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제출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대로 보긴 했나…국가의 의료인력 수급 책임 명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관계자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 끝에 박상근 대한병원협회 회장이 앉아 있다. 사진 제공: 청와대

[라포르시안]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연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병원협회도 나서 서비스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청와대와 정부가 서비스법 제정을 촉구하며 내세우는 이유는 바로 새 일자리 창출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서비스법이 제정되면 보건의료 등의 산업에서 69만개의 새 일자리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도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서비스법이 통과되고 2년이 지나면 일자리가 최소 69만개는 창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과 정 장관이 주장하는 서비스법 제정에 따른 새 일자리 창출 효과의 논리는 그 근거도 빈약하거니와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 69만개 창출 효과의 배경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작년 4월 작성한 '서비스업 개혁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보고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KDI는 이 보고서를 한국의 서비스업이 2030년까지 독일 수준으로 발전할 경우 취업자가 15만4300명 늘고, 네덜란드 수준으로 된다면 33만5000명이, 그리고 미국 수준으로 발전할 경우 69만1700명의 일자리가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막상 이런 추정치를 제시했지만 KDI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서비스업 개혁이 이러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서비스업 개혁이 향후 노동생산성과 고용,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추정하기 매우 어렵다"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정부는 이 보고서 내용 중에서 가장 높은 '69만개 새 일자리'라는 추정치만 뽑아내 단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앞서부터 서비스법 제정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가 과정됐다는 지적은 언론과 정치권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더불어민주당 이목희 정책위의장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서비스법이 통과되었더라면 서비스산업이 활성화되어 많은 청년들과 국민들에게 일자리 제공 되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이야 말로 내용을 터무니없이 과장, 왜곡하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 정책위의장은 "서비스법이 통과될 경우 69만개의 일자리 창출될 것이라는 계속 된 주장은 정부가 계속해서 사실을 과장, 왜곡해 왔던 것"이라며 "그 근거를 억지로 만들었던 KDI마저 서비스업 개혁으로 우리 경제의 서비스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점차 수렴한다는 전재 하에서의 분석일 뿐이며, 서비스업 개혁이 6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에 '국가가 청년실업자 보건의료기관 취업·보건의료기관 고용확대' 등 명시돼 있어

보건의료 분야에서 새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진짜 법은 따로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이다.

2012년 7월 국회에 제출된 이 특별법안에는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비롯해 현행법에 미비한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았다.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분명히 명시하고, 정부가 인력 문제의 현실을 파악하기위해 3년마다 보건의료 인력지원 종합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해 시행토록 했다.

보건의료 인력지원 업무를 전담하는 '보건의료인력원' 설치와 보건의료인력 지원 종합계획 수립·시행과 인력 확보, 유지, 관리, 노동조건 개선 등을 기본사업을 위해 '보건의료인력 지원 심의위원회'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 차원에서 보건의료인력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과 복지시설을 갖추는데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도 규정해 놓았다.

특히 이 법에는 국가가 청년실업자의 보건의료기관 취업, 보건의료기관의 고용확대, 근로시간 단축사업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런 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복지부는 여태껏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 채 근거도 빈약한 서비스법 제정을 통해 보건의료 분야 등의 새 일자리 창출을 주장하고 있다.

서비스법과 달리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이 제정되면 명확하게 의료 분야에서 양질의 새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국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는 2015년 9월 2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환자안전 위협하는 병원노동자 장시간노동 근절을 위한 근무시간 실태조사 선포식'을 개최했다.

지금도 병원들은 간호사 등 의료인력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

'OECD 헬스 데이터 201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1명으로 OECD 평균(3.2명)보다 1.1명 적었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임상간호사 수는 인구 1,000명당 4.8명으로 OECD 평균 (9.3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적은 수의 의료인이 엄청난 노동력으로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다.

의료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공공의료 인프라의 부족과 의료 분야에서 공공재원의 투입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OECD 헬스 데이터 2014'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료비 중 공공재원 비중은 54.5%(52.9조원)으로 OECD 평균(72.3%)보다 낮았다.

건강보험 의료수가도 낮다보니 병원들이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박리다매'식 의료서비스 제공과 인건비 지출 절감을 통해 경영 수지를 맞추고 있다. 의료자원의 수도권 집중화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지방 중소병원들은 의료인력난으로 속을 썩고 있다.  병원이 적정 의료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보건의료 일자리를 서비스산업 육성이 아니라 국민 건강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적정 의료인력 확보와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의료자원의 적정 분배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보건의료인력 수급을 조절해야 한다.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이 제정되면 국가가 보건의료인력 수급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대책을 수립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특별법에서 규정한 것처럼 '보건의료인력원'이 설립되면 의사, 약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는 물론 안경사, 안마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사무직, 영양사 등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직종에 대한 조사와 논의를 통해 구체적 인력기준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아니고 서비스법처럼 보건의료 등의 영역을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육성할 경우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과 적정 의료인력 확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KDI는 의료 등의 서비스업이 미국 수준으로 발전해야 69만개 새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했다. 결국 한국 의료시스템이 미국처럼 민간보험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의료민영화를 해야 그만큼의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추정이나 마찬가지다. 시민단체와 보건의료계에서 서비스법과 관련한 '의료민영화'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인력은 OECD 국가 대비 1/2 수준 밖에 되지 않아 매우 부족한 상태이다. 의료현장은 장시간 노동 등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환자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고, 의료 질이 하락하고 있다"며 "정부가 정말로 의료분야에서 새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면 국가가 책임지고 보건의료인력 수급을 제도화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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