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 어빈 D. 얄롬 지음 / 임옥희 옮김 / 필로소픽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북소리' 연재를 시작하고 두어 달쯤 지난 다음이라서 기억하시는 독자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강원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시는 김선희 교수의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모색해본다는 내용입니다. 리뷰를 마무리하면서 어빈 얄롬 교수의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싶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시에는 책이 절판되어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추측에 머물렀던 것인데, 이번에 읽어보니 확신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인연도 있고, 책을 읽어보니 생각거리가 많아서 북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어빈 얄롬는 세계적인 정신과 의사이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정신과의 명예교수입니다. 정신의학분야의 전문서적도 저술하는 한편 심리치료에 관한 베스트셀러 소설의 작가로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미에 붙여둔 작가노트에는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가 사실과 허구를 잘 엮어낸 팩션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1882년의 빈은 정신요법의 메카이기도 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니체의 절망, 브로이어의 정신적 고뇌, 안나 O(베르타 파펜하임), 루 살로메,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관계, 정신분석 치료법의 동향 등은 1882년 당시 실재했던 사실들이라고 합니다.

출판사가 요약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정신분석 기법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1882년, 성공한 의사 요제프 브로이어는 환자 베르타 파펜하임에 대한 강박적 욕망과 중년의 위기로 절망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묘령의 여인 루 살로메로부터 은밀하게 한 무명 철학자를 치료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환자는 바로 만성적인 편두통과 발작, 루 살로메와의 실연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던 니체였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니체는 치료를 거부하고, 브로이어는 생각 끝에 기발한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의 절망을 니체가 철학으로 치유하고, 니체의 질병은 자신이 의학으로 치료하자는 것. 니체가 이를 수락함으로써 두 사람은 ‘대화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속마음을 감춘 채 치열한 지적 공방을 벌이며 마음의 벽을 높게 쌓던 두 사람은, 차츰 가면을 벗고 각자의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우정이 깊어지는 가운데 브로이어는 마침내 니체의 철학적 상담을 통해 자기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실존적 불안의 실체를 직시하게 되는데….” 이야기의 전개가 물 흐르듯 유연하고, 상황마다의 심리묘사가 뛰어나서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난 다음에도 여운이 길게 남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우선은 김선희 교수가 주장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브로이어박사는 아내와 함께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동안 루 살로메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헤어진 친구 니체 교수가 절망으로 자살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그의 절망을 치료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브로이어 박사는 절망을 의학적 증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모호하고 부정확하며 관념적인 것이라서 의학적 치료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이어 박사가 니체 교수를 맡게 된 것은 아름다운 루 살로메의 부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루 살로메는 브로이어 박사와 니체 교수의 만남을 주선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루 살로메와의 만남과 이별에서 니체는 환희와 절망을 오갔고, 절망을 딛고 일어나 창조를 일구어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루 살로메가 가진 묘한 재능이 일조를 한 셈인데, 그녀는 당대의 수많은 창조적 인물들의 내면에 불을 질러 자극하는 특출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니체가 그랬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랬던 것입니다. 니체와 루 살로메의 관계는 고명섭기자가 <니체극장>에서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고명섭 지음, 니체극장 311-351쪽, 김영사, 2012년).

