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책읽기 / 김세연 지음 / 봄풀출판 펴냄, 2015년

[라포르시안] 네이버가 2008년부터 운영해오던 파워블로그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파워블로그 제도가 블로그 문화의 다양성을 대변하기에 부족했다고’라고는 했지만, ‘파워블로거들의 지나친 상업 활동’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제어할 마땅한 장치를 마련할 수 없었던 한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관련 기사: “‘블로거지’들이 망친 파워블로그… 끝내 제 무덤 파다” 참조)

생뚱맞아 보이는 파워블로거제도의 폐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양심선언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독서 후기를 꾸준히 정리하다보니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을 기회가 적지 않습니다. 먼저 읽은 사람의 후기가 좋아서 책을 사게 되는 분도 많기 때문에 생긴 출판계의 관행일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일부러 혹은 저도 모르게 후기의 내용이 긍정적인 색채를 띠기 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독서 후기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 책을 샀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심지어는 ‘이건 아니잖아?’한다면 잘못 쓴 후기에 낚였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독서 후기 쓰는 일이 어려워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4년이 넘게 [북소리]를 이어온 것은 아무래도 생각이 모자라거나 얼굴이 두껍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언젠가부터 저자와는 다른 제 생각을 후기에 적기 시작했던 일입니다. 설사 그 분야의 대가의 책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독서 후기라는 것이 책을 읽은 사람의 생각을 적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아무래도 책을 꾸준하게 읽음으로 해서 쌓인 내공(?)의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즈음에는 아예 저자가 전하려는 핵심을 간추리려는 노력만큼 저자의 주장에 문제는 없는지 찾는 데도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을 때도 예외 없이 작동하게 되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 새로운 앎을 얻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새로운 앎이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책을 읽지 않음만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을 일깨우는 책을 오늘 소개하려 합니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드는 독서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김세연의 <비판적 책읽기>입니다. 이 책의 기획의도가 표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있습니다.

“성공하고 싶은가? 그래서 책을 읽는가? 책을 많이 읽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있다. 그러나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비판하고 평가하지 못하면 성공은커녕 어제와 똑같은 오늘, 달라지지 않는 내일을 보게 될 뿐이다. 의심하지 않는 잘못된 믿음과 사회의 수많은 편견, 책에 부여된 권위를 뿌리치고 비판적으로 읽기 시작해보라. 책 속 지식이 온전히 내 것이 되고,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서 어제와는 달라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성공만을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비판적으로 책읽기는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비판적 책읽기는 분명 좋은 책 읽는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글쓰기와 논술강의 그리고 작가로 활동한다는데, 막상 책을 읽다보면 구어체에 가깝고 거칠다는 느낌이 들면서 때로는 저자가 주장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저자가 이 글을 읽으면 섭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라고 주문하고 있는 만큼 자신의 책이 비판적으로 읽힐 수도 있다고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핵심인 ‘비판적 책읽기’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책의 얼개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6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책에는 책을 읽는 이유, 비판적 책읽기란, 비판적 책읽기를 가로막는 것, 책을 구별하고 읽는 방법, 비판적으로 책 읽는 방법, 그리고 비판적 책읽기 다음에 할 일 등을 담았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가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몰아가는 저자는 ‘당신이 책을 읽는 이유가 순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라고 했지만,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집어 드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가까운 친구의 호들갑으로 호기심이 생겨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순수하지 않은 동기로 책을 읽을 것이라는 저자의 추측에는 공감하지 않을 뿐이며, ‘믿음을 강요하는 책을 읽으면 독자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33쪽)’라는 저자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사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있는 책들 가운데 제가 읽은 책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고, 장안에 화제를 부른 영화들은 대부분 보지 않은 것을 보면 저는 스스로를 왕따 시키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문체나 글 흐름이 때로는 거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문단에서 주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보면  글쓰기의 핵심은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책읽기를 통하여 마주하게 되는 저자의 논리와 생각을 나의 생각과 비교하여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거나 바꾸게 되는 것인데, 특히 생각이 바뀌게 되면 인생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저자가 정치적 성향을 너무 드러내는 것 같아 불편했다는데, 특히 성향이 다른 편을 보는데 있어 편협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북한에 대하여 “근대국가의 탄생 이후 유래 없는 정권의 3새 세습을 이룬 독재국가(67쪽)”라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점을 어느 정도는 감안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판이 가능한가 하는 점에 독재국가를 정의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3공화국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하여 주민등록법을 도입했다는 주장은 쉽게 공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해석을 하게 된 계기가 대학시절 헌법학을 강의하던 교수님이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는 50대인 사람이 있다’라고 소개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생신고가 되면 주민번호가 자동으로 부여되니 말입니다. 주민번호가 없으면 생활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우리나라 아닙니까? 주민번호가 없으면 의무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이 군대의 교육방식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대한민국 군대가 창설되기 이전에 일본의 식민지배시절에 이미 만들어진 것이니 선후를 거꾸로 따지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공부하던 학교나 저자가 복무하던 군대는 시간적으로 볼 때 이미 권위를 앞세우던 과거와는 달리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상급생이나 상급자의 눈치나 보던 시절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믿음과, 편견과 권위의식이야 말로 비판의식을 고양시키는데 있어 절대적인 적이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믿음으로부터 편견이 생겨나고, 편견은 다시 권위를 내세우는 주장을 믿게 만드는 순환구조를 만들게 됩니다. 저자의 권위를 너무 의식하다보면 비판적 책읽기가 어려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책읽기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럼 비판적 독서를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저자는 비판적 책읽기의 시작은 ‘이해’라고 했습니다. 책을 이해하려면 문장 단위로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차’라는 지도에 따라 중요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구분을 구별하면서 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의 설명이 모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적절하게 질문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분명치 않은 것이 누구에게 질문을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읽어가다 보면 저자가 책 읽는 이를 위한 설명이 뒤따를 것이고, 그 설명으로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면 저자나 혹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볼 일입니다.

