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인터뷰 the만나다
[The 만나다] 핵의학의 달인을 더 만나다

이명철(서울대의대 핵의학교실 교수)


서울의대 핵의학교실 이명철 교수는 어린 시절 피부병이 심했다. 그래서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덮고잔 이불이 피고름 범벅이 되곤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았고, 기적적으로 완치됐다. 이후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서울의대 본과 4학년 때 내과학교실의 고창순 교수를 우연히 만나면서 핵의학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 교수는 그로부터 30년 동안 핵의학 전문의제도 도입 등 국내 핵의학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큰 몫을 했다.

지난달 28일 이 교수를 만나기 위해 혜화동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100년만에 가장 포근했던 겨울 날씨때문인지 오고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무척 가벼웠다. 그래도 겨울해는 짧았다. 병원 정문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5시쯤이었는데, 오후 내내 따뜻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온기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함춘회관을 지나 부지런히 오르막길을 걸어 본관에 다다랐다. 이 교수의 연구실은 2층이다. 연구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인기척이 나자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던 이 교수가 얼른 고개를 들었다. 노교수의 위엄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띄면서 기자를 맞았다.

그의 연구실은 노교수의 관록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생동감이 넘쳤다. 책장마다 빼곡이 꽂혀 있는 전공서적과 벽에 걸린 이 교수 자신의 캐리커쳐 액자라든지 하는 소품들이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그가 내민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독특한 명함에 눈길이 갔다.

“이 명함, 사연이 많아요. 직접 이미지편집 프로그램을 써서 제 사진 누끼(사진에서 실물을 따는 작업)를 땄죠. 블러 효과를 너무 진하게 주면 안그래도 돌출된 광대뼈가 더 나와 보여서…어쨌든 신경 많이 썼어요.(웃음)”  

이 교수는 세계핵의학회 학술대회 등 굵직굵직한 행사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명함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한다.

“이름 얘기하고 보통 명함만 주고 받으면 금새 잊혀져요. 하지만 특별한 사진이 담긴 명함을 기억하는 학회 관계자들은 의외로 많더라고요.”

명함 하나에도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그가 다음으로 강조한 건 리더십이었다. 유능한 핵의학 전문의가 되려면 무엇보다 사람을 중재하고 협상하는 리더십이 필수라는 거다. 실제로 핵의학은 방사성동위원소 관련 기기를 다루다보니 엔지니어는 물론 생화학자, 약학자 등 다양한 직종들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결국 인간관계였다. 스케줄이 빼곡이 적힌 수첩을 꺼내들며 매일 점심, 저녁 약속을 다른 사람과 한다고 했다. 오늘은 기자가 주인공이라고 한다. 순간 순간을 정으로 대하는 이 교수의 배려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게 인간관계의 달인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나 싶었다.

인터뷰 도중 이 교수의 스마트폰 벨소리가 수시로 울렸다. 오늘 병원장으로 임명된 지인, 주말에 남산 산행을 같이 하기로 한 동료 교수, 다른 파트로 자리를 옮긴 일간지 기자 등등. 그들과 일일이 농을 주고 받는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시선을 줄 곳이 마땅치 않아 눈길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 교수의 가족사진을 보게 됐다. 통화가 끝난 그에게 매년 보내는 연하장 얘기를 해달라고 청했다.(인터뷰하러 가기 전에 이 교수가 해마다 연말이면 가족사진이 들어간 연하장을 지인들에게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기자 양반에겐 보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수? 연말이면 두가지 연례 행사가 있죠. 하나는 가족사진을 찍는 것, 또 하나는 그 사진을 붙여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는 거죠. 많이 보낼 때는 국내외로 7~800장 정도.”

이 교수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지금까지 보낸 연하장들을 주섬주섬 챙겨왔다. 1987년부터 25년 동안 매년 꼬박꼬박 보내 연하장을 보니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해외학회에 참석했더니 자신의 아내를 한번도 보지 못한 해외학회 관계자들이 다들 매년 본 것처럼 아는 척을 하더라고 우스개 소리를 던졌다. 

각고의 노력 끝에 핵의학 전문의제도 도입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느새 바깥이 어둑어둑해졌다. 이제 꼭 듣고 싶은 얘기를 물어야겠기에 화제를 바꿨다.

“핵의학과 전문의를 도입하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충이 많으셨겠어요.”

