 중환자실이 내과계, 외과계 등 2개 이상으로 전문화된 병원은 1개의 종합 중환자실만 운영하는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에 비해 사망률이 낮았다.

종합병원의 경우 간호사 확보 수준이 낮을수록 사망률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평균 나이 64세의 뇌경색 환자가 간호사 1인당 2명의 환자를 돌보는 중환자실에 입원하면 사망 확률이 9.4%이지만 간호사가 5명의 환자를 간호하는 병원에서는 사망 확률이 11.7%로 높아졌다.

연구팀은 이런 조사 결과를 근거로 병원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1명씩 줄일 경우 평균적으로 환자 1,000명 당 15명꼴로 사망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굳이 이런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적정 의료인력 확보가 환자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간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기본간호에 소요되는 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인력부족으로 간호사에게 과중한 업무가 부여되면 약이 바뀌거나 투약 시간이 늦어지는 등의 투약오류와 병원 감염의 위험 증가 등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지난 3~4월 두 달간 전국 100개 병원에 근무하는 2만950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부서내 인력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82.6%에 달했다.

인력부족으로 환자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76.6%였고,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응답도 82.8%나 됐다.

병원 인력부족 만성화로 환자안전 위협

의료인력 부족에 따른 폐해가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병원들은 인력난과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의료인력 확충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현행 건강보험 수가체계가 '의료인력 값'에는 박하고 '시설과 장비 값'에는 후한 방식으로 책정돼 있어 병원이 인력 확충보다 시설과 장비 투자에 더 관심을 갖게끔 만든다.

여기에 수도권으로 의료자원 쏠림이 심화되면서 지방 병원은 의료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더 높은 인건비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인력확보의 어려움과 인건비 부담 가중으로 지방의 많은 병원이 경영난에 허덕인다. 이는 다시 의료인력 부족과 의료 질 하락을 초래하는 악순화 구조를 고착화 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이로 인한 열악한 근무환경은 환자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

지난 2010년 경북대병원, 2012년 가천대 길병원에서 항암제인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가 발생해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전공의의 실수로 정맥으로 투여해야 할 빈크리스틴이 척수강으로 잘못 투여되면서 발생했다.

앞서 경북대병원에서 발생한 사고가 논란이 되면서 병원의 약물관리가 강화되고 이후 의료기관인증평가까지 도입됐지만 투약오류를 막지 못했다.

당시 투약오류 사건을 놓고 주 8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근무환경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이 수면부족 등으로 업무 집중력이 떨어져 항암제 매뉴얼을 적절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대학병원 간호사는 "병원에 항암제 매뉴얼도 있고 약물관리 시스템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며 "하지만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의료인력의 피로도가 누적되면 이중확인을 놓칠 가능성이 있고, 그러다 보면 자칫 환자 안전을 해치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노조와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지난 6월 2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보건의료인력지원 특별법' 발의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 제공: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 적정인력 확보 국가가 책임져야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이 적정 의료인력을 유지할 수 있게끔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나서 적정 보건의료인력 수급계획을 수립하고, 의료기관이 인력이 채용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국가의 책무와 인력 확충에 필요한 지원 사항을 명시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안'이 제출됐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국회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 특별법안이 다시 제출됐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29일 국회에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된 특별법안은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보건의료기관 등의 인력지원 및 개선에 필요한 종합적 실태조사를 실시 ▲‘보건의료인력지원 심의위원회’ 설치·운영 ▲보건의료 인력기준에 관한 사항 준수 의무 ▲보건의료기관 고용확대 지원, 우수 보건의료인력 지원, 세제 지원 등 각종 지원 조치 ▲보건의료인력의 보건의료기관 취업 촉진을 위해 고용장려금 지급, 보건의료기관의 구인 활동 및 구직자의 취업 지원 보건의료 인력지원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보건의료인력의 원활한 수급 및 지원을 위한 재정지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별법안은 현재 개별 의료기관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적정인력 확보 문제에 대해서 국가에 책무를 지우고, 정부가 중장기 보건의료 인력수급 계획을 수립하고 병원의 인력확충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

정춘숙 의원과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인력 문제 해결은 무엇보다도 종합적인 인력정책의 수립과, 이를 위한 국가 주도의 종합적인 법제도화를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보건의료인력 수급문제 해결과 안정적 공급을 위한 대책마련은 의료공급체계에서의 중요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의료공급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맡겨져 있는 조건에서는 보건의료인력의 안정적 확보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환자안전을 위해서 적정 의료인력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단장은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인력은 OECD 국가 대비 1/2 수준 밖에 되지 않아 매우 부족한 상태"라며 "의료현장은 장시간 노동 등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환자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가 하면, 의료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 국가주도의 보건의료인력 수급을 제도화하기 위해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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