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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소리] 1992년, 총알이 빗발치는 사라예보 거리의 첼리스트사라예보의 첼리스트 /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펴냄, 2008년
[라포르시안] 지난 가을 발칸여행길에 찾은 모스타르의 곳곳에는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남아 있었습니다. 크로아티아계의 포격으로 스타리 모스트가 무너져 내렸을 때 숨어있던 보스니아사람들까지도 위험을 무릅쓰고 네레트바강으로 나와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 스타리 모스트는 지금은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있습니다만, 도심 곳곳에는 여전히 복구되지 못한 채 폐허로 남아 있는 건물들과 건물벽에 마마자국처럼 남아 있는 총탄자국이 끔찍했을 전쟁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었습니다.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에 사라예보에는 갈 수 없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사라예보는 보스니아전쟁 기간 중인 1992년 4월 5일부터 1996년 2월 29일까지 무려 1,425일 동안 세르비아계인 유고슬라비아 인민군과 스릅스카 공화국군에 의하여 포위되었습니다. 사라예보 포위전은 현대전쟁 사상 가장 긴 기간이라고 합니다. 사라예보를 포위한 세르비아계 병력은 13,000명에 불과했고, 포위된 사라예보에 주둔한 보스니아군은 70,000명이었지만, 무장에서 차이가 있었고, 지형적으로 불리함 때문에 수비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라예보는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서쪽으로만 열려 있는 분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라예보 주변의 고지를 선점한 세르비아 민병대는 대포, 박격포, 전차, 대공포, 중기관총, 로켓 발사기, 지대공미사일 등 중무기로 포격하였을 뿐 아니라 시내의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고 저격수를 동원하여 시민들의 통행을 위협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병력의 열세로 사라예보 점령에 실패한 세르비아계는 사라예보를 봉쇄하고 식량과 의약품의 보급은 물론 전기, 물, 난방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 모두 차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예보 시민들은 투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3개월이 지난 6월말 경 사라예보공항이 안전지역으로 편입되면서 유엔이 지원하는 보급품으로 연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듬해 중반에 완공된 사라예보터널은 포위망을 뚫고 외부세계를 연결하게 됨으로써 도시를 지키는데 필요한 무기와 생활용품을 들여올 수 있었던 것도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터널을 통하여 일부 시민들은 사라예보를 탈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위키피디아. 사라예보 포위전 참조)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사라예보 포위 당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사라예보 필하모닉의 첼리스트, 대학사격팀의 선수였던 애로, 회계사 보조로 일하는 케난, 은퇴를 앞둔 제빵사 드라간 등입니다. 작가는 네 사람의 등장인물을 통하여 세르비아계에 포위된 보스니아 사람들의 절박한 삶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1992년 5월 27일 하루를 연명할 빵을 사기 위하여 빵가게에 길게 줄을 섰던 사람들을 향해 날아온 포탄은 2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고 100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사건현장에 나타난 첼리스트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합니다. 희생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헌정되는 연주는 22일 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세르비아계의 공격에 맞서 저격수로 변신한 애로는 세르비아계 저격수로부터 첼리스트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세르비아계 저격수의 위협은 드라간의 외출에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저격수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건물의 그늘을 따라 걸으면 그나마 안전하지만 도로를 건너야 하는 교차로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차로를 안전하게 건너기 위하여 사람들은 지그재그로 달리거나 100m경주를 하듯 빠르게 달리기 마련입니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사정이 있거나 성미가 급한 사람이 선뜻 나서기도 합니다. 드라간을 통하여 그 순간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을 그려낸 것입니다.

드라간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아내와 열여덟 살된 아들을 이탈리아로 탈출시키고는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드라간을 통해 저자는 한 도시의 소멸과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처음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기억 속의 도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가능한 원래 모습 그대로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 노력했다. (…)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고, 그러던 어느날 자신이 심지어 마음속에서도, 더 이상 도시의 소멸에 저항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주위에 보이는 것만이 단 하나의 현실이었다.(5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머물고 싶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렇게 두려워할 만큼 자신의 삶이 가치가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곧 죽을 수도 있다고 인식하면서도 ‘찾아올 공포에 맞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하여 ‘예스’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놀라기도 합니다.

케난은 정기적으로 도심에서 떨어진 언덕에 있는 양조장으로 물을 뜨러 갑니다. 같은 아파트 아래층에 살고 있는 리스톱스키부인의 몫까지 여러 개의 물통을 챙겨들고, 거리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먼 길입니다. 이러한 케난의 모습을 통하여 당시 사라예보 시민들의 힘든 일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 마침 양조장에 포탄이 떨어져 여러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됩니다. 포탄이 떨어진 현장에서 케난은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포탄이 떨어지자마자 도망친 사람들, 즉 이타심이나 시민의식보다는 자기보호본능이 강한 사람이 있고, 도망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는 살 가망이 있는 사람들을 돕는 시민의식이 투철한 사람 그리고 멍하니 서서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거나 구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 등입니다. 일상처럼 물통을 집으로 나르는 케난은 마지막 유형이라고 하겠습니다. 한순간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그는 자신이 지쳤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원한적도 없고 창조하는데 가담한 적도 없으며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느라 지쳤던 것(213쪽)’입니다.