니체 교수를 진찰한 브로이어 박사는 그의 지독한 편두통 치료를 위하여 입원을 제안하는데, 편두통을 빌미로 니체 교수의 자살의도를 확인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정작 니체 교수가 치료를 거부하고 떠나려 하자 자신의 절망을 니체 교수가 철학으로 치유하고, 니체 교수의 편두통은 자신이 의학으로 치료해보자는 기발한 제안을 하게 됩니다. 브로이어 박사의 절망은 안나 O라는 익명의 젊은 여자환자에게 빠져들었다가 아내의 강압으로 관계를 정리한 뒤에 생긴 것으로 설정하고 니체 교수에게 치료를 부탁한 것입니다. 그런데 니체 교수와 대화를 이어면서 설정했던 절망이 실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의학의 길에 들어서면서 환자와의 감정이 깊어지는 것에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적절한 관계로 윤리적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환자와의 관계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떻든 니체 교수는 브로이어박 사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철학이 인간의 관념적 문제에 대하여 해결방안을 내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응용철학의 영역을 시도하는 셈입니다. 환자진료를 두고 간섭하는 아내와의 갈등이 깊어가고 있는 브로이어박사에게 니체 교수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버리고 자기 인생을 탐구하는데 바쳐야 한다’(288쪽)라고 하면서 사고실험을 해볼 것을 권유합니다. 드디어 브로이어박사는 프로이트 박사에게 최면요법을 부탁하게 됩니다. 스스로 최면상태에 들어 니체 교수가 권유한 자유로의 도피를 경험하려는 것입니다. 최면상태에서 브로이어 박사는 아내 마틸데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집을 떠나 안나O가 입원하고 있는 요양원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향하던 마음이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돌아섭니다. 다음은 아내의 성화로 해고했던 에바를 만나 도움을 얻고자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이미 돌아섰다는 것을 확인하였을 뿐입니다. 브로이어 박사가 향한 곳은 이야기가 시작된 베네치아입니다. 베네치아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자신을 변모시키기 위하여 수염을 깍고 적당한 옷가지를 찾지만 그는 결국 아내 마틸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브로이어는 부자집 딸인 마틸데와 결혼함으로써 사회적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지만, 반대급부적으로 아내가 자신을 구속한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녀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여자들, 다른 삶을 경험할 자유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아내를 떠나 자유를 얻은 상황에서 또 다른 구속을 찾아 안나O 그리고 에바를 찾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진실을 선택해야 한다’라는 니체교 수의 조언대로 아내와의 결혼은 자신이 결정한 선택인 만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결국 브로이어 박사는 니체 교수의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절망을 치유하는데 성공한 셈입니다. 우리 시대에서 많은 브로이어 박사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자신의 절망이 잘못된 생각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찾게 되었다고 말한 브로이어 박사는 그동안 접근하지 못하던 문제, 니체 교수에게 비슷한 문제는 없는가 묻습니다. 루 살로메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압박한 것입니다. 니체교수도 루 살로메와의 관계를 털어놓으면서, 브로이어 교수가 안나O와의 관계로 인한 절망을 치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 또한 루 살로메와의 관계로 절망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브로이어 박사 역시 루 살로메의 요구로 자신이 니체 교수의 진료를 맡게 되었다고 고백하자 니체 교수가 발작을 일으킵니다. 니체 교수를 진정시킨 다음 두 사람은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루 살로메의 실체를 깨닫게 된 니체교수는 눈물을 흘립니다. 루 살로메가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니체 교수는 자신의 눈물에 대하여 홀로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브로이어에게 말하면서 역설적으로 안도감을 느꼈으며, 그러한 느낌을 브로이어와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강렬한 감동 때문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철학자의 눈물을 일반인과는 그 의미까지도 다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에 있어 눈물을 마음을 정화시키는 치료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브로이어 박사와 니체 교수의 이야기에서 욕망의 허상을 깨닫게 된 것도 큰 깨달음입니다만, 어느 의사에게도 중요한 두 가지를 다시 새긴 것도 수확입니다. 의사-환자와의 관계는 적절한 거리가 중요하다는 점은 앞서 말씀드렸고, 두 번째 중요한 점은 의사가 환자의 질병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방식입니다. 니체 교수를 만난 브로이어 박사는 90분에 걸쳐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철저하게 진찰을 합니다. 정리해보면 “우선 환자가 자기의 병에 관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은 다음 체계적으로 각각의 증상을 조사했다. 증상의 처음 양상,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 치료에 대한 반응을 기록했다. 다음 단계는 몸에 있는 모든 기관계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머리끝에서 시작해 점점 내려와 발끝까지 샅샅이 살폈다. (…) 이와 같은 기능검사는 환자의 기억과 일일이 대조를 거쳐 아무 것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 브로이어는 심지어 이미 진단을 확신하는 경우에도 그 어떤 것도 빼먹지 않았다. 다음으로 환자의 병력을 주의 깊게 살폈다. 환자의 어린 시절 건강 상태, 부모와 형제들의 건강상태, 직업 선택, 사회생활, 군 복무, 지리적 이동, 식습관과 여가 시간 선호도 등 생활의 다른 측면들을 샅샅이 살폈다. 마지막 단계는 통찰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지금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었다.(90-91쪽)”

여기 요약한 내용만을 보면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서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이유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중심으로 포괄적인 검사를 진행하고 검사결과에 따라서 문제를 압축해 들어가는 접근방식이 우리나라의 의료현장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와 관련하여 검사실 검사에 대한 브로이어 박사의 견해는 참고할 만합니다. “빈 의대에서는 자네에게 뭘 가르친 게야? 오감으로 검사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프로이트박사? 실험실 테스트는 잊어버리게. 그건 유대인 의학이야. 실험실 결과는 자네가 이미 오감으로 검사한 것을 확인해주는 것뿐일세.(130쪽)” 요즈음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검사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세돌기사와 대국에서 승리함으로써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알파고의 다음 목표가 의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환자를 두고 누가 빠른 시간에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가를 두고 시합을 한다면 이런 방식의 진료에 익숙해진 우리나라의 어느 의사도 알파고를 이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니체 교수의 수많은 저작물에 담긴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보로이어 박사가 니체 교수를 처음 진찰할 때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죽은 자의 최후의 보상은 더 이상 죽지 않으리라!’라는 대목을 인용합니다.(115쪽). 아마도 제가 읽은 <즐거운 지식>이 같은 책이 아닐까 싶어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저자가 인용한 대목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라는 제목으로 된 독일식 압운의 서곡과 모두 5부로 구성된 <즐거운 지식>은 아주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짧은 경구의 형식을, 어떤 것들은 엽편소설(葉篇小說)처럼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를 읽고 난 느낌을 정리해보면, 가볍지 않은 두께만큼이나 생각거리가 많은 책읽기였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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