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안전 높이려면 적정 의료인력 확보가 관건…의료인력 양성·배치에 국가 책무 부여

[라포르시안] 4월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포괄간호) 시범사업이 상급종합병원과 서울 소재 병원으로 확대되는 데 이어 오는 7월 말부터 '환자안전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200병상 이상 병원에 설치해야 하는 감염관리실을 중환자실 구비와 관계없이 150병상 이상인 병원은 의무적으로 설치ㆍ운영하도록 하는 '의료관련 감염대책'도 내년 3월을 기점으로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된다.

여기에 작년 12월 국회를 통과를 '전공의특별법'에 따라 주당 80시간 초과 수련 금지 등 수련시간 관련 조항이 오는 2017년 말부터 적용을 앞두고 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나 환자안전법, 의료관련 감염대책, 전공의특별법 등의 공통점은 병원이 해당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을 확보하거나 추가로 인력을 확충토록 의무화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의료기관의 전반적인 환자안전 수준을 높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환자안전을 높이기 위해서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사안이 바로 의료기관의 적정 의료인력 확보다.

환자의 간병비 부담해소를 위해 실시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시행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병원이 필요한 적정 간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환자안전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시행되는 각종 법규와 정책사업 내용. 표 제작: 라포르시안

문제는 가뜩이나 간호인력 구인난을 겪고 있는 지방병원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시행으로 더욱 심각한 인력난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지방병원이 간호사와 의사 등 의료인력난을 겪고 있다. 어렵게 구해도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쉽게 빠져나가는 경우가 흔하다. 병동간호인력 부족으로 입원실을 축소 운영하거나 응급실 운영을 애를 먹는 지방병원도 수두룩하다.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으로 의사와 간호사의 근무강도는 세지고, 병원 경영은 더 악화돼 인력충원과 시설투자는 더 힘들어져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대형병원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시행으로 지방병원의 간호사 인력 유출이 더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지방병원에서는 병동간호인력 부족으로 입원실을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간호인력난이 더욱 심화될 경우 전체적인 의료시스템 붕괴까지 우려된다"고 심각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환자안전법 시행도 병원 입장에서는 큰 고민거리다.

복지부가 지난 2월 말 입법예고한  환자안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안에 따르면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은 2명 이상의 전담인력을, 500병상 미만 종합병원과 200병상 이상 병원·치과병원·한방병원·요양병원은 1명 이상의 전담인력(5년 이상 의사·간호사) 배치를 의무화했다.

환자안전법 시행을 앞두고 병원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가뜩이나 인건비 부담이 높은 상황인데 5년 이상 경력의 환자안전 업무 전담인력을 추가로 배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건비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한국의료질향상학회와 대한병원협회가 공동주최한 '환자안전법 하위법령 제정과 관련한 의견수렴 토론회'에서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환자안전법 시행에 따라 전담인력 의무배치 규정이 시행되면 기존 인력의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며 "그럴 경우 병원 경영 차원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수립한 의료관련 감염대책에 따라 감염관리실 설치 대상 병원이 확대 시행될 경우 인력 확충 부담은 더 커진다.

복지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2017년 4월부터 중환자실이 없는 200병상 이상 병원에 감염관리실 설치가 의무화 되고, 2018년 10월부터는 중환자실 운영과 무관하게 150병상 이상 병원은 의무적으로 감염관리실을 설치·운영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금은 병상 규모에 관계없이 감염관리실에 의사 1명, 간호사 1명, 기타 경험·지식이 있는 사람 1명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2018년 10월부터는 병상 규모에 비례해 감염관리실 근무인력을 늘려서 배치해야 한다.

문제는 감염관리에 따른 적정 수가 반영이 없는 상태에서 감염관리실 설치에 따른 신규 인력 확충은 고스란히 병원의 인건비 부담으로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병원계는 "감염관리 전담 인력 고용을 고려한 감연관리 수가가 신설돼야 한다. 수가와 연계되지 않는 인력고용은 병원에 큰 부담이 되고, 그럴 경우 감염관리실 전담인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감염병 대응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오는 2017년 말부터 전공의특별법에 따른 주당 80시간 초과 수련금지 등의 조항이 본격 적용되면 전공의들의 줄어드는 근무 시간만큼 수련병원의 의사인력 확충 부담이 늘어난다.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을 메울 방안으로 현재 호스피탈리스트(입원환자 전담의) 시범사업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인력 확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가장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시범사업운영평가협의체'가 개최한 호스피탈리스트 시범사업 평가 토론회에서는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호스피탈리스트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비용 부담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됐다.

