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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왕은 죽었다. 왕이여, 만세! 아베 마리아”황금가지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 이용대 옮김 / 한겨레출판사 펴냄, 2004년

[라포르시안] 책읽기에도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황금가지>야 말로 대학에 다닐 무렵부터 지금까지 1위에 올라있던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읽기를 미룬 것은 책값이 만만치 않아서이거나 900쪽이 넘는 두께에 질려있었다는 핑계 때문이었습니다. 회사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황금을 발견한 셈인데, 막상 빌어보려 할 때 도서관이 폐관되고 소장했던 책들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바람에 엄청 아쉬웠습니다. 다행히도 회사가 이사하고 다시 개관한 도서관에서 <황금가지>를 발견했을 때 바로 대출을 신청했습니다.

인류학, 종교학, 신화학 분야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황금가지>는 제임스 조시 프레이저 경의 역작입니다. 1854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태어난 프레이저 경은 글래스고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880년 중반부터는 인류의 고대사, 고대문화와 비서구 문화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연구의 성과로 1997년에 <토테미즘>을 그리고 1890년에 <황금가지>를 펴냈던 것입니다.

초판에 2권으로 출간된 <황금가지>는 1900년에 나온 재판에서는 3권으로 늘었고, 1906년 ~ 1915년 사이에 나온 세 번째 판에서는 1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이 되었습니다. 1936년에는 보충판을 덧붙여 전체 13권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축약본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1922년 4월에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에 대한 위험한 단락, 여가장제에 관한 고찰, 신성한 매춘에 대한 감미롭고 불경스런 구절처럼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들을 제외한 축약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번역본은 1922년판 축약본에서 삭제되었던 많은 부분을 다시 복원하였고, 원본의 장과 절을 무시하고 69개의 짤막한 장으로 분할했던 편집체제도 복원하여 원본 13권의 편집체제와 순서에 따랐다고 합니다.

편집자는 <황금가지>가 가지는 의미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황금가지>는 인류 지성사 가운데 가장 위험하고 요동치는 시대의 산물이며, 그 시대가 바로 오늘의 우리 시대를 낳았다. 이 판본은 시대감정을 되살려서 이 저작이 구상된, 그리고 그 정신을 담아 쓴 19세기 말의 최첨단을 점하는 여러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 인류학적 담론의 내재적인 문학적 가치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수록 독자들의 관심은 그 방면으로 더욱 쏠릴 것이라고 믿는다.(51-52쪽)”

이 책의 제목 <황금가지>는 영국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가 아이네이스의 삽화로 그린 그림 <황금가지>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저자는 적었습니다. 저자는 이 그림이 이탈리아의 로마 부근의 네미라고 하는 숲지대의 작은 호수를 꿈같은 환상의 분위기로 그린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편 터너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드>의 한 대목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황금가지가 달린 거대한 나무 하나가 / 지옥의 강을 다스리는 조브 신의 왕비에게 바친 /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에서 자라고 있다. / 그 나무줄기에서 꽃핀 황금가지를 잘라내기까지는 / 어떤 유한한 존재도 그녀의 저승세계를 엿볼 수 없도다.(18-19쪽)” 옛 사람들은 네미의 작은 호수를 ‘디아나 여신의 거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저자가 네미호수를 거론한 것은 디아나신전의 사제직 계승에 관한 규칙을 설명하기 위해서이고, 그 관습의 조잡성과 야만성으로부터 4권 46장에 걸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프레이저가 <황금가지>에 방대한 분량의 비교문화 연구결과를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여행을 통하여 얻은 자료를 포함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보글 가문 출신의 어머니 덕에 보글 가문의 많은 여행가들로부터 얻은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비서양 사회에 대한 무수한 기록, 인종학 계통의 서지(書誌)와 식민지 행정관들의 회고록, 선교사들의 관찰문들을 광범위하게 모아 읽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1887년에는 현장에 있는 일꾼들에게 결혼풍습, 상속규칙, 신화와 제례 등 특정 문제에 관한 정보를 요청하는 질문지를 보내 얻은 자료들을 두고 공통되는 고리를 찾으려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 방대한 자료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관한 것들도 소략하게나마 인용되고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에서는 설날 종이에 우상을 그리고 몸이나 마음의 고통거리를 적은 다음 태우는 습속이 있다거나, 정월 대보름 전날 액운을 날려 보내달라는 소망을 적은 연을 날리는 민속놀이를 적었습니다(662쪽). 또한 출산 후 산모와 아이가 신분에 따라 일정 기간 햇볕을 쪼이지 않도록 금한다는 것도 적었습니다.(772쪽) 일본 북부의 아이누족의 곰과 관련된 토템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술하면서도 우리의 단군신화는 빠져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조선의 민속을 너무 소략하게 다루지 않았나 하는 서운함이 남습니다.

프레이저가 <황금가지>를 기획한 의도는 원시종교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서 미개인의 관습과 사상이 기독교의 근본 교리와 놀라우리만치 유사하다는 점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사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특히 페니키아, 프리지아, 이집트와 같은 고대 근동지역의 종교적 숭배의식과 고대 그리스의 종교적 신화 등에 나타나는 희생제의(犧牲祭儀)는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양이라는 신성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뒤에는 동방에서 유래한 농신제와 같은 토속적인 행사가 기독교문화에 녹아들어 다양하게 변형된 모습으로 전해지게 되었다는 점도 적었습니다.

