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전국보건의료노조

지방의 모 민간종합병원 간호사 A씨는 요즘 들어 부쩍 졸음이 늘었다. 간호사 대기실에 앉기만 하면 졸음이 몰려오고 심지어 코까지 고는 일도 생겼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달력을 들여다보니 이달 들어 10번 가까이 야간 근무를 한 것으로 표시돼있다.반복되는 3교대 근무와 야간 근무 투입, 돌보는 환자수도 30명 가까이 이르다보니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기만 하다. 며칠 전 야간 근무 때는 환자에게 주사액을 바꿔서 투여할 뻔해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공개한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수와 의료인력, 병상수, 특수․고가 의료장비 등록현황을 살펴보면 2000년부터 10년 동안 의료기관은 2만여개(32.2%)가 증가했고, 인구 1천명당 의사수․병상수는 각각 0.5명, 4.55개가 늘었다.

반면 2010년 기준으로 인구 1,000명당 의료인력은 2.01명으로 2008년 OECD 평균 3.11명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간호사수는 OECD 평균 6.74명에 비해 현저히 낮은 2.37명에 그쳤다.

전국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올해 간호사 면허 등록수는 29만명에 이르지만 실제로 근무하는 인원은 12만명인 것으로 집계돼 의료인력 부족현상을 단적으로 입증했다.

의료인력 부족은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부족한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대하기 위해서는 근무시간과 담당 환자수를 늘릴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과로가 누적되면 자칫 업무상 실수로 이어져 환자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보건노조가 올 2월부터 3월까지 의료인력 1만9,3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부서인력이 적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66.8점, ‘과도한 업무로 인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견이 67.8점, ‘인력부족으로 재해 및 질병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의견은 58.8점으로 조사됐다. (100점에 가까울수록 인력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

경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정백근 교수는 “과도한 업무로 인해 발생하는 간호사들의 증상을 분석해본 결과 스트레스 68.7%, 전신피로 66.0%, 어깨·목·상지·하지 통증 62.1%, 근육통허리통증 60.2%로 나타났다”며 “두통과 불면증, 우울증 등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으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기는 전공의도 마찬가지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김일호 회장은 지난달 5일 열린 젊은의사 포럼을 통해 “수련의 신분인 전공의들의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인해 진료의 질이 저하되고 의료과실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인력으로 인한 심각성이 대두되자 이를 법으로 제정해 해결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몇해 전부터 인력법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온 보건노조는 조만간 ‘보건의료인력특별법 발의’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이에 앞서 보건노조는 12월 1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리는 ‘보건의료인력특별법 발의를 위한 워크숍’을 통해 법제정 논의를 구체화시킬 계획이다.

이날 논의될 보건의료인력특별법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보건의료인력총괄심의위원회’를 구성해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규정하고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통해 보건의료인력의 정원기준, 수급대책, 노동조건 개선과 복지향상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별도 인력전담기구인 가칭 ‘보건의료인력원’을 설립, 의료인력에 대한 실태조사와 수급대책, 직종별 업무분장과 인력기준마련 등의 역할을 담당토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보건노조 측은 “워크숍에서 나온 토론결과와 법률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이번 국회 회기내에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보건의료인력특별법을 찬성하는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전개해 차기 국회와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전 조직적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인력법의 핵심은 정부 차원에서 인력을 늘리고 관리하자는 것인데 의료기관 종별 편차가 극심한 상황에서 각각에 맞는 기준과 재원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 임서영 정책부장은 “당장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의료현장의 의견수렴 및 각계와 논의를 거쳐 법안을 구체화하고 재정 구조의 문제점을 수정‧보완해 나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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