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성(건강세상네트워크 전 대표)

[라포르시안] 며칠 전 라포르시안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이하 약평위)의 화상치료제 '케라힐-알로'에 대한 심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이어 이틀 전 20대 국회의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부 의원이 심평원의 업무보고가 끝난 뒤 해당 약제에 대해서 질의서를 보내고 관련 자료 요청을 하였다. 이제 상황이 은근슬쩍 넘어가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관련 기사: 지난주 약제급여평가위 회의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심평원의 약평위는 위원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약제의 급여여부와 약가를 결정하는 위원들이 해당 제약사들의 로비를 받을까봐 그렇다는 게 이유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위원명단을 제약사들은 알고 있고 정작 감시해야 할 국민들은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말, 다국적 제약회사인 한국화이자가 급여 신청을 한 자사 제품인 잴코리에 대한 로비를 벌이려다가 발각이 된 일이 있었다. 젤코리는 그 전에도 급여심사에서 한번 탈락된 제품이었는데 재심사를 요청하여 올라온 것이다. 그런데 제약회사의 담당자가 심평원의 그 철통(?)같은 보안을 어떻게 뚫었는지 특정 약평위 위원명단을 알아내고, 자신들 약을 심사할 약평위 위원에게 문자를 보내 로비를 시도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불쌍하게도 우리만 몰랐던 것이다. <관련 기사: 시민단체, ‘잴코리’ 로비 의혹 관련 심평원 공익감사 청구>

나는 지금도 이런 문제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벌써 2년째 소송 중이다. 식약처의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이하 중앙약심) 회의록과 위원명단을 정보공개청구했더니 보여줄 수 없다고 버티어서 결국 정보공개청구소송을 냈다. 1심에서 승소했는데 식약처가 항소해 2심도 이겼다. 물론 그간 하는 작태로 봐서는 상고도 하리라고 본다.

정부 부처의 각 기관들이 관리라도 잘해서 그런 일이 터지지 않게 하지도 못하면서 보안이니 로비 위험이니 하는 논리를 들이대어 오히려 국민들의 알권리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까짓 위원회 위원 명단이나 회의록을 보자고 2년씩이나 소송을 해야 하는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위원회는 공익활동을 하는 곳이다. 오히려 만천하에 우리는 어떤 논의를 하고 있다고 거꾸로 드러내야 하는 게 일반적으로 맞다. 공개되어서 문제가 있을 발언을 할 만한 사람이라면 위원 위촉을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아야 한다. 비공개라는 이름하에 각종의 로비를 받고 은근슬쩍 회의에서 해당 기업의 제품을 밀어주면 사실 이걸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명단도 안주지, 회의록도 비공개라 하고, 그럼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그걸 받아낼 길이 없는 것이다. 로비를 해서 통과가 되어도 이런 걸 밝혀내고 드러내 바로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주 취약한 것이다.

지난 주 심평원 약평위의 화상치료제 케라힐-알로 심의는 최종적으로 표결을 해 10대 8로 통과되었다고 알려졌다. 찬성이 10이고 반대가 8이었단다. 한명만 반대로 넘어왔어도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게다. 이처럼 반대와 각종의 문제제기가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의료 관련 위원회가 절차의 합법성이라는 틀을 이용해 무리하게 표결을 강행하고 통과시킨 것이다.

이에 그냥 볼 수 없어서 나는 그날의 위원 명단과 회의자료 그리고 회의록을 모두 정보공개청구했다. 물론 또 위와 같은 이유를 들이대며 안 줄 것이다. 그럼 또 소송을 해야 하나? 정말 화가 치민다. 미런 식으로 위원회를 운영하다간 점점 더 큰 의심과 저항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정부가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에 대해서 국민들의 불신은 상당히 일반화되었다. 수 백 명을 사망케 한 이번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도 각종 위원회를 다 통과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약평위는 케라힐-알로를 재심의해야 한다. 각종의 문제제기를 살펴보고 필요한 자료가 있어야 하면 보완하고 토론해서 다시 심의해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게 아닌가? 현재로서는 그것이 유일한 해답이다. 이런저런 문제제기들이 심평원에 첩첩이 쌓이는 걸 내버려두다간 그 조직도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경고다.

강주성은?

1999년 만성골수성백혈병에 걸린 후 골수이식으로 새 생명을 찾았다. 2001년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약가인하투쟁을 주도했고, 한국백혈병환우회와 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를 창립해 적극적인 환자권리운동을 벌였다.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라는 책도 썼다.

[반박기고] 심평원에 대한 문제제기의 칼끝은 누구를 향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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