“많다뿐입니까. 1995년 1월 이전엔 병원 내 핵의학과 간판을 달면 불법이었어요. 의료법상 전문 진료과에 포함돼 있지 않았던거예요. 합법적으로 전문의를 양성할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핵의학과 전문의제도 도입에) 반대가 많았어요. 방사선과, 임상병리과, 내과에서 반길리 없었죠. 당시 의학협회(현 의사협회)나 보사부(현 복지부) 등을 비롯한 의료계 전반에 걸쳐 다른 전문과목이 추가되는 것을 못마땅해 했던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이 교수는 의학협회 관계자와 보사부에 핵의학 전문의제도 도입과 관련한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는 은밀한(?) 작업을 했다고 한다. 더 자세한 내막은 지면상 공개할 수 없음을 양해바란다. 그런 노력 끝에 복지부는 1995년 1월 핵의학을 전문 진료과목으로 추가했고, 1996년 국내 첫 핵의학 전문의가 배출됐다.

천신만고 끝에 탄생한 핵의학 전문의제도는 이후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우리나라 핵의학 수준은 연간 논문 발표 수로 보면 세계 4위예요. 하지만 회원 1인당 논문수로 보면 미국(0.02), 독일(0.04), 일본(0.09) 보다 월등히 높은 0.2건으로 1위라고 볼 수 있죠. 특히 서울의대 핵의학과는 세계 핵의학 관련 기관 중 5위 정도…”

이 교수는 20년 동안 고속성장해 온 핵의학을 높이 평가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세계적인 위상이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이나 정부는 물론 병원 내부에서조차 핵의학 인지도는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의료사업으로서 핵의학의 입지는 아직도 많이 미흡한 편입니다. 그 이유는 정부 지원체계가 약한데다 CT나 MRI, 방사선치료처럼 필수의료기술로 인정(WHO 기준)받지 못하고 있어서죠. 의사들도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핵의학검사에 무지한 편이죠. 이러다 보니 정부 지원은 힘을 받지 못하고, 대중적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자연스럽게 이 교수의 발언은 후배들을 향한 조언으로 이어졌다.

“요즘 후배들은 온실속 화초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잘 하고 있지만 그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핵의학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도 그중 하나겠죠. 이를 위해 아시아 국가 등 가난한 나라를 원조하는 것을 주문하는 겁니다. 이들 국가에서 핵의학이 건강증진에 활용돼야 향후 지속가능한한 의료기술로 편입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임상의사와 정부, 관련기관 간의 공조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인터뷰 내내 기자가 가장 궁금했던 게 있었다. 핵의학이 발전한 미래엔 도대체 어떤 질환을 고칠 수 있고, 의료의 질은 얼마나 올라가는 걸까? 쉽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각종 암의 조기진단이나 재발 조기발견률이 올라가는 거예요. 약물치료 후 치료 효과도 지금보다 훨씬 빨리 확인이 가능해져요.

암환자의 경우 불필요한 항암치료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요. 현재는 신약개발 임상시험 절차가 복잡하죠? 분자영상의학(molecular imaging)을 신약개발에 적용하면 약물을 투여했을 경우 세포의 반응을 직접 관찰하고 약효를 시각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 임상기간을 최대한 앞당길 수 있죠. 동물실험도 필요없게 되는 겁니다.”

마지막 질문이라 여겼던 이 교수는 서둘러 일어서자고 했다. 잘 아는 간장게장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식당으로 가던 차 안에서 그가 들려준 ‘아버지론’은 인상적이었다.

“살아오면서 가족에게 못해 준 게 많아요. 결혼 30주년되던 날 밤 아내가 ‘가족보다 사람들이 더 좋냐’고 핀잔을 주던 기억이 나네요. 그럼에도 자식들에게는 큰 꿈을 가지고, 항상 변화하라고 강조하죠. 그리고 세상 모든 것과 네트워킹을 하라고 아들과 술잔 기울일때마다 얘기하곤 해요. 소설가 최인호 씨가 말한 ‘엄격한 아버지’는 글렀고, 소통하는 아버지가 되는 건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아요. 저만의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이명철 교수는?

1981~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1990~1996 서울대학교병원핵의학과 과장, 서울대학교 환경안전연구소 연구부장1993~1999 대한핵의학회 이사장1997~1998 서울의대 핵의학교실 주임교수1997~2003 한국원자력연구소 이사1997~2000 대한의학회 이사1997~ 대한의용생체공학회 회장, 명예회장2002~2006 세계핵의학회 회장2001~ 아시아지역핵의학협력기구 의장, 한국방사성 동위원소협회 부회장2002~2006 세계핵의학회 회장2010~ 한국동위원소협회 회장2010~ 서울대학교 발전기금재단 부이사장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의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