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계량화 된 수치를 통해 회원국의 사회상태를 직간접적으로 측정하는 다양한 통계지표를 생산한다.

한국은 OECD 국가의 주요통계지표 가운데 여러 항목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남녀간 임금 격차 1위'부터 '소득 기준 노인빈곤율 1위',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 1위', 1'인당 연간 노동시간 1위'….

이런 통계지표에서 1위 타이틀은 명예가 아니라 오명이다.

부끄러운 오명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 1위 국가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작년 10월 발표한 '2015 세계 결핵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결핵 발생률은 2013년 인구 10만명당 97명에서 2014년에는 86명으로 11.3% 줄었고, 결핵 유병률은 143명에서 101명으로 29.4%로 감소했다.

결핵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5.2명에서 3.8명으로 26.9% 감소했다. 그러나 한국은 2013~2014년 OECD 국가 중 여전히 결핵 발생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2013년과 2014년에 한국 다음으로 결핵 발생률이 높은 국가인 포르투갈(인구 10만명당 25~26명)과 비교해 보면 'OECD 결핵 발생률 1위' 타이틀은 상당히 오랜 기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연간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세계적으로도 결핵 고위험국으로 분류된 북한과 비슷한 수준이다.

유엔이 지난해 발표한 '2015 대북 인도주의 필요와 우선순위 보고서'를 보면 북한에서는 매년 2,500여명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있다. <보고서 바로가기>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신고된 결핵 신환자는 4만3,088명에 달하고, 결핵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는 2,305명이었다. 북한과 비교해 크게 나을 게 없는 지표다. 

▲ 2013 '결핵예방' TV 공익광고 캡쳐화면

우리나라의 결핵관리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결핵 신환자 중에서 의사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 보건의료인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질병관리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의료인 결핵감염 현황' 자료에 따르면 보건의료인 중에서 결핵 신환자 수는 2012년 117명에서 2013년 214명, 2014년 294명으로 3년간 2.5배로 늘었다.

전체 결핵 신환자 중에서 보건의료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0.3%에서 2013년 0.6%, 2014년 0.8%로 증가하는 추세다.

작년에는 서울과 대전의 산후조리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조무사 등의 직원이 잇달아 결핵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을 빚은 바 있다.  

2014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집단적으로 결핵에 감염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고, 서울의 한 공공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잇달아 결핵에 감염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계명대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에 근무하는 전공의가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동산병원은 지난 18일 대구시 보건당국과 질병관리본부에 결핵환자 발생을 신고했고, 이에 따른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다.

대구에서는 앞서 지난 2014년에도 영남대병원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던 전공의가 결핵에 감염되는 일이 있었다.

결핵 환자나 의심환자 대부분이 민간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병원 종사자의 결핵 감염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해외 결핵환자 유입 뒤늦은 대응결핵관리의 또다른 문제는 해외 결핵환자 유입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유입된 외국인 결핵환자 수는 2009년 637명에서 2014년에는 1,858명으로 5년간 3배나 늘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서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결핵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013년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은 "한국은 결핵환자에 대해 국내 입국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해외유입 결핵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라며 "우리 국민을 결핵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국내에 입국하는 외국인은 입국 전에 결핵검진결과를 도출토록 하고 감염의 우려가 있다고 진단되면 외국인도 강제격리입원치료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수년간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올해 3월부터 뒤늦게 해외유입 결핵관리정책을 강화했다.

법무부는 지난 2일부터 결핵 고위험국의 외국인이 장기체류(91일 이상)비자를 신청할 경우 재외공관이 지정하는 병원에서 발급하는 건강진단서를 제출토록하고, 결핵환자에 대해서는 완치될 때까지 원칙적으로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는 앞서부터 결핵 고위험국 국민이 3~6개월 이상 장기체류를 신청할 경우 비자발급 단계에서 결핵검진결과를 확인하는 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OECD 결핵 발생률 1위 국가인 한국에서는 너무 뒤늦은 대응으로도 볼 수 있다. 

결핵 예방 백신·잠복결핵 진단시약 수급 차질 연례행사처럼 반복결핵 예방 백신과 잠복결핵감염 진단시약의 불안정한 수급도 문제다.

지난해 민간의료기관에서 잠복결핵감염 여부를 진단하기 위한 PPD(Purified Protein Derivative) 시약과 결핵 피내용 백신 수입이 수개월 동안 지연되면서 국가 결핵관리사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우리나라는 국가예방접종사업 대상인 BCG 피내용 백신과 잠복결핵감염 진단에 사용하는 PPD 시약을 모두 덴마크의 SSI사로부터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SSI가 내부적인 사정을 이유로 백신과 PPD 시약의 출하 계획을 수차례 지연하면서 수급에 애를 먹었다.

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전문의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매년 3만명 이상의 결핵 신환자가 발생하고, 연간 2천명 이상의 결핵 환자가 사망하는 결핵 후진국 수준"이라며 "여기에 인구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인해 이들 인구집단에서의 결핵 발생이 증가하고, 다제내성 결핵 증가의 위험도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 결핵관리체계를 효율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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