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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만나다] “부상자 대부분 총상 입은 고등학생…그때 무슨 노래 불렀는지 기억 안나”홍사능(서울대 의대 6회 졸업, 외과전문의)

[라포르시안] 쉽지 않았다. 56년 전에 찍힌 한 장의 흑백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일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1960년 4월 25일자 동아일보 석간(당시 동아일보는 조석간 발행 체제)은 총 2면이었다. 1면과 2면은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난 4.19 혁명과 시위대의 소식으로 빼곡했다. 2면 중앙에는 부정과 불의에 항거해 맨몸으로 뛰쳐나갔다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가족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는 유족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얹혀 있었다. 각 지역의 학생 시위 소식, 희생자 유족이 4.19 당시 발포 명령자를 규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소식도 전했다. 신문 지면이 온통 통곡과 절규, 분노로 가득했다.

그런데 2면의 오른쪽 하단에는 가로로 긴 사진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누워 있는 환자들 앞에서 기타를 치는 의사의 모습이었다. 이 의사는 누구일까? 어떤 사연으로 병실에서 기타를 치는 모습이 찍혔을까? 지난주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신영전 교수가 이 사진을 보여주며 기타를 치는 의사가 누구인지 찾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4.19 혁명 기념일을 앞 둔 시점이라 관심이 갔고, 덜컥 해보겠다고 답했다. 그 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동아일보 기사에는 기타를 치는 의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이대부속병원 의사가 치료의 틈 타서 기타로 부상자들을 위로하는 광경'이라는 간단한 설명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1960년 4월 25일 발행된 동아일보 석간 2명의 사진. 

그래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시 이대부속병원장이었던 고 이기섭 박사와 그 무렵 이화여대 의과대학 외과학교실 부교수로 재직 중이던 이용각 교수가 사진 속 인물과 닮았다는 제보를 받았다. 먼저 고 이기섭 박사의 가족을 어렵사리 찾아 확인했다. 사진 속 인물이 아니었다. 고 이용각 교수를 알만한 의료계 원로인사를 통해 확인했다. 사진 속 인물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기타를 치지 않았다.

4월 19일은 다가오는 데 난감했다. 천운이 따랐는지 지난 18일 늦은 밤, 우연히 이화여대 학보를 찾게 됐다. 1960년 5월 9일자 이대학보에도 부상자를 위해 기타를 치며 위로하는 의사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놀랍게도 그 의사의 이름까지. '홍사능'. 그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지난 19일 홍사능 선생과 연락이 닿았다. 1928년생.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1952년에 졸업했다. 올해 88세의 고령이지만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만큼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관련 기사: 56년 전, 기타를 치며 4.19 혁명 부상자를 위로하던 의사>


- 동아일보 흑백사진 속 인물이 본인이 맞으신가.

"맞다. 그 당시 이대부속병원 외과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었다. 4.19 때 시위대로 나섰다가 다친 학생 수십명이 근무하던 병원으로 후송돼 왔다. 대부분 총상을 입은 고대학생이었다. 병원에는 외과 레지던트가 여러 명 있었다. 이화여대 의대 출신의 여자의사가 많았고, 외과에서 남자는 나 뿐이었다. 부상당한 학생들을 치료했는 데 입원한 병실에 갔더니 기타가 있길래 치게 된 것이다. 그 이전부터 기타를 좀 쳤다. 그 때 여자 신문기자가 와서 그 모습을 보더니 사진을 찍어갔다. 그 사진이 동아일보에 보도됐다."

- 당시 부상당해 병원으로 온 학생들이 고대학생들이었나.

"아니, 고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다. 기억하기로 40~50명 정도가 병원으로 후송돼 왔는데 모두 총상을 입었다. 그 학생들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부상자가 입원해 있는 동안 당시 장면 부통령과 송요찬 참모총장이 병원으로 위문을 왔다. 학생들이 다시 시위로 나설까 걱정이 들기도 해서 그랬던 거 같다."

- 그 때 병실에서 부상자들을 위해 어떤 노래를 불러줬는지 기억하고 계신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병실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줬다. 환자들이 박수를 치고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홍사능 선생의 자녀로부터 그가 기타 뿐만 아니라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 실력도 좋다는 이야기를 추가로 들었다. 원래 성악과를 가고 싶었지만 경성의학전문학교 출신 의사이던 부친의 권유로 의대에 진학하게 됐다고 한다.)

-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보도된 이후 반응이 컸을 것 같은데.

"그랬다. 다른 신문사에서도 병원으로 찾아와 사진을 찍어 갔다. 그 이후에 보도가 됐는 지 모르겠지만…. 당시 30대 초반으로 결혼하기 전이었는데 중매를 서주겠다는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웃음)"

- 당시 부상당해 치료를 받았던 학생들 중에서 계속 연락을 한 이도 있으셨나.

 "그렇지는 않았다. 부상자들은 고등학생이었고, 나이 차도 많다보니 계속 연락을 유지하고 그렇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 동아일보 흑백사진 속 인물을 찾으면서 고 이기섭 병원장과 이용각 교수 두 분이 아닐까 추측하고 확인을 하기도 했다. 그분들 기억하고 계신가.

"당시 나는 외과 레지던트였다. 이기섭 교수는 병원장이었고 이용각 교수는 외과 조수(조교)로 나보다 연배가 많고 하다보니…. 두 분 다 작고했고…."

-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 

"의대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교수 자리는 경쟁도 치열하고. 1961년 결혼을 하고 이듬해 첫째 아들을 낳았다. 지금 안양에 있는 병원에서 안과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1964년에 고향인 충남 서산으로 내려가 의원을 개업했다. 10년 쯤 그곳에서 의원을 운영하다가 서울 신림동으로 옮겨와 개업을 했다. 1980년대 말쯤 의원을 접고 딸 둘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살고 있어서 그곳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20년 정도 살다가 6년 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 서울대 의대 6회 졸업생이시다. 동아쏘시오그룹 강신호 회장,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간이식에 성공한 서울대의대 김수태 명예교수, 민병철 전 서울아산병원장 등 쟁쟁한 분들이 의대 졸업동기인데, 지금도 그분들과 교류를 하시나.

"강신호 회장과도 친했고, 지금도 매달 6일마다 동기모임을 갖고 있다. 100여명의 졸업동기 가운데 40여명 정도가 남아 있다. 몸이 불편하고 하면 또 나오지 않는 사람도 많고, 동기모임을 하면 7~8명 정도 나온다. 강신호 회장이 가장 자주 나오는 편이다."

- 이렇게 연락이 닿아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별일 아닌데 이렇게 기억하고 찾아주니 고맙다. 항상 건강하길 기원하겠다."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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