영국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가 아이네이스의 삽화로 그린 그림 <황금가지>.이미지 출처: 위키디피아

고대인들은 초자연현상을 경험하면서 이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주술(呪術)을 만들어냈는데, 동일한 원인이 언제나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감주술의 기본개념은 근대과학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프레이저경은 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종교는 자연의 운행과 사람의 인생을 지시하고 통제한다고 믿는, 인간보다 우월한 힘에 대한 회유 내지 비위맞추기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종교가 태어나면서 주술의 개념이 약해지게 되었습니다. 프레이저는 초자연적인 힘을 달래기 위하여 인간을 대표하는 왕을 내세워 살해하다가 이어서 왕자, 노예, 범죄자를 왕의 대리인으로 내세워 살해하는 것으로 변하였고, 이윽고 동물로 대신하였으며, 근세에 와서는 인형 등으로 대체하는 축제의 형식으로 남게 되었다고 정리합니다. 성경에서도 이와 같은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장자살해와 이를 숫양을 대체하여 제물로 바치게 된 것이라든가, 왕의 아들인 예수의 살해와 부활은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믿어온 관념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될 무렵이라면 충분히 논란이 될 수도 있었던 예수의 십자가형에 관한 설명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예수의 처형과정은 그 무렵 로마에서 유행하던 농신제와 흡사하지만, 이보다는 오히려 바빌로니아의 사카에 제전에 더 가깝다고 했습니다. 사형당할 예정인 범죄자를 데려다가 왕의 의복을 입혀 왕좌에 앉혀 왕으로 대접을 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매질을 하고 십자가형에 처하게 되는데, 그 대신에 한 사람을 방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는 혹세무민했다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반면 예수를 대신하여 방면된 바라바는 살인과 선동을 한 사실이 분명한 사형수였다는 것입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였지만 사제들과 장로들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의 압력으로 사형을 결정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풍요로운 수확과 종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희생제는 다양한 지역에서 있어왔습니다. 동물은 물론 곡물에도 정령이 있어 주기적으로 달래줘야만 했던 것입니다. 저자가 특히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희생제의 의미를 별도의 장으로 기록한 것은 아마도 이 지역을 지배한 스페인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 풍성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즈텍 사람들은 위대한 신 비츨로포츠틀리를 비롯하여 케찰코아틀, 소금의 여신 윅스토시와틀 등 다양한 신들에게 희생제를 올렸는데, 대개는 전쟁포로나 노예들이 희생의 대상이었습니다. 희생제는 신전의 꼭대기에서 이루어지는데, 희생대상을 돌제단 위에 눕히고 예리한 칼로 가슴을 열어 심장을 꺼내 신께 바친 다음, 시체는 신전의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희생된 노예의 주인이 시체를 집으로 메고 가 나누어 먹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희생자의 가죽을 벗겨 이를 뒤집어 쓴 사람이 20일 동안 시가지를 돌아다니면서 신으로 대접을 받았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 피부가 썩으면 고약한 냄새를 견뎌야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메리카대륙에 식인문화가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는 점은 유전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마르타 솔데빌라(Marta Soldevila) 등은 대륙간 인종별로 프리온 유전자의 코돈 129번에서 MM형의 유형을 조사하였더니 극동아시에서는 93%로 가장 높았고, 남아시아 61.8%, 유럽 52.2%, 중동아시아 45.8%, 아프리카 36.1%, 그리고 아메리카 6.1%였다고 합니다. 특정 지역에서 식인 풍습이 일찍 사라질수록 프리온 유전자의 코돈 129번에서 MM형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Soldevila et al. Prion susceptibility and protective alleles exhibit marked geographic differences. Human Mutation, Variation, Informatics and Disease; 22:104–105; 2003)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 역시 <식인과 제왕>에서 메소아메리카에서는 15세기까지 신전에 바쳐진 희생자들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식인문화가 광범위하게 남아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수렵․채집민 소집단 및 촌락사회에서 신앙과 관행에 따라서 포로들의 심장을 먹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희생자가 보유한 힘이 자신에게 이전되기를 희망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기회도 되었을 것인데, 특히 식인의 관행이 메소아메리카지역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던 것은 구대륙, 심지어는 안데스 지역과는 달리 희생제물이 되는 인간을 대체할만한 가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총균쇠>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착생활을 시작한 이후 돼지나 소, 개를 길러 단백질 보충과 노동력으로 활용했던 구대륙과는 달리 신대륙에서는 가축화하기에 마땅한 동물이 없어, 안데스지역에서 알파카나 기니피그와 같은 소동물 정도를 가축화했을 뿐으로 구대륙과 비교된다하겠습니다.

<총균쇠>를 읽고 저는 이 점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정리해두었습니다. “인류사적으로 가축화와 작물화가 가능한 동식물의 부존이 대륙 간에 차이가 있었던 이면에는 가축화 혹은 작물화를 시도하기 이전에 해당 대륙에 거주하는 집단이 포획대상의 멸종을 고려하지 않고 남획한 것도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인근으로부터 자원을 들여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각 대륙의 특성을 보면, 유라시아대륙은 동서축을 중심으로 이동이 쉬운 구조인 반면, 아프리카나 남북 아메리카의 경우는 남북축을 중심으로 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문명의 확산속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프레이저 시절만 해도 유럽사회는 유럽이 아닌 지역을 미개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황금가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에서는 어떤 종류의 문화도 나름대로의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문화와 비교하여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축약본 임에도 900여 쪽이 넘는 긴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주술과 종교 그리고 과학은 사유의 이론에 다름 아닌 것으로 틀림없이 완전하고 최종적인 것이라고 결론짓기 어렵다고 정리합니다. 그리하여 ‘지식의 발전은 끊임없이 멀어져가는 목표를 향한 무한한 전진’으로 우리는 그 끊임없는 추구에 불평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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