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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끄럽다, ‘의경 에이즈 양성반응’ 기사를 보자니…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6.05.2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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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서울시내에서 근무하는 한 의무경찰이 에이즈 양성 반응을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다'지난 24일 종합일간지와 공중파 방송 뉴스를 통해 한 의무경찰이 '에이즈 양성 반응'을 보여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거의 모든 기사에 '00소속 의경 에이즈 양성반응…병원 후송'이란 제목이 붙었다. 심지어 '긴급 후송'됐다고 한다.

기가 막히다. 이런 내용이 왜 기사화 됐는지는 둘째치고, 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감염과 AIDS(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는 엉터리 기사라는 점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보도된 기사를 보면 '이 의경은 단체 헌혈에 참여한 뒤 헌혈 결과를 통보받는 과정에서 감염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헌혈 전 실시하는 혈액검사를 통해 의심 진단을 받은 것 같다. 우선 이 부분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흔히 헌혈을 하면 HIV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헌혈자 혈액정보 통보서’에는 HIV 검사 결과를 넣지 않는다. 헌혈을 통해 HIV검사 결과를 알려 줄 경우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 의경은 헌혈 결과를 통보받는 과정에서 알게됐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다만, 현행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8조 제2항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관한 검진을 한 자가 군(軍), 교정시설 등 공동생활자인 경우에는 해당 기관의 장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검진결과 통보는 비밀이 유지될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이런 내용이 어떻게 기사화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다수 매체가 기사 제목으로 단 '에이즈 양성 반응'이라는 표현은 부끄럽기조차 하다. '에이즈 양성 반응'이란 제목을 달았다는 것은 HIV와 AIDS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걸 드러낸 꼴이다. HIV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인체 내에 들어온 상태를 'HIV 감염'이라고 한다. HIV에 감염된 이후 면역체계가 손상되고, 그로 인해 감염증, 암 등의 에이즈 정의질환이 나타난 감염인을 AIDS 환자라고 한다. HIV 감염됐다고 전부 AIDS 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즈 양성 반응'이란 표현은 맞지 않다. 그나마 덜 부끄러우려면 'HIV 양성 반응'이라고 해야 한다.

이 의경이 헌혈 전 혈액검사를 통해 HIV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감염 확진 여부는 단정할 수 없다. 위양성(false positive 거짓 양성)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도보건환경연구원이나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면역결핍연구실의 검사를 거쳐 최종 확진을 받게 된다. 통계상 이 의경이 HIV에 감염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50% 정도다. 설령 HIV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개인의 질병에 관한 사안을 기사화한 까닭을 모르겠다.(질병관리본부를 통해 파악해 본 결과, 관련 기사의 내용에서 부정확하거나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제대로 확인했더라면 보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사실 진짜 문제는 이런 기사가 쏟아져 나오게끔 만든 그 이면에 숨겨진 것들이다. 여기에는 HIV 감염과 AIDS 환자에 대한 편견과 무지, 차별적 인식이 고스란히 내포돼 있다.  HIV 감염인과 AIDS 환자에게 찍힌 사회적 낙인(stigma)이 기사로 드러난 셈이다. 개인의 병력을 이유로 한 차별, 즉 병력차별 문제는 개인의 신체적 결함이나 과거 질병을 앓았거나 현재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란 편견과 오해를 기반으로 차별을 정당화한다.

감염 경로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질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기반으로 한 차별의 정당화는 의외로 견고하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감염인은 사회로부터 분리하고, 배제하고, 구별짓는 시스템이 은연중에 작동해 왔다. 채용신체검사나 직장검진에 HIV 항체검사가 마치 필수항목처럼 포함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병원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HIV 감염인에 대한 치료 거부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이런 모든 차별과 배제에 합리적이거나 의학적인 근거가 없음에도 그렇게 구분하고 격리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차별과 배제를 이성적인 조치인 것처럼 착각한다. 여기에 '성소수자 혐오'까지 더해지면 답이 없다.

HIV는 일상생활을 통해 감염되지 않는다. 항HIV 약물을 이용한 치료법이 발달하면서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처럼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의학계의 판단이다. 실제로 HIV 감염인의 평균수명은 감염 뒤 20~30년이 넘는다. 그만큼 HIV 감염인이 겪어야 하는 편결과 차별, 그로 인해 사회로부터 격리 당하는 삶이 길어진다는 의미다.

치료법의 발달 속도에 비해 사회적 인식 수준의 진화가 너무 더디다. 차별은 점점 고착화 되고, 감염인을 경제적 빈곤층으로 떨어뜨린다. "효과 좋은 치료제가 나와서 죽진 않겠지만…, 그 전에 돈이 없어 죽을 거 같아요"라고 그들이 말한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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