작가는 네 사람의 등장인물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만, 첼리스트의 경우는 특별한 것 같습니다. 첼리스트가 사고현장에서 연주할 곡목으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고른 이유는 이렇습니다. “폐허가 된 도시 풍경에서 거의 지워졌던 무언가가, 다시 해롭고 가치 있는 것으로 재건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희망을 품는다. 이제 희망은 포위당한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이며, 그마저도 대두분의 사람들에겐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다.(14쪽)” 첼리스트 스스로도 스물두번의 연주를 마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사라예보 시민들이 희망의 끈을 이어갈 수 있도록 북돋워주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써야만 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읽은 세르비아계는 첼리스트를 저격해야만 했던 것이며 보스니아 군에서는 그를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라예보의 페허에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하는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의 모습.

알비노니(1671년-1751년)의 ‘아다지오 G단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이 곡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비발디와 함께 18세기 바로크 시대의 베네치아 악파를 대표하는 알비노니의 전기를 준비하던 밀라노의 음악학자 레모 지아조토(Remo Giazotto)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드레스덴의 국립 도서관(Saxon State Library)에서 필사본 악보조각을 발견한 것이 계가기 되었습니다. 지아조토는 몇 마디의 선율과 베이스를 스케치한 악보조각을 보고 알비노니가 1708년경 작곡한 교회소나타 작품 4의 일부분일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악보를 바탕으로 현재의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된 ‘오르간이 딸린 현악 합주를 위한 아다지오 G단조’를 완성한 것입니다.

파이프오르간의 웅장한 선율에 화답하는 바이올린의 애처로운 선율은 듣는 사람의 가슴을 저리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첼로로 연주하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의 묵직한 선율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세르비아계가 보낸 저격수도 첼리스트의 연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저격수가 조준기로 첼리스트를 겨눈다. 애로는 총을 쏘려다 멈춘다. 저격수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 올려져 있지 않다. (…) 음악은 거의 끝나 가는데, 그는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는다. (…) 그의 고개가 뒤로 약간 젖혀진다. 그의 감긴 눈을 본 그녀는 그가 더 이상 조준기를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가 뭘 하고 있는지 알겠다. 너무도 명백한, 틀릴 여지도 없는 사실이다. 그는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다.(190-191쪽)” 같이 듣고 있는 그녀까지도 슬프게 만드는 음악이었습니다. 무겁고 느린 슬픔, 눈물을 자아내지는 않지만 울고 싶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슬픔 말입니다.

첼리스트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 애로는 세르비아계 저격수를 유인하기 위한 덫을 놓습니다만, 상대편 저격수 역시 자신을 목표로 덫을 놓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다행히 상대방이 쏘기 직전에 발견할 수 있어 죽음을 면하고, 거꾸로 마음을 놓은 상대방을 저격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이 남자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이 남자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교차되면서 많은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케난은 물을 뜨기 위하여 양조장에 갔다가 포격을 당한 이후로 매일 첼리스트의 연주를 들으러 갑니다. 매일 오후 네 시, 그 거리에 도착한 케난은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도시가 다시 살아나고 주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첼리스트가 약속한 스물두 번째 연주가 있던 날, 근처에 몸을 숨긴 애로는 느린 현의 진동을 받아들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연주를 끝낸 첼리스트 역시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고 울었습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첼리스트는 박격포가 떨어진 웅덩이를 채우고 있는 꽃더미로 다가가 그 곳에 첼로활을 떨어뜨립니다. 첼리스트가 사라진 뒤, 애로도 거리로 내려가 첼리스트가 떨어트린 활 옆에 자신의 소총을 내려놓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알리사였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드라간은 세 사람과 동선이 겹치지는 않습니다. 작가가 드라간을 통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사라예보를 지켜보는 국외자의 시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르비아계 저격수들이 좋아하는 건널목에 카메라를 세우고 저격의 순간을 포착하려는 카메라맨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저격의 위험을 인식한 듯 카메라맨은 방탄복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하여 주변을 살피고 있습니다. 길을 건너려다가 카메라맨을 본 한 남자는 길을 건너기에 앞서 옷매무새를 단장하기까지 합니다. 그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저격수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지 총을 쏘지 않는다. 남자가 맞은편에 도착하자, 카메라맨이 실망한 눈치다. 남자가 뛰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실망에 드라간은 화가 나고, 마치 동물원의 짐승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284쪽)” 사라예보의 비극적 상황이 외부세계의 저녁뉴스를 타게 되면 사람들은 끔찍한 참상에 대하여 한마디씩 거들 수는 있겠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드라간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건널목에 총을 맞고 숨져있는 남자를 끌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격수의 표적이 될 수도 있음에 용기를 낸 것입니다. 현실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현장에 남아 있는 끔찍했을 것 같은 당시의 흔적들을 직접 확인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역시 그들과 별 다를 것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런 참상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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