토론회에서 이우용 의협 의무이사는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의 관건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국민을 설득해야 하고, 안정적인 인력 확보를 위해 보상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가장 노동집약적 업종인 의료분야서 일자리 창출이 미미한 이유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나 환자안전법, 전공의특별법 등의 시행을 통해서 의료기관의 환자안전 수준을 높이는 핵심적인 수단은 바로 적정 의료인력 확보다. 병원내 거의 모든 의료서비스는 의사와 간호사, 의료기사 등 면허를 가진 전문 의료인력에 의해서 제공되는 노동집약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완화와 투자 활성화를 통해서 병원이 스스로 인력고용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건강보험 저수가 체계에서 병원들은 '박리다매'식 의료서비스 제공과 인건비 지출 절감을 통해 경영 수지를 맞추는 데 골몰하고 있다. 적정 의료인력 확보는 언감생심이나 마찬가지다. <관련 기사: 의료분야 새 일자리 만들 ‘진실한 법’ 눈앞에 두고도 ‘서비스법’ 타령만>환자안전을 높이기 위한 적정 의료인력 확보는 의료기관 자율에 맡겨선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문제이니만큼 국가가 이 문제를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지난 11일 국회에서는 전국보건의료노조 주최로 '19대 국회에서 꼭 통과되어야 할 보건의료 관련 법 2제 요청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환자안전법과 전공의특별법,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등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하고, 환자안전 강화라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더 늦추지 말고 19대 국회에서 이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작년 10월 더불어민주당 김용익 의원이 대표발의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은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보건복지부장관은 5년마다 보건의료 인력지원 종합계획 수립 및 연도별 시행계획 수립․시행 ▲보건의료기관 등의 인력지원 및 개선에 필요한 종합적 실태조사 실시 ▲‘보건의료인력지원 심의위원회’ 설치·운영 ▲보건의료 인력기준에 관한 사항 준수 의무 ▲보건의료기관 고용확대 지원, 우수 보건의료인력 지원, 세제 지원 등 각종 지원 조치 ▲보건의료 인력지원 업무를 전담하는 가칭 ‘보건의료인력원’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기관이 적정 의료인력을 고용해 유지할 수 있도록 인력기준을 수립하고 적정한 인력 배치와 고용확대를 위한 지원 등의 정책을 국가가 책임지고 추진하라는 것이다.

의료자원의 핵심인 의료인력 양성과 공급 문제는 지금까지 의료기관에 자율에 맡겨뒀는데 국가가 이 문제를 책임지고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토록 하자는 것이 특별법의 도입 취지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전략기획단장은 "정부는 그동안 보건의료 정책을 수립할 때 건강보험, 의료공급체계, 공공의료, 병상 총량제, 시설과 장비 등에 대해서는 많은 계획과 대책을 제시했다"며 "그러나 단 한 번도 보건의료 인력 문제를 전면적으로 진지하게 검토하거나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단장은 "이미 다른 산업 분야에서는 보건의료인력특별법과 유사한 입법 선례가 다수 존재하고 있다"며 "환자안전을 다루는 보건의료 인력을 교원처럼 국가가 책임지고 양성해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6년은 보건의료 인력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보건의료 분야의 새 일자리 창출도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으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의료관리학교실 이진석 교수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분야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보건의료 일자리의 95%는 병의원에서 만들어진다"며 "그런데 정부의 주장처럼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완화를 통해 병의원 이외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의 수가 지불체계가 병의원의 인력에 대해서는 박하고, 장비에 대해서는 후하게 보장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특별법이 제정된다고 그 자체로 인력창출 효과가 생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보건의료노조 주최로 열린 '19대 국회에서 꼭 통과되어야 할 보건의료 관련 법 2제 요청 긴급 토론회' 모습.

실제로 정부가 의료인력 확보에 관심을 갖고 적극 지원했을 때 그 성과가 입증되기도 했다.

강원도 산하 지방의료원 등이 지난해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를 당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지역거점 공공병원 의료인력 인건비 지원사업이 큰 역할을 했다.

앞서 정부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이 우수 의료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국립대병원 등의 의사인력 파견시 인건비 지원을 통해 의료경쟁력 강화 및 환자 만족도 향상을 꾀할 수 있도록 했다.

인천의료원 조승연 원장은 "지난해 일부 지방의료원이 흑자 경영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지역거점 공공병원 의료인력 인건비 지원사업의 영향이 컸다"며 "이를 통해서 지방의료원의 안정적인 경영은 물론 의료서비스 질도 높이는 효과가 발생했다. 결국 교원양성처럼 정부가 보건의료인력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과 책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보건의료 인력 관리가 국가의 중요한 책무라는 인식이 확립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김동현 교수(메르스 극복 국민연대 사무총장)은 "보건의료 인력 관리가 국가의 주요한 임무라는 인식이 확립돼야 한며,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이 필수"라며 "이와 함께 보건의료 인력의 양적 부족이 의료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대해서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의료 인력 확충을 통해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고 환자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의료기관이 적정 의료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4·13총선이 끝난 후 5월 30일 20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까지 19대의 마지막 임시국회를 통해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은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의 제정을 위해서 4.13 총선 이후 집중투쟁을 전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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