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여러 가지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다제내성균'이 글로벌 공중보건의 심각한 위협 요소가 될 것이란 경고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4년 항생제 내성에 관한 최초의 글로벌 보고서를 통해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세계는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박테리아 때문에 큰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며 심각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대부분의 국가에서 항생제에 내성을 보인 사례가 발견됐으며, 특히 대장균의 경우 제3세대 항생제인 세팔로스포린계에도 내성을 보이는 균이 발견된 국가가 한국을 포함해 86개국에 달했다.

항생제 내성 문제 대응의 핵심은 항생제 적정 사용과 복용, 국가 차원의 내성균 예방관리, 그리고 새로운 치료제 개발 등 3가지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13일 항생제 내성균에 대응하기 위해의료단체, 학·협회 및 기관, 환자·소비자단체, 관계 부처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이 협의체를 통해 ▲감시체계 강화를 통한 내성균 조기 인지 ▲항생제 적정 사용으로 내성균 발생 방지 ▲내성균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감염예방관리 ▲연구개발, 국제협력 및 관리운영체계 강화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복지부는 협의체 출범 소식을 전하는 보도자료에 '국가 차원의 강력한 항생제 내성 대책으로 슈퍼박테리아 막는다!'란 타이틀을 달았다.

2016년 5월 13일자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중에서 갈무리.

항생제 내성 대책을 세워서 '슈퍼박테리아'를 막겠다는 표현을 썼다. 특히 다제내성균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철저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슈퍼박테리아라는 표현이 등장하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슈퍼박테리아라는 용어는 1996년 일본에서 VRSA(반코마이신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이 처음으로 보고 되면서 등장했다. 인류가 개발한 가장 강력한 항생제인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보인 VRSA를 슈퍼박테리아라고 부른 것이다.

그 이후부터 언론을 통해 자주 슈퍼박테리아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사회적으로 항생제 내성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슈퍼박테리아라는 용어가 남발되고, 지난친 공중보건 위기감과 공포심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일면서 보건당국은 슈퍼박테리아라는 표현 대신 '다제내성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보건당국이 슈퍼박테리아는 용어에 얼마나 민감한지는 그동안 여러 차례 나온 복지부 보도자료나 해명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복지부가 지난 4월 15일 정진엽 장관의 ‘항생제내성 아시아 장관회의’ 참석과 관련된 소식을 전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항생제 내성'에 관한 용어설명을 첨부해 놓았다.

2016년 4월 15일자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중에서 갈무리.

복지부 설명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이란 세균 등이 항생제에 대해 저항능력이 생겨 생존 혹은 증식 되는 것으로 감염질환 치료가 어려워진 상태를 총칭한다.

복지부는 "우리나라에서는 반코마이신내성황색포도알균(VRSA), 반코마이신내성장알균(VRE) 등 다제내성균 6종을 감염병 예방·관리법에 ‘의료관련감염병’ 으로 지정해 놓았다"며 "다제내성균(다제내성세균)이란 세균이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나타내어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것이나 감염시 감수성을 나타내는 다른 계열의 항생제로 치료되며, 슈퍼박테리아라고 말하는 것은 치료가능한 항생제가 없는 세균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 9월에는 한 방송국에서 상급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표본감시체계를 통해 수집한 다제내성균 6종 통계 자료를 인용해 '5000명 이상의 슈퍼박테리아가 감염 환자가 나왔다'는 보도를 했다.

그러자 복지부는 이 기사와 관련된 해명자료를 통해 "슈퍼박테리아란 언론 등에서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을 부르는 명칭이며 통상적으로 과학용어라고 할 수 없다"며 "다제내성균은 치료제가 없는 슈퍼박테리아와 달리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콜리스틴, 티거사이클린)가 있으므로 다제내성균을 슈퍼박테리아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슈퍼박테리아'라는 말이 과학용어가 아니라는 단정적인 표현까지 썼다.

2011년 9월 7일자 보건복지부 보도설명자료 중에서 갈무리.

이보다 앞서 2010년 12월에는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 환자가 발견되면서 언론이 슈퍼박테리아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복지부는 곧바로 해명자료를 내고 슈퍼박테리아라는 표현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2010년 12월 15일자 설명자료를 통해 "소위 ‘슈퍼박테리아’라는 용어는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보여서 치료가 되는 항생제가 전혀 없다는 의미인데 NDM-1 CRE는 콜리스틴이나 티거사이클린이라는 항생제로 치료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슈퍼박테리아라는 용어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복지부가 느닷없이 국가 차원의 항생제 내성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슈퍼박테리아를 막는다'고 요란(?)을 떨었다.

앞서 복지부의 설명을 빌리자면 '비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부적합한 표현을 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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