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심각한 인력부족 상황…가장 큰 문제는 환자안전·의료질 저하

[라포르시안] 의료기관의 인력부족이 심각하다. 인력부족은 업무량 증가와 노동시간 연장 및 노동강도의 강화 등으로 이어져 병원 노동자들의 건강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질 저하와 안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23일 지난 3~4월 두 달간 전국 100개 병원에 근무하는 2만950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부서내 인력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82.6%에 달했다. 인력부족으로 건강이 악화됐다는 응답은 69.8%나 됐고, 사고나 질병에 노출됐다는 응답도 70.8%였다.

병원의 인력 부족은 환자 안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인력부족으로 환자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76.6%였고,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응답도 82.8%나 됐다.

응답자의 79.8%는 병원에서의 인력부족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답했고, 심지어 의료사고 발생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는 응답도 33.6%에 이르렀다. 

표 출처: 전국보건의료노조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중에서.

인력부족은 노동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지난 2004년 주40시간제가 도입된 이후 12년이 지났지만 병원노동자들은 여전히 법적 노동시간을 뛰어넘는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간호사 등 병원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주간근무자 9.8시간, 저녁 근무자 9.1시간, 밤 근무자 10.9시간이었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5.6시간으로, 간호사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6.6시간으로 조사됐다.

병원노동자들은 법정 노동시간인 주40시간에 비해 주당 5.6시간 더 길게 일하고, 연간 노동시간으로 환산할 경우 주 40시간제에 따른 연간 노동시간 2,080시간보다 343시간이 더 많은 2,423시간을 일하고 있는 셈이다.

또다른 문제는 시간외 근로시간이 길다는 점이다.

실태조사 결과, 병원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시간외 근로시간은 112.3분으로, 특히 간호사의 경우 전체 평균보다 높은 116.9분이었다. 이처럼 병원노동자들은 하루 2시간 가까이 초과근무를 하고 있지만 49.8%는 연장근무에 대해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력부족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이어진다. 인력부족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심지어 밥먹을 시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원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휴게 및 식사시간은 평균 39.2분에 불과했고, 전체 응답자의 75.8%가 40분 이하라고 답했다.

직종별로 보면 간호사의 하루 평균 휴게 및 식사시간은 29.7분에 그쳤다. 병원노동자들의 월 평균 결식횟수는 평균 5회였고 간호사는 5.9회였다. '간호사들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마신다'고 하는 병원 현장의 이야기가 과장되지 않았다는 게 고스란히 확인됐다.

전국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가 지난 2015년 9월 2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환자안전 위협하는 병원노동자 장시간노동 근절을 위한 근무시간 실태조사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이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인력부족과 장시간노동은 병원노동자들의 직장생활 불만족도를 높여 직장생활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46점에 불과했다. 고용안정(60.3점), 직장 분위기(55.5점), 일에 대한 자긍심(55.3점) 등이 50점을 넘어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반면 노동강도(34.5점), 인사승진 및 노무관리(37.7점), 임금수준(40.1점), 복리후생(41.4점), 노동시간(41.8점), 작업환경 및 노동안전(46.5점), 근무형태(46.9점) 등은 50점을 밑돌았다.

특히 간호사 직종의 노동강도에 대한 만족도는 29.4점, 노동시간에 대한 만족도는 34.7점에 그쳤다.

낮은 직장생활 만족도는 높은 이직의도로 나타나고 있다. 직종별로는 간호사가 76.0%로 이직의도가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정신보호사(65.7%), 치위생사(61.8%), 약사(61.1%), 영양사(55.3%), 요양보호사(51.6%), 연구직(51.5%), 간호조무사(51.3%), 작업치료사(50.6%) 등의 순이었다.

노동환경에 대한 불만으로 이직이 잦다보니 평균 근속년수도 낮았다. 병원노동자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9.5년으로 3년 미만이 26.2%에 달했고, 10년 이상 근속자는 25.9%였다.

간호사 직종의 평균 근속년수는 7.7년으로 더 짧았다. 근속년수가 짧고, 이직의도가 높다보니 병원업무의 특성상 요구되는 숙련성, 업무의 연속성과 책임성 등을 떨어뜨리고 이는 곧 환자안전을 해치는 요인이 된다.

보건의료노조는 "환자안전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 병원노동자의 근무조건 개선을 위해 인력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며 "병원노동자들의 인력부족, 장시간노동, 열악한 근무조건, 낮은 업무만족도, 높은 이직의도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충분한 인력확충으로 환자안전병원 만들기운동 ▲보건의료분야에 50만개 일자리 창출운동 ▲'보건의료인력법' 제정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전국 34개 지방의료원 중 25개는 간호사 정원 못채워

한편 지역거점공공병원 역할을 수행하는 전국 34개 지방의료원 중 상당수가 간호사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지역거점공공병원 알리미' 사이트에 등록된 전국 34개 지방의료원의 인력현황을 살펴본 결과, 2015년 기준으로 25개 지방의료원은 간호사 현원이 정원보다 적었다.

간호사 정원을 채운 지방의료원은 9개에 불과했다.

홍성의료원은 정원 210명에 현원 159명으로 51명이나 부족했고, 천안의료원은 정원 105명에 현원 74명으로 31명이 더 적었다.

강원도 산하 강릉, 삼척, 속초, 영원, 원주의료원 등 5개 의료원 모두 간호사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 정원을 모두 채우거나 정원을 초과한 곳은 서울의료원을 비롯해 부산의료원, 군산의료원, 목포시의료원, 순천의료원, 경기도 포천병원, 경기도 이천병원, 경기도 의정부병원, 경기도 수원병원 등이다.

일찍부터 환자안심병동을 운영하며 보호자없는 병원 사업을 추진해온 서울의료원의 경우 간호사 인력 확충을 적극 추진하면서 정원(555명)보다 현원(606명)이 51명이나 더 많았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운영하는 군산의료원도 간호사 현원이 정원보다 73명이나 더 많은 확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부 병원을 제외하고 대다수 지방의료원에서는 간호사 인력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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