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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건강한 몸뚱이든 병든 몸뚱이든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6.06.1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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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사는 게 불안 불안하다. 기댈 곳 없는 난간에 서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발 아래는 천 길 낭떠리지. 한 번 떨어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힘들 거처럼 난폭한 불안감 속에서 많은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그나마 건강한 몸뚱이 하나로 버틴다는 생각. 그러다 보니 '건강'에 대해서 더 맹목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거창하게 웰빙이란 말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다. 건강은, 건강한 몸뚱이는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수단이자 목적이기도 하다.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진다. 국가 주도의 의료보장제도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의료보장제도는 '1977년 패러다임'이라는 앙시애레짐(구체제)에 갇혀 있다. 1977년 7월부터 공무원과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당시 의료보험의 적용 대상은 전체 인구의 9%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 대상 또한 중산층 이상의 안정적 소득원이 있는 계층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란 짧은 시간에 전국민 의료보험에 도달했다. 지난 39년 간 외형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확대됐다. 과거의 패러다임이 안고 있는 문제도 그에 비례해 커졌다.

정통성 없는 정치권력에서 비롯된 꼼수나 다를 바 없는 사회보장제도. ‘저부담-저급여-저수가’로 규정된 3저 시스템에 의해서 급조된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는 1977년 패러다임이 안고 있는 속성이다.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은 낮게, 그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도 낮게, 그리고 의료수가도 낮게 책정한 3저 시스템을 기반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의 틀을 갖췄다. 3저 시스템은 단기속성으로 의료보장의 외형적 틀은 갖추게 했을진 몰라도, 의료보장이라는 본질적 기능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조악한 의료보장 체계를 낳았다.

조악하고 기형적인 의료보장제도로 인해 초래된 무수히 많은 문제가 국민과 의료서비스 공급자를 두고두고 괴롭힌다. 급성기질환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질병의 예방이나 재활, 건강증진에 관한 보험급여는 취약하다. 건강보험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증질환은 여전히 국민들의 삶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 만큼 위협적이다. 큰 병에 걸리면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이 질이 피폐해진다. 이런 상황은 소득에 따른 건강 불평등 격차를 더욱 벌려 놓는 지렛대가 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은 지난 수년간 지속적인 당기 흑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장성은 60%대를 계속 맴도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의 연속이다.

의료서비스 공급자들의 사정도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의료기관은 환자유치 경쟁으로 정글과 다를 바 없는 의료환경에 빠졌다.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병상을 확충하고, 첨단시설 도입 경쟁을 벌이느라 허덕인다. 수도권의 대형병원으로 의료자원이 몰리고, 지방의 의료인프라는 점점 황폐해 지고 있다. 동네의원과 대학병원이 경증질환자 유치를 위해 서로 경쟁하는 구도는 의료기관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과잉 중복투자와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유도해 환자 부담을 높이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애당초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될 여지가 없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주말에도 병원 문을 열어야 하고, 늦은 밤시간까지 진료를 해야 경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갈수록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모든 게 다 1977년 패러다임에서 비롯됐다.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체계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 

1977년 패러다임의 진짜 문제는 3저 시스템이 아니다. 건강보험이 의료보장제도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기본권인 건강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외국에도 자랑거리로 홍보가 된 한국의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는 의료서비스접근성과 의료비 보장(그것마저 제한적이다)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건강권에 대한 논의는 일천하다. 명확하게 정립된 개념은 없다. 다만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권에 대해서 '단순히 질병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라고 규정했다. 보다 넓게는 인권과 일맥상통한다.

의료접근성 보장과 질병 치료에 국한된 한국의 의료보장제도(건강보험제도)는 WHO가 정의한 건강권 개념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제한적이고 그마저도 민간 주도로 구축된 의료인프라와 의료비 보장이 온전한 건강권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담보하지 못한다. 오히려 건강보험제도의 불완전한 의료보장 수준은 건강의 상업화를 부추기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의료접근성과 의료비 보장에 국한된 건강보험제도가 의료영리화의 빌미를 제공한다. 병원들이 환자를 상대로 수익성 추구를 강화하는 상황을 정당화한다. 실손의료보험의 활성화와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허용 등의 정책이 이를 방증한다.

정부는 의료를 '자본과 시장'의 영역으로 내몰려고 혈안이다.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IT인프라를 기반으로 헬스케어 산업을 육성하고, '의료 한류' 운운하며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실체도 불분명한 '의료세계화' 비전이 보건복지부가 갖고 있는 한국의료의 미래상이다. 그러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수준을 한참 밑도는 공공의료 비중과 건강보험 보장률 수치의 세계화에는 소극적이다. 낮도깨비 같은 의료세계화 비전이다. 심지어 부실한 공공의료 인프라와 건강보험제도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를 개선하는 대안으로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하는 해괴함마저 보인다.

총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의료환경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건강보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쉽지 않은 문제다. 개혁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 의료계가 지난 수십 년간 의료전달체계와 저수가 문제를 외쳤지만 반응이 없다.  건강보험제도에 주술처럼 걸린 '1977년 패러다임'을 깨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문제는 사회적 공감대다.

저수가-저급여-저수가 구조를 깨려면 건강보혐료율을 높이는 게 선결 과제다. 한국의 건강보험료율은 6% 수준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9~10%)에 접근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더 냈을 때 얼마나 건강권이 확대되고, 그렇게 해서 삶의 질이 어떻게 나아질까에 대한 구체적인 설득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오로지 정치적인 이유로 이런 설득에 나서기를 회피하고 있다. 강보험료 인상에 따른 국민의 저항감부터 먼저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빠듯한 서민의 살림살이에서 보험료 인상은 '제로 섬(zero sum) 게임'을 요구한다. 더 내는 보험료만큼 다른 소비를 포기해야 한다. 설득이 쉽지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보건의료 분야로 한정해 건강보험제도 개혁을 논하면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의료보장의 개념을 건강보험제도와 의료정책, 노동환경, 경제, 문화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한국 노동자의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은 OECD 회원국가운데 가장 길지만 소득 수준은 하위권이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몸이 아파도 병원을 방문할 시간조차 내기가 힘들다. 힘들게 시간을 내서 병원을 찾으면 진료와 검사, 치료가 빨리 해주기를 요구하게 된다. 의료비에 대한 부담감도 만만치 않다. 의사들이 한국의 검사나 수술 관련 수가가 외국에 비해 터무니 없이 낮다고 하지만, 그 터무니없이 낮은 비용조차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부담이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고 의사가 조언을 해도 쉽게 따를 수 없다. 고용불안은 커지고, 실업에 다른 복지인프라는 열악한 상황에서 '아프면 쉰다'는 건 곧 직장을 잃게 되고 급격한 소득감소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소득양극화 문제의 개선과 의료보장제도의 확충을 연계해서 고민해야 한다. 소득과 교육 수준에 따른 건강불평등의 심화는 이미 여러 연구와 통계를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사회안전망으로써 의료보장제도 확충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의료계와 의료인의 관심이 크게 요구된다. 환자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이 개선되고, 소득분배의 형평성이 개선될 때 ‘적정 부담-적정 급여-적정 수가’로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보건의료, 노동, 경제, 사회, 문화를 두루 살핀 의료보장체계가 필요하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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