참고로 루이스 세뿔베다가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서 소개한 흥미로운 책읽기 방법을 소개합니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연애소설 읽는 노인 45쪽, 열린책들 2009년) 물론 연애소설이기는 합니다만, 생각해볼 점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옛날 천자문을 음독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듯 합니다. ‘한 가지 책을 백번 쯤 되풀이해서 읽으면 분명치 않던 의미가 저절로 환해진다’라는 옛 선비의 독서법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본격적으로 비판적 책읽기 방법으로 넘어가면, 일단 의심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의심이 있어야 비판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주장, 이유, 근거 그리고 전제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읽은 내용을 잘 요약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음 단계는 주장에 들어있는 실질적인 논리를 비판하는 일입니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종합해보면, 1. 이유와 주장의 상관관계를 검토한다, 2. 이유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타당한지 판단한다, 3. 그 주장의 전제는 무엇인지 파악한다, 4.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201쪽). 중요한 점은 누군가를 비판할 때는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이 제대로 되려면 오류를 피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다섯 가지 오류의 원인을 들었습니다. 1. 바로 직전 원인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류, 2. 눈에 보이는 원인만으로 판단하려는 오류, 3. 결과와 원인을 균등하게 하려는 오류, 4. 좋아하는 결과에 원인을 맞추려는 오류, 5. 진영논리에 매몰된 오류, 등입니다.(214-218쪽) 제목만 읽어도 어떤 의미인지 개략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아이젠버그 경영대학원의 토마스 키다교수가 <생각의 오류>에서 밝힌 오류를 초래하는 5 가지의 인간의 천성이 생각의 오류를 낳는 다는 주장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1.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2. 확인하고 싶어한다, 3.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4.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6.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다. 등입니다.

마지막 결정적으로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누군가의 주장을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고 나의 주관을 확실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그 일은 자신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즉 누군가의 주장을 의심하고 판단한 다음에 가지게 된 나만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점, 책을 읽은 후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비판적 책읽기의 화룡첨정은 독후감쓰기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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