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계속되는 C형 간염 사고를 막으려면

[라포르시안]  또 C형 간염 사고가 터졌다. 서울 목동의 한 의원에서 백 명 가깝게 환자가 생긴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원주의 한 정형외과가 ‘감염원’이다. 2011년에서 2014년 사이 진료를 받은 환자 가운데 백여 명이 간염에 걸렸다고 한다.

제천의 한 의원도 비슷한 이유로 역학조사 대상이 되어 있는데, 여기도 일회용 주사기를 다시 쓴 것이 문제다. 작년 한 해에만 4천 명 가깝게 근육주사를 맞았다니, 10년 동안 거쳐 간 환자를 추적한다면 대상이 4만 명이 넘는다. 갈수록 태산, 메르스나 지카보다 가벼운 문제라 말하기 어렵다. 

감염병 관리와 방역이 다시 동네 북 신세가 되었지만 이 문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를 대신하는 오늘의 초점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하는 것이다(원인에 관심을 두는 한, 방역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기억하자). 우연인가 아니면 새로운 추세인가. 긴 시간을 두고 분석해서 밝혀내지 않는 이상, 규칙(그리고 구조)을 확신하기는 어렵다. 당장은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먼저, 단순 ‘사건’이 우연히 몇 번 겹쳤을 가능성이 있다. 일회용 치료 재료를 다시 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하면 이것부터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간염 전파라면 비전문가도 다들 알아서 위험한 행동을 피하지 않는가. (‘정규 분포’에 속하는) 보통의 의료 전문직이 모를 수 없다. 비전문가의 불법 진료, 아니면 아주 예외적인 사람, 예외적인 행동이 아닐까? 

그게 사실이면 그나마 다행이고, 해야 할 걱정도 많지 않다. 구조화, 체계화되지 않은 (예외적) 사건은 그것만으로 잘 처리하면 되는, 일상 ‘행정’이 해야 할 몫이다. 방역 당국과 지방자치단체는 그래도 번잡한 일이 많겠지만, 구조와 체계를 바꾸어야 하는 고민은 적다.  

몇 가지 다른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일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새로 ‘밝혀지는’ 것일 수 있다는 점. 비슷한 일이 계속 있었고 그 가운데 일부가 이제 드러났다는 뜻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몇 가지 사건이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르게는, 과거에는 일어나지 않던 일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사건(들)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겉으로 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원주의 정형외과에서는 ‘자가혈 시술(PRP, 혈소판 풍부 혈장)’을 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시술도 익숙하지는 않지만, (주로 뼈를 다루는) 정형외과에서 이런 비급여(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환자가 진료비 전부를 내야 하는 진료)를 이처럼 많이 했다는 것이 ‘새롭다’.    

과거의 일이든 새로운 추세를 반영하는 징후든, ‘드러남’ 또는 ‘드러냄’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한다. 드러나는 것이야말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나은 가치(예를 들어 근대화와 진보)를 성취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라 해도 좋다. 환자들의 관심과 지식이 늘어나고 방역 당국의 실력이 좋아진, 즉 한 사회의 집단적 역량이 커진 덕분일 것이다.    

적극과 소극이라는 해석 차이는 있지만 길은 한 군데서 만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예외가 아니라 연속, 반복된 일이 새로 드러난 것이거나 새로운 추세의 징후라고 해석한다. 어떤 공통의 구조에서 연유한 사건이자 현상이란 뜻이다.

C형 간염은 우연한 한 가지 현상일 뿐, 공통의 구조는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좁게 보더라도 비슷하게 전파되는 질병이 어디 한둘인가. 다른 ‘의원병(醫原病, iatrogenesis)’이 계속 드러나지 말란 법도 없다. 한 걸음 더 확대하면, 여러 사고와 위험, 적정 수준 이하의 의료와 바로 연결된다.

우리가 주목하는 구조는 일차의료(동네 병원의 의료 서비스)의 ‘질’과 관련된 것이다. 의료에서 질은 최선의 진료를 통해 최고의 결과를 얻는 것이지만, 부정적, 소극적으로는 사건과 사고, 부작용을 피해야 하는 과제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연속된 C형 간염 사고는 몇 군데 일차의료기관(동네 병원)에서 일어난 ‘질의 실패’라 해야 한다.         

‘양질’ 또는 ‘저질’의 의료 서비스는 여전히 현상이자 결과이므로, 문제는 다시 구조다! 질과 연관된 체계와 구조는 아주 복잡하고, 문제가 된 사건으로 좁혀도 마찬가지다. 의사의 자격과 의료행위의 적정성은 물론이고, 의료기관의 경영상태, 국민건강보험의 진료비와 비급여 문제, 의료문화와 환자의 행태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근본 원인, 원인의 원인까지 따지면 끝도 없다.

해야 하는 일로 봐도 범위가 넓고 가짓수가 많다. 전문 의료인을 양성하는 문제(예를 들어 의사의 실력을 향상하기 위한 의과대학과 병원의 노력)부터 국민건강보험의 진료비제도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이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감독과 처벌의 행정조치부터 경제적인 동기, 개인 윤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꼽기도 힘들다. 좀 추상적인 말로 바꾸면, ‘일차의료’를 어떻게 정상화하고 좋게 만들 것인가, 제도와 시스템을 통째로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겠다.

여기서 잠시 메르스 사태를 복기할 수밖에 없다. 메르스 확산의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된 것 중에는 응급실과 간병, 의료이용체계가 들어간다. 오늘 주제와 같은 차원이다. C형 간염 확산에는 일차의료체계와 일차의료 서비스라는 ‘부스팅’ 요인이 기여했다. 서로 다른 두 감염병은, 의료체계와 시스템에서 다시 만난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물었지만, 상세한 것은 다음으로 넘길 수밖에 없겠다. 다만, 세 가지 C형 간염 사건이 방역이나 감염병 관리의 차원을 넘는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관심과 모색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넓혀야 한다. 일차의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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